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초대석>“대학도 수요자·경쟁력 중심 개혁 시급”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어윤대 총장은 “한민족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고려대를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만들어 글로벌 리더를 배출하는 것이야말로 민족사학 고려대의 학풍과 전통을 드높이 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심만수기자

고려대학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막걸리, 그리고 민족사학이다. 그런데 고려대는 지난해 개교 100주년을 맞아 동문들에게 돌릴 기념품으로 와인 세트를 선택했다.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슬로건으로는 ‘민족의 대학에서 세계의 대학으로’를 내세웠다. 고려대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모토로 내세운 어윤대(61) 총장의 작품이다.

어 총장 재임 3년 반 동안 학교 분위기는 싹 바뀌었다. 매년 전교생의 20%인 1000명의 학생이 학교 장학금을 받아 외국 유명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나간다. 올 1학기 영어강의 비율은 31%로 국내 대학 가운데 단연 1위다. 고려대에서 올 여름학기 강의를 듣는 외국 학생은 800명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다. “고려대가 앞서 변함으로써 우리나라 대학이 변한다”며 한국 대학 개혁의 선봉임을 자부하는 어 총장을 만났다. 어 총장은 지난 14일 민간인으로는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자문하는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으로 재위촉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싸고 국론 분열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최고 경제정책 자문위원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난번 자문회의 때 거의 모든 자문교수들이 한·미 FTA는 반드시 해야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일부에서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멕시코 경제가 잘못 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멕시코는 한때 중앙은행이 문을 닫을 정도로 어려웠지만 NAFTA 체결 이후 엄청난 무역흑자로 오히려 재정이 건전해졌습니다. 또 미국과의 접경지역에 공장이 많이 생겨 일자리를 빼앗긴 미국 쪽의 불평이 많습니다.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과거부터 뿌리 깊었던 빈부격차 문제가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의 협상 방식에 대한 비판도 많지 않습니까.

“협상 내용을 국민에게 알려 이해시키는 작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협상이란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공개할 수는 없습니다. 패를 보여주며 협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이번 협상은 우리의 수출 주종인 반도체·철강·가전에서 미국보다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도리어 유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정부가 농업 피해를 어떻게 보전하느냐라는 국내적 차원의 문제가 있는데 일부 분야에서는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무엇이 득이 될 것인가를 봐야 합니다.”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산학협력을 통한 대학 구조개혁을 강조했는데 대학 경영을 책임진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대학 개혁이라고 하면 바로 고려대가 모델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에 대학 교수가 존경받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은 공급자 중심의 60년대식 교육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대학도 변해야 합니다. 대학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지난 3년 반 동안 고려대에서 보여줬습니다. 모든 것을 국제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수요자 중심의 교육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뭘 어떻게 개혁한다는 얘깁니까.

“국제 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세계적인 대학이 되어야 합니다. 총장 취임 후 우리 학교 졸업생을 채용하는 곳에서 어떤 인재상을 요구하는지를 조사했더니 일에 대한 열정, 팀워크, 창의력 그리고 국제적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4가지를 요구하더군요. 앞의 3가지는 고려대에 강점이 있는데 제일 부족한 게 국제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의 개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재 고려대는 전체 강의의 31%를 영어로 하고 있고 2010년까지는 이를 60%까지 높일 계획입니다. 경영대의 경우 올 2학기 영어강의가 45%입니다. 그러다 보니 홍콩과 싱가포르 대학생들이 고려대로 유학을 옵니다. 외국대학과의 교류도 총장 취임 당시 200개에서 500개로 늘렸습니다. 1년에 100개씩 늘린 셈이죠.”

―고려대의 세계화 전략에 대해 시장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지원율을 보면 됩니다. 이번 수시 1학기 경쟁률이 53대1입니다. 3년 반 사이에 5배가 높아졌습니다. 수능성적으로 본 커트라인도 최고 수준입니다. 경쟁률이 높아졌다는 것은 고려대의 프로그램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영어강의를 원하지 않는 학생이 있다면 다른 대학에 가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다른 대학에서도 경쟁적으로 영어강의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고려대의 국제적 지명도도 높아졌습니다. 고려대의 국제여름학기 코스는 강의의 100%를 영어로 진행합니다. 올여름엔 교포학생들을 포함해 외국에서 800명이 왔습니다. 총장 취임 첫해에는 불과 32명이었는데 그후 150명, 400명, 800명으로 늘었고 내년에는 1200명이 될 것입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여름학기 프로그램입니다.”

―영어강의를 늘리다보면 비영어권에서 공부한 교수들의 불만이 있지 않습니까.

“일부 교수들은 총장이 독선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영어강의에 한계가 있고 깊은 학문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런 점들은 개선되어야 할 점들입니다.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입니다. 영어강의의 장점이 훨씬 크다면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정 수준에 오르면 그런 논란도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일부 예외도 인정합니다. 일문과는 강의의 90%를 일본어로 하고 있고 법과대학과 국문과는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그 길을 원하고 있습니다.”

―고려대는 민족대학 이미지가 강한데 글로벌 전략과는 이미지가 좀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민족대학이라는 이미지는 영구히 가져갈 것입니다. 그리고 더 넓은 차원에서 민족대학을 바라보려 합니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강국이고, 골드먼삭스에서는 한국이 2025년에 국민소득 5만1000불로 세계 3대 강국이 된다고 전망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이 세계적 지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고려대가 소르본, 옥스퍼드 못지않은 세계적 대학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의 대학을 표방한 이유는 국수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고려대의 교육이념은 교육구국입니다. 세계적 지도국에 걸맞은 세계적 지도자를 길러내야 할 책임을 갖고 있고 그런 차원에서 국제적 언어를 습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처럼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나라도 대학에서 3개국어를 마스터하게 합니다.”

―정부가 개혁을 주도하면 대학 자율성이 위축되지 않나요.

“최근 교육부에서 외국 대학교에서 취득한 학점을 100% 인정키로 하는 등 규제 완화 노력을 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실제로 자유화가 많이 됐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가 문제입니다. 첫째는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OECD 국가들 가운데 한국이 가장 낮습니다. 또 국립대학은 정부가 예산지원을 하기 때문에 입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다지만 사립대학에까지 그렇게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선진국 어디에도 그런 예가 없습니다. 미국은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 규제가 전혀 없는 반면 지원을 많이 해줍니다. 하버드 대학의 경우 예산에서 차지하는 정부 보조금이 15%, 일본 와세다 대학은 12%입니다. 한국은 규제가 그렇게 많은데도 정부지원은 4%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정부가 가장 핵심적인 것을 막고 있으니까 마치 모든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이런 정책은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시기가 문제일 뿐입니다.”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취임하면 좀 달라질까요.

“김 부총리 내정자에 대해 교육 전문가가 아니라고들 하지만 그건 난센스입니다. 20년 이상 대학에서 강의를 한 분입니다. 대학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겠습니까. 오히려 그렇게 잘 알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또 선배 교수들이 총장을 하고 있고 대학이라는 위계질서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총장 임기가 연말까지인데 연임에 도전하실 생각입니까. 아니면 공직이나 정치권 진출은….

“총장 4년 하면서 강력하게 밀어붙여왔기 때문에 연임을 하겠다고 하면 아마 반대하는 교수님들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교우들이나 학생들이야 좋겠지만…모르겠습니다. 피곤하기도 하고. 학교 규정에 퇴임 후 1년 동안 안식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정치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퇴임 하면 그때 사정 봐 가면서 정해야죠. 제가 대학 다닐 때 언제 총장 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고려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고려대 오면 20년 후엔 틀림없이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한종호차장 idhan@munhwa.com
정리 = 박수균기자 freewill@munhwa.com

[ 약력 ]

▲경남 진해 - 45년생 ▲고려대 경영학과(67년)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 경영학 박사(78년) ▲고려대 경영대학 부교수(79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82년)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92년) ▲한국국제경영학회 회장(92년) ▲외무부 외교정책자문위원(93년) ▲한국금융학회 회장(95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원장(96년) ▲한국금융연구원 국제금융센터 소장(99년) ▲한국경영학회 회장(2002년) ▲고려대 15대 총장(2003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2005, 20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