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View >“美, 한국 지원할 유일한 슈퍼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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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스트 텔칙(67) 뮌헨안보협력회의 총재는 ‘독일통일의 설계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헬무트 콜 전 총리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활동하며 동독붕괴 전후 미·영·프·러 주변 강대국과 외교교섭을 실무 조율, 독일통일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그가 있었기에 콜 전 총리는 뚝심으로 통일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는 게 유럽외교가의 평이다. 제주평화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텔칙 총재를 지난 23일 제주 표선면 해비치호텔에서 만나 독일 통일전후의 외교경험이 한국에 주는 의미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1 미국의 역할을 어떻게 봐야 하나

―제주평화포럼 만찬연설(6·22)에서 하멜독트린의 한반도 적용을 제안했는데 그 이유는.

“하멜독트린은 1967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동서진영간 공존과 협력을 강조하며 정식화한 것인데 비록 40여년 전의 것이지만 민주국가가 북한이나 이란, 시리아, 미얀마 등 독재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나라를 다뤄나가는 데 유용한 원칙이라고 봅니다. 하멜독트린을 한반도에 적용할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한국이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외국 파트너 없이 안보균형을 이루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안보를 위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미국문제에 대해 많은 얘기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것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독일 통일과정에서도 미국은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독일통일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강력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인들은 오늘도 이것을 절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한국은 안보기반이 확실하다는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북한 등과 대화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지난 10년 동안 대북포용정책이 진행되면서 남북관계와 한·미동맹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는데.

“독일의 경험에 비춰서 얘기를 한다면, 독일의 60·70년대 운동권 진보파들도 주독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를 했고 독일 시민들은 미국의 영향력이 너무 큰 게 아니냐고 불만도 표출했습니다. 그러나 베를린위기가 몇차례 발생하면서 독일인들은 미국만이 유일하게 독일의 안보를 보장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미국은 슈퍼파워국가라서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위기가 나타났을 때 모두 다 미국의 존재에 대해 안도감을 갖게 됐고 미국의 지원에 대해 신뢰하게 됐습니다. 그런 위기가 없을 때엔 왜 우리에게 미국이 필요하느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그 이후엔 사라졌습니다. 독일 통일국면에서도 미국의 도움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아마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미국을 비판하고, 반미를 외치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한국문제를 풀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습니다. 현재 진행되는 6자회담도 미국의 이니셔티브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고, 미국에 깊게 의존되어 있는 게 아닙니까.”

―한국 일각에서는 지나친 미국 편중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데 분단한국의 바람직한 대외관계에 대해 조언하신다면.

“한·일, 한·중, 한·러 관계가 아주 중요한 게 사실이고 모든 주변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만 이 중에서도 미국과의 관계는 가장 기본이 돼야 합니다. 한국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어서 한국 혼자의 힘으로 안보균형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나라입니다. 그러니 미국 등과의 안보관계를 강화시켜야 합니다. 미국과의 관계는 다른 어떤 나라들과의 관계와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미국이 동북아 문제 해결뿐 아니라 북핵문제, 남북통합에서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말씀인가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2. 현장에서 본 獨통일, 그리고 한반도

―콜 총리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할 때 독일통일을 예상했는지요.

“나는 당시 콜 총리의 특사로서 헝가리, 불가리아, 체코 등과 실무협상을 하며 1989년 동유럽의 변화를 지켜봤습니다. 폴란드 자유노조운동과 헝가리의 자유선거를 현장에서 체험했고,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페레스트로이카를 할 때 지켜봤습니다. 독일은 그런 나라들의 개혁과 민주화과정을 지지하고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반향이 동독에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동유럽이 소련의 개혁개방을 따를 것인지 여부를 지켜봤습니다. 당시 우리의 최대관심은 통일이 아니라 동독이 경제 및 정치개혁에 나서도록 하는 데 있었습니다.”

―서독 정부의 그런 정책은 현재 한국정부의 햇볕정책과 유사한데….

“그렇습니다. 한국정부가 바라는 것은 북한이 경제개혁에 나서야 하고, 그것에 이어서 정치개혁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보는데 그것에 대해선 중국도 같은 입장일 것입니다.”

―독일은 통일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동서독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을 달성했는데 한국에서는 통일논의를 너무 과도하게 하는 건 아닐까요.

“콜 총리는 늘 통일 지향적 자세로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 정책을 추진해나갔습니다. 동독 주민들의 삶이 좀더 자유롭게 이어질 수 있도록 하고 동독정치범이 서독으로 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런 정책은 물론 전임자인 빌리 브란트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의 정책과 맥이 닿아있는 것입니다. 동독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긴장을 줄이고 동독 주민들의 생활조건을 향상시켜주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다가 통일기회가 오면 잡아야 합니다.”

―제주평화포럼에서 ‘한국이 통일될 것을 확신한다’고 했는데 근거를 말씀하신다면.

“북한이 경제개혁에 나서고 궁극적으로 정치개혁을 시작하면 그런 통일의 기회가 올 것입니다. 물론 동독이 갑자기 붕괴했던 것처럼 북한에도 그런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현재 북한은 많은 것을 중국에 의존하는데 그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선 한국이 북한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에서는 노무현정부의 대북지원이 일방적 퍼주기라고 비판하는데 당시 서독정부는 어떤 조건으로 동독에 지원했는지.

“동서독과 남북한은 아주 다른 조건에 놓여있습니다. 북한은 굶주리고 있으나 과거 동독에서는 아무도 굶주리지 않았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굶주리는 한 대북지원은 의무이자 인도주의 문제입니다. 일단 북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놓고, 기아를 먼저 해결하고 나서 다른 조건을 따져야 합니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최소한 기아문제는 해결해줘야 합니다.”

#3. 유럽적 시각에서본 북핵해법

―한반도문제 해결에 대한 유럽의 관점을 소개한다면.

“솔직히 한국은 유럽에서 아주 멀리 있는 나라여서 한반도 상황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북핵문제는 전세계적으로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신뢰할 만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이 북한에 더욱 더 깊이 개입해서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핵문제는 이란핵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 구체적으로 유럽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유럽은 아직도 글로벌 안보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파워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한국에서는 북한에 위기가 생길 때 어떤 나라가 도울 수 있다고 봅니까? 유럽일까요? 중국일까요? 아니면 러시아? 모두 아닙니다. 미국은 유일하게 한국을 돕고 지원할 수 있는 슈퍼파워입니다. 유럽에서는 어느 나라도 미국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미국이 있어야 안보균형이 유지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호르스트 텔칙은 누구

1940년 베를린에서 태어나 베를린 자유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연방의회 기민 - 기사당 원내 대표와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1972년부터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의 외교안보자문역을 맡기 시작, 1982년부터 1990년까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했다. 이어 베텔스만 재단의 최고경영자(1991~1992), BMW재단 회장(1993~2000)을 거쳐 독일보잉사 대표(2003~2006)로 일했다.

요즘에는 텔칙컨설팅회사를 운영하며 뮌헨안보협력회의 총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8년 개교를 목표로 한독합작으로 추진되는 한독공학대학원(KGIT)의 초대총장으로 선임되어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대학원 개설작업을 진행중이다.

인터뷰 = 이미숙 정치부차장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