정치양극화 몸살 앓는 미국… 트럼프시대 이후 ‘예의 실종’ 추세화 [Deep Read]

  • 문화일보
  • 입력 2024-06-11 09:00
  • 업데이트 2024-06-1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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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호의 Deep Read - 미국 정치의 양극화

공화·민주 대선후보 지명 7월 전대 앞두고 심화… ‘정적에 대한 예의’ 라는 오랜 규범 훼손
한국도 ‘포퓰리즘·전략적 극단주의’ 등으로 동병상련… 근원적 민주주의 국정 모델 찾아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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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가 극심한 양극화와 증오 확산, 그리고 예의 실종으로 신음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 이후 이는 하나의 추세로 자리 잡았다. 공화·민주 양당이 대선 후보를 공식 지명하는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서적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 정치도 유사한 병증을 앓고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보다 근원적인 민주주의 국정 모델을 찾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치의 규범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1800년 재선에 도전했으나 토머스 제퍼슨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졌다. 양측은 “위선자” “전쟁광” “자웅동체” “혼혈아” 등 심한 말로 공방을 펼쳤다. 그러나 그 후 둘은 서신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되살렸다. 에이브러햄 링컨과 스티븐 더글러스는 1858년 상원의원 선거와 1860년 대선에서 연이어 격하게 맞붙었다. 그러나 남북전쟁 발발 후 더글러스는 악연을 잊고 링컨 대통령을 헌신적으로 도왔다.

근래에도 존 매케인은 2008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에게 패했지만 온건 노선을 고수하며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공화당 강경 분자들의 무차별 공격을 자제시켰다. 미국 정치인들에게 선거 결과의 승복, 정적에 대한 예의는 당연한 규범이자 철칙이었다. 이의 위반은 정치적 매장을 의미했다. 정치인들이 불꽃 튀는 경쟁을 펼치면서도 선을 지키고 결과가 나온 후에는 서로 악수하며 축하하는 모습은 미국 정치의 상징으로 세계적 모범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 예의는 실종됐고 선거 결과에 대한 노골적 불복마저 터져 나왔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은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방전에 몰두했다.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는 불복에만 그치지 않았다. 복잡한 선거인단 제도를 악용해 결과를 뒤집으려 했고 폭도들의 의사당 습격을 부추겼다.

그런 그가 금년도 대선에 또 나왔고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성 추문 입막음 혐의 34건 모두 유죄 평결을 받고도 음해세력에 의해 기획·조작됐다고 남 탓을 하며 큰소리쳤다. 트럼프는 오만불손한 태도로 비판 세력을 악마화하면서 마치 예의 상실이 미덕인 양 행동한다. 예전이라면 정치적 자살 행위였을 무례한 언행을 자기 브랜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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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실종

소극적이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도 기싸움에서 질세라 지난 1월엔 연두교서를 트럼프 비판에 이용하며 이전투구에 가세했다. 미국변호사협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5%가 10년 전에 비해 정치적 예의가 추락했다고 답했다. 현재 시점에 조사하면 상황은 더 나쁘게 나올 것이 분명하다.

예의는 정치체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윤활유다. 대화를 촉진하고 정치·사회적 갈등을 완화한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걸린 정치와 국정 운영을 부드럽게 해주기도 한다. 또한 정치와 국정이 물리적 힘에 휘둘리지 않고 법치로 귀결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왕정 시대에 왕과 신하 간에, 또 신하들 간에 제도화되었던 예의는 폭압적 통치 없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다.

특히 민주주의 체제에서 예의는 필수 요소다. 모두가 평등·존귀하다는 전제 아래 수평적 관계를 세우고 그 속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며 민주주의적 균형과 조화를 찾는다면, 정치인들 간에 예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예의를 속마음을 숨기는 가식·위선이라고 폄훼하는 측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 공동규범을 위해 본능을 억제하고 언행을 신중하게 하는 게 예의이고 문명인의 교양이다.

미국 정치에서 예의의 실종이 트럼프 때문만은 아니다. 근원적 차원의 여러 정치 현상 및 시대 흐름에 따른 부산물이다. 이미 20세기 말부터 국정 권력이 중앙집중화되고 모든 영역이 정치화되면서, 또 제도 경로를 무시하고 여론에 호소해 국정 주도권을 쥐려는 포퓰리즘이 퍼지면서 예의가 사라졌다.

또한 선거에서 나를 알리기보다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대세가 되고, 극단적 노선으로 지지층의 흥분·자극·결집을 노리는 전략적 극단주의가 난무하는 것도 정치에서의 예의 실종을 부추겼다. 즉 수단을 가리지 않는 승리 지상주의가 발생시킨 여러 전략적 정치 현상 속에서 예의가 희생됐다.

◇양극화가 원인

예의의 실종과 승리 지상주의가 근래 극렬해진 것은 정치 양극화의 심화에 그 이유가 있다. 미국의 퓨 리서치센터가 1970년대 이후 50여 년간 조사한 결과를 종합해 보면 미 상·하원 의원들의 이념 성향은 21세기 들어 더더욱 양극화로 치닫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극화 원인으로 게리맨더링, 프라이머리(예비선거), 선거자금법 등 제도적 요인이 꼽힌다. 게리맨더링을 통해 선거구별로 특정 정당 지지세를 집중시키고, 양당 공천을 결정하는 프라이머리에 주로 이념 성향이 강한 유권자가 참여하고, 이념적 사회단체가 선거 후보들을 위한 독자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극단의 이념 성향을 취하게 됐다.

미국 정치의 양극화는 정치인뿐 아니라 유권자에게도 확대되는 추세다. 양당 지지층의 상호 비호감 강도가 계속 세지고 있다(그림). 반대편이 ‘그냥 싫다’는 정서적 양극화라서 더 심각하다. 유권자 간에 이렇게 정파적·정서적 상호 반감이 커지니 양당 소속 정치인들도 기꺼이 예의를 버릴 수 있게 됐다. 정치권의 양극화와 유권자의 양극화는 선후를 따지기 힘들게 연결되어 서로 강화하며 정치적 예의 실종과 증오의 증폭을 악순환시키게 된 것이다.

미국 유권자의 양극화는 대중 미디어, 인터넷, 소셜 미디어 등 기술 발전으로 더욱 심화하는 추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탈냉전·탈물질주의·탈산업화라는 시대 환경이 유권자를 양극화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다. 탈냉전 조류는 사회적 이념 대립을 표면에 올렸고, 탈물질주의 풍조는 인권·환경·복지·문화·교육 등 타협이 힘든 ‘삶의 질’ 이슈의 중요성을 높여 좌우 문화전쟁을 가열하고 있다. 탈산업화는 사회적 복잡성·불확실성·급변성을 키워 사회 적응자와 부적응자 간의 격차를 넓히며 전반적 불신감·불안감을 높였다.

◇동병상련

한국 정치도 예의 실종, 양극화, 증오 확산으로 신음 중이다. 몇몇 정치인만의 책임을 넘어 시대 환경이라는 근원적 뿌리가 작용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탈냉전·탈물질주의·탈산업화 시대를 맞아 선거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선거 외적인 참여와 숙의가 강조되고 비정치인의 역할도 중시되는 쪽으로 민주주의관을 넓혀야 한다.

경희대 정외과 교수, 한국아메리카학회 회장

■ 용어 설명

미국의 ‘전당대회’는 대선이 열리는 해 7∼8월에 공화·민주 양당 대선 후보를 공식 지명하는 행사. 후보 지명 후 국민은 그해 11월 첫째 월요일이 속한 주의 화요일에 대통령 선거인단을 선출.

‘퓨(Pew) 리서치센터’는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미국의 초당파 싱크 탱크. 미국과 전 세계의 정치·사회 문제나 여론 추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스스로 ‘팩트 탱크’라고 표현하고 있음.

■ 세줄 요약

정치의 규범 : 미국은 공화·민주당의 대선 후보 지명을 위한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음. 미국 정치에서 선거 승복, 정적에 대한 예의는 규범이자 철칙. 하지만 오늘날 예의는 실종됐고 노골적 선거 불복이 터져 나옴.

예의 실종 : 예의 실종은 시대 흐름에 따른 부산물. 권력의 중앙집중화, 포퓰리즘 확산, 전략적 극단주의 등이 정치적 예의 실종을 부추겨. 특히 21세기 이후 예의 실종이 극렬해진 건 정치 양극화 심화에 원인이 있어.

동병상련 : 7월 전대를 앞두고 미국의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돼. 한국도 양극화, 예의 실종, 증오 확산으로 동병상련을 앓는 중. 탈냉전·탈물질주의·탈산업화 시대에 맞는 민주주의관과 국정 모델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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