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광웅 교수는 2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병준 교육부총리 개인의 과거 문제를 둘러싼 의혹을 해명하는데 교육부 직원들이 열흘 가까이 매달리는 현상은 대학의 연구윤리 붕괴 못지 않은 심각한 공직 윤리 해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임정현기자
지난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황우석 논문조작사건은 이공계 분야에서 연구 윤리를 확립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 것인지를 깨우쳐 준 뼈아픈 체험이었다.
논문 표절과 중복게재, 실적 부풀리기 등의 의혹을 둘러싸고 전개된 김병준 교육부총리 사퇴 파문은 비록 실체적 진실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긴 하지만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한국 대학의 연구윤리 관행과 인식이 국제 기준에서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번 일을 김 부총리 한 사람의 거취 문제로 끝낼 게 아니라 한국 대학사회의 연구윤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 행정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행정학자로는 거의 유일하게 이번 파문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경고의 목소리를 내 온 서울대 행정대학원 김광웅(66) 교수를 2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만났다.
―이번 일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어제 이장무 서울대 총장 취임식이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창피해서 혼났습니다. 이공계 교수들은 나더러‘사회과학 쪽은 다 그런가요’라고 하고 경제학과 교수들은 ‘행정학 쪽은 원래 그런가요’라고 합디다. 망신도 보통 망신이 아니에요. 사실 중앙정부, 지방정부 할 것 없이 연구용역이 무척 많아요. 그런데 이를 관리할 만한 능력이 정부에는 없습니다. 제대로 관리·검증을 했다면 이런 일이 애초에 안 생겼죠.”
―교수들이 돈 때문에 윤리 문제를 뒷전에 둘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까.
“교수에게 필요한 것은 성실하게 진리를 탐구하고 학생들 잘 키우며 학문 발전에 기여하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연구비를 확보하는가가 능력의 척도가 되고 있는 세상입니다. 미국은 특히 심하지요. 미국 유명 교수들은 아예 워싱턴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국방성이든 중앙정보국(CIA)이든 연구용역을 따기 위해 애를 씁니다. 우리 학계도 그런 미국 풍토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수가 비윤리적 상황에 빠져들게 됩니다.”
―학문과 현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긍정적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문제는 연구비가 오고가는 게 너무 형식적이라는 점입니다. 연구기관이나 발주기관의 타이틀은 중시되지만 논문 내용이 실제로 얼마나 활용되는지는 별로 따지지 않습니다. 또 논문을 여기저기 이중삼중으로 팔아먹는 게 관행이 돼 있습니다. 그만큼 개인들의 윤리의식이 투철하지 않다는 얘깁니다.”
―실제로 대학에서 표절이나 논문 중복게재 문제가 심각한 수준입니까.
“어느 전직 장관은 내가 쓴 글을 그대로 베껴서 자기 이름으로 신문에 글을 낸 뒤 나를 만나서는 “제가 선생님 글을 좀 갖다썼습니다”라고 웃고 넘어갑디다. 이런 형편입니다. 외국의 학문풍토는 표절이나 조작을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날로 매장 당합니다. 우리도 점점 엄격해지고 있긴 하지만 지적소유권에 관한 인식이 아직도 엄격하지 않습니다. 퍼 가고 짜깁기하고 대필하고 하는 일이 아직도 비일비재합니다. 학생들 리포트를 보면 남의 글을 통째로 베끼는 일이 습관이 돼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대학 내에 연구윤리 담당 부서가 없습니까.
“없어요. 다른 대학에도 없어요. 사실 그것은 제도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교수로서 지켜야 할 금도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후배 교수들에게 돈을 벌고 싶으면 차라리 기업에 가라고 합니다. 연구실에 책이 한 권도 없고 용역보고서만 가득한 교수가 있습니다. 연구실에서 퍼팅연습하는 교수도 있습니다. 교수 연구실에 응접세트는 왜 필요합니까.”
―이번 김병준 부총리 논문 논란을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우선 ‘논문 심사위원과 학위 보자가 유사한 내용의 논문을 집필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김 부총리의 해명대로 자신의 논문이 제자의 것보다 먼저 나온 것이었다면 역으로 학생의 학위논문을 통과시키지 말았어야 합니다. 또 제목과 내용을 일부 바꿔 (중복)게재하는 것도 학계에선 용납하지 않습니다. 승진이나 연구비 신청을 위해 실적을 높여야 하는 사정 때문에 여기저기 논문을 게재하게 되는데 그것은 분명히 학문적 기망행위입니다. 정년퇴임이나 고희 기념논문집에서나 용납되는 일입니다. 행정학계에선 간혹 고위 공직자가 자신의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젊고 유능한 사무관을 동원해 논문을 쓰게 하거나 조교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급자는 싫어도 말을 들어야 하고 조교는 금전적 혜택이 수반되니까 교수 얼굴을 봐서 일을 합니다만 매우 불미스러운 관행으로 척결되어야 옳습니다. 옳지 않은 것까지 관행이라는 미명으로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자기변명이고 자기비호의 방편일 뿐입니다. 학위수여에 연구비 거래가 개입된다는 것은 참으로 부도덕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교육부가 김 부총리 개인의 의혹 해명에 총동원되다시피 한 것을 비판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건 매우 심각한 조직윤리 문제입니다. 무슨 정책 논쟁이라면 몰라도 한 개인의 과거 문제인데 왜 교육부 국장 과장들이 해명에 매달립니까. 정부가 공무원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으니 동원을 하는 것이죠. 청문회 준비부터 사퇴까지 공무원들이 김 부총리 감싸느라고 고생이 많았을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합니까.
“미국에서는 논문을 쓴 사람이 발표하기 전에 미리 3~4명에게 읽어달라고 돌립니다. 이 과정에서 혹시 표절의 소지가 있는지, 독창성이 있는지 여부가 걸러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의 생각이나 글을 존중하질 않습니다. 또 남이 자신을 비판하는 것도 참질 못합니다. 자기 혼자 도덕적인 척, 깨끗하고 완벽하고 고고한 척 합니다. 그런 학문적 권위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그건 학문적 오만이지요. 모든 윤리 붕괴 문제는 바로 이런 데 그 씨앗이 있습니다.”
―이번 파문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뭡니까.
“대학의 본질과 본분은 연구하고 학생들 잘 기르는 것입니다. 사회봉사나 정부 자문은 2차적인 것이지요. 그런데 본말이 전도되어 사회봉사나 정부 자문이 먼저인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뒤집힌 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한 개인은 바보가 됐지만 그 희생 위에 새로운 것이 나와야 합니다.”
―다음 교육부총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이번엔 새로운 발상으로 기업의 CEO 출신이 맡았으면 합니다. 김진표 전 부총리는 그 전 단계라 할 수 있지요.”
―김 부총리는 “이런식으로 검증하면 교수들이 공직에 못갈 것”이라고 했는데요.
“공직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준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합니다. 공직에 진출하려면 누구든 간에 일반적 기준보다 훨씬 높은 윤리적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유지됩니다. 옛날에는 엉터리로 했다고 치더라도 앞으로는 달라져야 합니다. ‘그동안 그렇게 했으니 나도 좀 하자’는 식은 안됩니다.”
―당장 어떤 교육정책이 필요합니까.
“평준화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우선은 엘리트 교육을 강화해야지요. 또 이제는 정부의 교육 패러다임을 바꿀 시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초중고교 교육은 교육청에 맡기고, 대학교육은 대학에 맡기고 교육부는 과기부 등과 합쳐서 종합적 인재양성 정책을 연구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한종호차장 idhan@munhwa.com
정리 = 음성원기자 eumryosu@munhwa.com
[ 약력 ]
▲1940년 서울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 및 행정대학원 (65년)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 박사(71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72년) ▲한국행정학회장(91~92년) ▲서울대 행정대학원장(92~94년) ▲한국공공정책학회장(97~99년) ▲중앙인사위원회 초대 위원장(99~2002년) ▲중국 국가행정학원 겸임교수(2000~2003년)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장(2004년)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장(2004~2006년) ▲국회 정치개혁협의회 위원장(2005년) ▲서울대 교수평위원회 부의장(2005~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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