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시민의 수행·휴식 도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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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내 부도탑을 세우겠다.(뼈를 묻겠다)”

지난해 11월 봉은사 주지로 취임한 명진(57·사진)스님이 하는 말이다. 아무리 농담반진담반 섞어서 하는 말이지만 조계종에서 정치 바람을 가장 많이 타는 사찰 중의 하나인 봉은사를 나의 절로 여기고 가꾸다 뼈를 묻겠다니, 말이 되는가.

알려지다시피 봉은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부촌에 위치한 절. 신라 원성왕 때인 794년 창건된 이래 조선조인 1551년 선종수사찰(禪宗首寺刹·선종의 대표사찰)로 지정돼 승과(僧科·승려들의 과거시험)를 치르며 조선불교 중흥의 산실 역할을 했던 천년 고찰이지만, 무역센터,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 아셈타워, 경기고와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 등에 둘러싸인 도심 속의 사찰이기도 하다.

10만여명에 이르는 등록신도들의 대부분도 강남 사람들이어서 절의 재정도 상대적으로 풍부한 편이다. 역대 봉은사 주지들이 서울 종로구 견지동의 조계사 주지와 함께 조계종 정치의 중앙에 위치하며 총무원의 정치 풍향에 따라 심하게 흔들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명진 스님의 각오와 행동은 역대 주지들의 그것과 다르다. 부임한 지 한달도 채 안돼 봉은사를 수행과 포교, 전통문화가 함께 하는 한국의 대표 도량으로 만들겠다며 1000일 기도를 시작한 것부터가 그렇다. 지난해 12월5일 이후 그는 단 한차례도 산문 밖에 나서지 않고, 매일 새벽 4시, 오전 10시, 저녁 6시 세차례에 걸쳐 모두 1000배의 절을 불전에 올린다. 이 기도를 끝까지 해낼 경우, 그는 주지 한 차례 임기(4년)의 대부분을 절 안에서 기도만 하며 보내는안에서만 지내며 기도를 하는 셈이 된다.

지난 20일, 1000일 기도 106일째를 맞으며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자리에서, 명진 스님이 내놓은 ‘봉은사 중장기 발전계획’도 거창하다. 2만여평에 이르는 봉은사를 한국의 얼굴 역할을 할 수 있는 전통 사찰로 복원하는 한편, 도심 사찰에 걸맞게 시민들의 수행과 휴식이 동시에 가능한 도량으로 꾸미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현재 정문 오른쪽에 어지럽게 노출돼 있는 주차 공간을 정비, 지하 5층 규모의 공간에 주차장과 함께 5000명이 동시에 법회를 할 수 있는 대규모 법당, 문화센터와 공연장, 전시관, 체험관을 만드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추모 공간을 건립하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대신 지상의 공간에는 소나무를 심어 산책로를 조성하고 사라진 옛 전각을 복원하며 신라, 고려, 조선조의 시대별 정원을 꾸미는 한편 시민을 위한 참선 센터를 건립겠다는 것이다.

준비중인 소프트웨어도 만만찮다. 명진 스님은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고, 대규모 불사의 근본 목적도 어디까지나 시민들의 수행 공간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중창 불사를 하는 목적이 주지스님과 함께 하는 일요법회의 가족 법회화, 직장인과 함께 하는 수요 야간법회의 상설화, 무역센터와 테헤란로 인근의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하는 새벽명상 프로그램 운영, 외국인을 위한 템플스테이 및 외국인 전용 프로그램 운영 등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웰빙, 웰다잉 프로그램과 참살림 행복 프로그램 운영, 향후 4년 안에 1만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는 대사회 봉사단 조직 등도 명진 스님이 계획중인 소프트웨어의 일부다.

문제는 봉은사가 준비중인 사업이 하나같이 쉽지 않다는 것. 아무리 부촌에 위치한 사찰이라지만, 주차장을 정비하는데만 봉은사 한해 예산의 3배 가까이가 소요된다. 봉은사 부지가 공원용지로 묶여 일체의 건축행위가 불가능한 것도 큰 걸림돌 중의 하나다.

하지만 명진 스님은 “공원을 공원답게, 전통 사찰을 전통 사찰답게 꾸미려는 일인만큼 다소 시일이 걸리고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스님이 주지로 취임할 당시 200명에 지나지 않던 일요 법회 참여 인원이 넉달만에 1000여명으로 늘어난 것도 자신감을 더하게 하는 요소다.

명진 스님은 문경 봉암사를 비롯, 해인사, 송광사, 용화사, 상원사 선방 등을 돌며 40안거를 마친 수좌 출신. 20여년 전, 봉암사가 있는 희양산을 국립공원화하려는 계획에 반대, 이 일대를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능한 스님들의 수행 전용공간으로 만드는데 핵심역할을 한 스님이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이래, 1994년 조계종 개혁에 앞장서기도 한 이른바 ‘운동권 스님’ 이기도 하다.

“절하며 화두드니 선방 안가도 수행되지, 매일 1000배씩 하니 더 이상 가는 운동이 없지, 산문 밖에 안 나서니 절 돈 아끼지….”

1000일 기도를 시작할 당시에는 반신반의했으나 100일째를 넘기며 자신이 생겼다는 명진 스님은 자신의 기도가 단순히 중창불사를 위한 것일뿐 아니라, 수행과 건강과 재정과 포교 등에 일거칠득(一擧七得)의 효과가 있다며 “허,허” 웃었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