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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윤창중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04년 06월 14일(月)
盧정권의 도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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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뚜벅뚜벅 뒤를 따라오더라.” 한달전인 지난달 14일. 우리정부의 관심은 이날 오전 10시에 내려질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쏠려있었다. 바로 그날 오전 8시, 그러니까 헌재결정이 내려지기 불과 2시간전 한·미양국 고위관계자들은 서울에서 조찬모임을 마치고 서로 헤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우리측 고위관계자 뒤를 따라왔다.

허버드 주한미대사였다. 그는 “주한미군 제2사단병력 4000여명을 이라크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측 관계자가 물었다. “그러면 이라크에서 임무를 마치면 다시 한국에 돌아옵니까?”“그건 모르겠다.” 주한미군 감축 계획이 한국에 전달되었던 과정의 ‘진실’이다.

왜 미국은 주한미군 감군 계획을 노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헌재결정이 있던 바로 2시간전에 통보했는가. 미국이 한국을 동맹으로 생각했다면 그렇게 했을까. 우리정부의 초미의 관심사가 탄핵이든 무엇이든, 미국은 그들의 길을 가겠다는 의미다. 미국은 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주한미군에 대한 감군 및 재배치 계획을 지금으로부터 18개월전, 김대중 정권의 말기인 2002년 11월부터 추진해오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우리정부가 알아보려하면, 미측에서는 “GPR는 개념(concept)이다”는 말만 되돌려 줄 뿐이었다. 개념임을 빙자한 협의 거부였다. 우리정부는 자구책으로 맞섰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자주국방론을 불쑥 들고 나왔다. 노 대통령이 현대적 국제안보론에서 이미 시대착오적 유물로 평가가 나버린 자주국방론을 들고 나온 배경에 대해 국민은 주한미군 감군 계획이 나올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노 정권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데에는 충분한 근거들이 있다. 이 정권이 건국이후 50년이 넘게 나라가 걸어온 길, 한국의 국가운영의 판을 뒤바꾸려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대도박’을 벌이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이 짙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가 GPR의 일환이고, 수도 이전이 지방분권화의 상징적 작업이며, 고위공직자 주식 백지신탁이 정경유착을 뜯어고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은 눈가림을 위한 고도의 전략일 수 있다. 한국사에서 마침내 외세를 몰아내 역사상 첫 자주국가를 세우겠다는 야심에 가득차 있는 정권임을 미국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협의도 하지 않았고, 우리정부도 굳이 주한미군의 ‘바짓가랑이’를 잡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천도(遷都)구상은 왜 나왔는가. 외세를 떠나보낸 자주국가에서 새롭게 태어난 지배세력이 새 수도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민족주의적 시각에서는 매혹적이다. 당장 천도의 웅장함을 눈 앞에서 볼수 없다해도 그 첫 삽이라도 뜨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고위공직자 주식백지신탁제를 통해 이 정권이 말하는 기득권의 권력참여를 제도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면 명실공히 지배세력의 완전한 교체를 이룰 수 있다. 이것은 국가의 운명을 건 대도박이고, 개혁이 아니라 혁명인데도 지금 이것을 밀어붙이고 있다.

결국 국가의 방향과 성격을 천지개벽하려는 거대한 디자인이 지금 진행중인 것이 아닌가 한다. 그동안 꿈꾸어오던 ‘이상향의 실현’이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의 좌파 자유주의자(left―libertarian)들은 이같은 지적을 색깔론이라고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독재정권을 지원한 미국을 미워해 주한미군철수와 동맹해체를 주장했고, 북한에 온정주의적인 정신적 전통을 갖고 있다. 김일성의 화려한 보천보 항일투쟁사를 발견하곤 그를 흠모하는 풍토가 있었다. 반제국주의, 반미의 길을 걷고 있는 북한은 행복한 나라로 보였고, 이를 지원하는 중국과 러시아도 그리워했다. 근본적으로 안보와 먹고사는 문제를 최고의 가치로 삼으며 피와 땀을 흘려온 우파 자유주의와는 정신적 고향을 달리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내 우파 자유주의자의 세계관과 충돌하고 반목하는 이유이다.

이러다가 한국은 북한보다는 약간 더 잘사는 70년대로 되돌아갈지 모른다. 한국의 좌파 자유주의자들로서는 정신적으로 더 행복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전체를 놓고 볼 때 그땐 너무 늦은 후회가 될 것이다.

[[윤창중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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