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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우리가 살아온 20세기 게재 일자 : 1998년 10월 03일(土)
(35)1946년, 가짜 김일성과 北단독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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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세 김일성 45년 10월 14일 북한 진주 소련군 장성들이 함께한 평양집회에서 33세의 김일성이 연설을 하고 있다. 2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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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식민지 통치하에서 국민(초등)학교를 다닌 우리 세대에게 1945년의 해방이전에 알려진 독립투사의 이름은 거의 없었다. 이승만 김구 여운형…등의 이름은 8.15이전에는 우리들 어린이에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일제시대에도 우리들 식민지 아이들이 알고있던 독립운동의 ‘영웅’이 있었다면 오직 한 사람, ‘긴이치세이(金一成·김일성)’또는 ‘긴니치세이(金日成·김일성)’장군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들은 국민학교 4∼5학년쯤 되었을 때 누군가가 공책에 필사해서 친한 친구끼리 돌려본 최초의 포르노그라피 ‘천국의 꿈’을 읽고 가슴이 빠개질 듯이 흥분했던 것처럼, 누군가가 어디에서 얻어들은 전설적 영웅 김일성 장군의 얘기를 친한 친구끼리 부풀려 가며 귀엣말로 주고 받으면서 숨막히는 감동을 나눠 갖곤 했었다.

백마를 타고 신출귀몰하며 만주벌판을 누비는 김일성 장군 앞에서는 천하의 일본 관동군도 전혀 손을 쓸 수가 없다는 것, 앞산에 나타나서 관동군이 몰려가 포위망을 좁혀 가면 백마의 김일성 장군은 어느새 그 뒷산에 표연히 나타난다는 것, 그럴 수 있는 까닭은 김일성 장군은 縮地法(축지법)을 마음대로 쓰는 도사이기 때문이라는 것… 등이 우리 철없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비밀 유통되고 있던 김일성 장군의 ‘신화’였다.

태평양 저쪽의 이승만 박사나 중국대륙 깊숙이 망명한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땅을 잃고 땅을 찾아간, 땅으로 이어지는 만주 간도지방에서 나돈 얘기들이 압록강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빈번했던 내왕을 통해서 식민시대의 ‘유비통신’‘카더라통신’에 의해서 어린이들의 세계에까지 퍼져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럴수록, 8.15해방 이후 거의 두달이나 지난뒤, 마침내 평양에서 ‘조선해방 축하’를 위한 민중대회를 개최한 45년 10월14일, 전설의 영웅 김일성 장군이 구름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듯 ‘데뷔’했을때, 그를 본 사람들의 충격은 엄청나게 컸다. 남한에서는 그 현장의 상황은 알 수도 없고 다만 보도된 기사와 사진을 통해서, 만주벌판에서 축지법을 써가면서 일본 관동군을 무찔렀다는 전설의 김일성 장군이 이제 겨우 서른세살의 젊은이란 사실에 놀라버렸다. 白髮(백발)의 노장이 나타날 줄 알았는 데 紅顔(홍안)의 청년이 나타났으니 되게 실망할 수밖에….

저게 진짜 김일성 장군이란 말이야? 저거 가짜 아니냐! 하는, 죽끓듯한 여론의 의문 제기에 남북한의 좌파세력은 곤욕을 치르게 되었고, 그 곤경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6.25전쟁이 터졌고, 전쟁이 끝나자 그때부터 북한에서는 가짜의 김일성을 진짜로 꾸며대기 위한 조직적이요 체계적이며 본격적인 ‘김일성 신화’의 날조 공작을 제1의적인 국가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북한의 현대사 조작, 역사 위조가 그 소산이다.

역사적 인물로서의 군사적 영웅 ‘김일성’은 물론 소련군 대위 金聖柱(김성주)가 뒤집어쓴 가면이요, 그 실체는 김일성이 김성주가 아닌 것처럼 김성주도 김일성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인물로서의 가짜 김일성(김성주)만은 어쩌면 진짜의 ‘김일성’장군보다도 더욱 유능한 인물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목적이나 수단의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고 순전히 기술적 판단의 척도에서 본다면, 김일성은 권력의 장악, 권력의 유지에 있어 스탈린, 마오쩌둥(毛澤東),프랑코,히틀러,루스벨트, 장제스(蔣介石),카스트로,朴正熙(박정희)등의 반열에 오를 만큼 탁월했다고 평가하는 데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한반도의 북쪽을 장악한 소련이 항일 독립투쟁의 전설적 영웅 ‘김일성 장군’의 탈을 씌워준 ‘마리오네트’로 출발하였으나 이내 마리오네트를 조종하는 인형극의 끄나풀을 잘라 독립하고, 가짜의 ‘장군’아닌 진짜의 ‘수령’으로 50년간을 독재하면서, 20세기의 한복판에 한반도의 북반부에서 문자 그대로 하나의 ‘세습왕조’를 세우고 사라졌다.

50년동안이나! 그렇다. 김일성의 평양 정권은 1948년 8월15일 남한이 ‘단독’정부를 수립한 것에 대한 대항조치로 1948년 9월9일에 비로소 탄생한 것은 아니다. 김일성은 1945년 귀국하면서부터 이미 북한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남한에서는 그러나 1948년까지는 어떤 정치인도 북한의 김일성처럼 권력을 장악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여운형도, 이승만도, 김구도, 안재홍도, 그 누구도 못하고 있었다. 남한에는 48년 광복절에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는 미군정 말고는 한국인의 정권이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 비해서 북한에서는 8.15 해방전에 이미 소련군이 들어와서는, 8월 24일 함경남도를 시작으로 소위 ‘人民政權(인민정권)기관’으로서 ‘인민위원회’가 꼬리를 물고 조직되면서, 45년 9월 20일에는 이미 ‘38선에 의한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사정을 반영하여’ 북한지역에서의 종합적 행정기관으로서 북조선 각도 임시인민위원회의 대표자들이 ‘5도관리위원회’를 개최하여 ‘북조선 5도행정국’을 설치하였다. 말하자면 8.15해방후 두달만에 벌써 북한에서는 ‘가능한 지역에서’의 인민정권 기관이 창출된 것이다.

45년 12월17일에는 조선공산당북조선分局(분국)의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가 개최된다. 이 회의에서 김일성 일파는 더이상 서울에 본부가 있는 朴憲永(박헌영)의 조선공산당 분국이 아니라 북조선에 완전히 독립한 당 중앙기관이 있어야 된다고 주장하며 이 대회부터 당의 명칭을 ‘북조선공산당’으로 할 것을 제의하여 반대파를 제압하고 통과시킨다. 이 회의에서 김일성은 金容範(김용범)을 밀어내고 당의 책임비서에 취임한다. 당이 정부 위에 있는 북한에서 김일성의 50년 왕위가 시작된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그로부터 열흘 뒤 모스크바에서는 한반도에 독립정부를수립하기 위한 최고 5년간의 신탁통치를 시행한다는 3개국 외상회의 의정서가 발표되었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가 알려지자 북한의 모든 정당 사회단체와 남한의 좌파 정당 사회단체는 지지성명을 낸 반면, 남한의 우파 정당과 사회단체는 대대적인 反託(반탁·신탁통치반대)데모를 벌였다.

3상회의 결과에 따라 서울에서 개최된 미·소공동위원회를 위한 미·소 양軍(군)대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소련군대표 스티코프 중장 일행이 평양에서 서울에 도착하여 46년 1월 16일부터 3주일 동안에 걸쳐 미군 대표 아놀드 소장과 함께 예비회담을 개최하였다. 조선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을 원조하기 위함이라는 미·소공동위원회의 본회의가 본격적으로 서울의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리게 된 것은 46년 3월20일이다.

그러나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따라 서울에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기 전에 북한에서는 46년 2월8일 ‘북조선 5도행정국’을 대신할 ‘최고 정권기관’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설립이 결정되고 위원장 김일성을 위시한 주요인사의 직책이 발표되었다.

1965년 발간당시 남한의 朴正熙 정권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고 북한의 김일성 정권에 대하여 매우 우호적이었던 일본의 統一朝鮮新聞社(통일조선신문사)에서 내놓은 ‘통일조선연감’에는 46년 2월의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창설을 “북조선에 있어 정치중심의 김일성으로의 이행과, 북조선의 민주개혁을 전지역에 걸쳐 통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강력한 중앙主權(주권)기관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임시인민위원회가 오늘의 북조선 정권의 모체가 되었다”고 적혀있다.

과연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입법·행정을 도맡은 실제의 ‘정권기관’이었다. 위원회가 설립되자마자 46년 2월10일 각급학교의 개교는 9월, 졸업은 7월말로 결정하고, 4월에는 46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으며, 뒤이어 일제시 사법기관에 관한 법률을 폐지하고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을 공포하는 한편, 토지개혁법령, 중요산업 국유화법령, 노동법령 등을 연거푸 공포했다.

46년 11월3일에는 시·군 인민위원회위원,47년 2월에는 면·리 인민위원회가 실시되었다.찬·반만을 묻는 악명높은 단일후보의 선거결과 총유권자 99.6%가 투표하고 민주주의 민족통일전선이 추천한 입후보자에 대하여 도 인민위원선거에서는 97%,시 인민위원선거에서는 95.4%,군 인민위원선거에서는 96.3%가 ‘갸륵하게도’ 압도적 지지를 표시했다는 찬성투표율이 시위되었다.

이렇게 선거를 치렀다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짐으로써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이제 ‘임시’도 필요없다고 내팽개치고 ‘북조선인민위원회’라 공칭하게 된다. 임시정권이 아니라 본격적인 북조선의 ‘인민정권 기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남한에서는 위원회의 위원 따위는 정부의 들러리나 서주고 겉치레로 내세우는 별볼일 없는 존재로 흔히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常例(상례)이다. 그러나 소비에트 공산주의 체제에서의 인민위원은 그게 아닌 듯싶다.1차대전 와중에 러시아 혁명을 성취하여 독일과의 브레스트리브스크 강화회담의 소련 전권대표로 참석한 트로츠키의 직함은 외무인민위원이었다.‘인민위원(Narodnyj Kommissar)’은 1917년 볼셰비키혁명 직후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난뒤 1946년까지 소련에서는 長官(장관)을 지칭하는 공식명칭이었다.인민위원회의(Sovnarkom)는 1946년 이전까지는 소련 ‘각료회의’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스탈린과 김일성은 미국과 소련, 남한과 북한, 좌파와 우파가 회담을 통해서 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협상따위엔 티끌만한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서울에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기도 전인 46년 2월에 이미 북한만의 단독정권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이른바 ‘民主基地(민주기지)’노선으로의 정책전환과 그 실천이다. 이에 대해서는 1956년 북한의 조선노동당출판사에서 간행한 책자‘당의 강화를 위한 투쟁’속에서 다음과 같이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북반부에서 조국통일의 강력한 물질적 담보인 혁명적 민주기지를 창설하는 데로 나섰다. 민주기지 건설의 최초의 대책으로서 당은 각계각층을 망라한 통일전선의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중략) 그 결과 우리나라의 북반부에서 반제·반봉건적 민주혁명의 과제가 완전히 수행되어 인민민주주의 제도가 성립되었으며 조국통일의 물질적 기초인 민주기지가 창설되었다….” 덧붙여 설명하면 소비에트 용어사전에서는 불가리아 공산당의 디미트로프가 개발한 ‘인민민주주의’란 개념은 ‘인민공화국’과 동의어이다. <연세대교수 최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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