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캠페인-다시읽는 20세기 고전(2)>‘미디어의 이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94년 미국 MIT대학에서 출판된 '미디어의 이해' 30주년 기념판

전세계가 새로운 통신수단의 시대로 이행하는 역사적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현재 새로 출현하고 있는 통신수단은 그 종류가 너무 많고 또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다. 각종 뉴미디어가 지수함수적으로 급격하게 혁신되는 과정에서 우리 삶은 갈수록 ‘미래에의 충격’에 휩싸여 가는 것이다. 바야흐로 ‘정보혁명’의 도래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과연 세계는 지구촌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가. 작금의 정보혁명은 기존문화의 하부구조와 삶의 내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같은 물음과 더불어 다시 주목받는 사상가가 마셜 매클루한(1911∼1980)이다. 그는 캐나다 출신의 문명 비평가이다. 원래 영문학에서 출발하였으나 미디어 연구의 새 지평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정신의 촉수를 바꾼 것은 생애 후반의 일이다.

그 전환을 상징하는 책이 ‘구텐베르크의 은하’(1962)와 ‘미디어의 이해’(1964)이다. 전자가 근대 서구 문명에서 인쇄 매체의 위상에 주목한다면, 후자는 거기에 스며있는 문제의식을 미디어 일반으로 좀더 철저하게 밀고 나간다. 때문에 ‘미디어의 이해’가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미디어라는 말의 현대적 용법이 그로부터 비롯했으며,‘미디어는 메시지다’는 명제는 ‘지구촌’, ‘정보시대’란 용어와 더불어 21세기 문화의 지형도를 작성하는데 중요한 이론적 준거틀을 제공한다.(참고로,1994년 MIT대학 출판부에서 ‘미디어의 이해’30주년 기념판이 나왔는데, 이는 그의 미디어론이 60년대 당시보다는 오늘날 더 의미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책은 ‘인간의 확장(extensions of man)’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미디어(매체)는 인간의 감각기관을 확장시킨다. 이때 ‘확장’은 특정 감각의 고유한 기능을 드높이는 수단이나 장치를 뜻하며, ‘차바퀴는 발의 확장이고, 책은 눈의 확장이며, 옷은 피부의 확장이요, 전기는 중추신경계의 확장이다’는 진술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렇게 정의된 미디어는 라디오, 텔레비전, 전신, 전화, 영화, 신문, 컴퓨터 같은 통신수단뿐만 아니라 의상, 집, 돈, 시계, 차바퀴 따위도 포괄한다.

미디어가 인간의 감각 기관, 더 나아가 감각 자체의 확장이라 할 때, 그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매클루한은 이 물음에 에둘러 답한다.

미디어란 청년 나르시스가 자신의 얼굴을 처음 바라볼 수 있었던 호수의 물과 같다고. 이 그리스신화의 핵심은 사람이 자기 이외의 것으로 확장된 자기 자신에게 이끌린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신이 만들어낸 미디어에 의해서 자신을 변화시키는데, 바꿔말하면 미디어의 원인이자 미디어 효과의 대상인 것이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논점이 ‘감각 비율’또는 ‘감각 균형’이란 문제다. 전화가 청력의 범위를 넓히고 현미경이 시야를 깊게 하듯이 미디어는 기존감각의 상호관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다. 특히 문자문화는 오관중 눈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고 나머지 감각기관의 역할을 줄여 버렸다.

이는 일종의 개안 수술과도 유사한 효과를 낳는다.

이런 맥락에서 ‘미디어는 곧 메시지’라는 명제의 의미를 간파할 수 있으리라. 그것은 특정 미디어로 인한 감각 균형의 재조정과 그 변화를 겨냥한다. 매클루한이 보기에 미디어가 메시지보다 선행하기에 미디어의 내용을 둘러싼 논쟁은 빗나가기 쉽다. 그렇다고 메시지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메시지가 미디어에 종속적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그래, 매클루한은 “메시지는 정신의 監視犬(감시견)을 따돌리기 위해 도둑이 미끼로 던지는 고기 덩어리와 같다”고 쓰고 있다.

결국 어느 미디어든 그 실제 내용은 미디어의 사용자다. 우리가 바로 미디어의 내용이라는 말이다. 메시지는 특정 미디어와 인간이 만남으로써 비로소 발생한다. 각 미디어는 인간 존재의 새 형태를 전달하는데, 인간의 속성은 그 형태에 적합하도록 변형된다. 이런 식으로 인간은 미디어로 인하여 완전한 변화를 경험하게 되고 이 변화 자체를 매클루한은 메시지라고 규정한다.

이상과 같은 설명에 따르면, 미디어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특정 감각의 상대적 의존도를 확대 또는 감소시킴으로써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새로운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 균형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사유 방식과 행동양식을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사회의 변화를 초래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주장은 그가 인류 문명의 역사를 미디어 기술의 혁신에서 찾고자 했던 데서 잘 드러난다.

매클루한에 의하면 세가지 중요한 기술 혁신이 인류의 문명사의 전개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첫째는 알파벳 문자의 발명, 둘째는 1446년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 발명, 세번째는 1844년 마르코니에 의한 전신의 발명이다.

이 세 가지는 그 발명 순서를 따라서, 인간의 문화 공간이 최초의 청각 공간에서 시각 공간으로 바뀌고, 시각 공간이 증폭 확장되다가, 다시 시각 공간에서 청각 공간으로 반전되는 기제가 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매클루한이 강조하는 대목은 전자 미디어의 경험 내용이다. 현대는 전자 미디어 시대다. 전자 미디어는 음성 알파벳이나 인쇄와는 정반대로 작용한다. 시각 공간을 일으켰던 음성 알파벳과 인쇄 매체가 감각의 분리와 파편화를 촉진했던데 반해, 텔레비전같은 전자미디어는 특정한 감각만이 아니라 전체감각의 통합, 더 나아가 우리의 중추 신경 조직마저 아우른다.

전자 미디어의 등장으로 인간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게 매클루한의 기본 주장이다. 전자 미디어의 중추를 이루는 텔레비전의 도래와 더불어 인간은 최대한의 감각 확장을 경험한다. 그의 용어를 빌리자면, 활자 매체의 구텐베르크 은하가 전자 매체의 성운 속으로 전면적으로 흡수된다는 것이다. 전자 미디어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인, 시각적이기보다는 촉각적인, 파편적이기보다는 통합적인 성격을 가진 문자 이전의 인간형을 부활시킨다. 또한 전파의 동시성과 즉각성은 시공의 제약을 없애버리고, 세계는 하나의 부족 단위처럼 축소된다. 매클루한의 ‘지구촌’은 바로 이러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렇듯 지구촌 개념은 단순히 ‘세계가 한지붕 밑에’라는 외형적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전자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경험의 질적 변화에 주목한다. 지구촌의 인간들에게 이제 일회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은 중요하지 않다. 어느 특정 시각에 어느 한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곳에 부재하면서도 현존할 수 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이미 인터넷과 사이버스페이스의 범세계적 확장은 마치 세계를 전자적으로 코팅하는 것처럼 보인다.

매클루한의 지구촌 논의에는 다소 유토피아적인 신비주의의 그늘이 드리워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 확장으로서의 미디어’ 개념 자체가 가톨릭 철학자 테야르 샤르뎅의 ‘정신계(noosphere)’ 논의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 철학자 역시 전파의 사용이 조화로운 집단의식을 향한 인간의 우주적 꿈을 고양시킨다고 믿었으며, 그에 힘입어 이 책은 전자 문명이 신에 더 가까이가는 영성적 진보의 길목에 다름 아니라는 희망을 명시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의 저서 중 가장 낙관적인 색채를 띠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그는 전자 문명의 끝간 데를 노래하면서 인류의 전자적 통합을 기독교의 오순절에 비유했다. 지구촌으로 상징되는 새 사회에서 인류의 이상적 통합을 예감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순절에 앞서 숱한 고통과 수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곧 깨닫기에 이른다.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는 동안 예루살렘에서는 지옥의 불길이 넘실거리지 않았던가. 나중에 그는 전자 문명의 미래에서 ‘敵(적)그리스도의 어두운 그늘’을 보며 지구촌의 유토피아적 전망에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다.

오늘날 매클루한은 ‘사이버스페이스의 예언자’로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전자 문명의 실체가 매일같이 확연해지는 탓이다. 이에 더하여 더 중요한 점은 전자 문명에 대해 명백히 양면적인 시각을 가졌던 사상가의 모습을 되새기는 일이다. 매클루한이 기술 유토피아의 후원자일지도 모르지만 그의 상상력은 또한 기술 유토피아를 괴롭히는 기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전자 문명에 대한 그의 양면적 태도는 향후 인간과 매체 기술이 공명하는 과정에서 모색하게 될 디지털 휴머니즘의 씨앗을 이미 잉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는 의문이다.

<깅성기. 계간 현대사상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