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에피소드와 명곡 퍼레이드

12월25일이 생일인 어린 자크는 크리스마스가 반갑지 않다. 생일날마다 미사와 파티에 묻혀 원하는 선물 한번 받아보지 못하기 때문. 자크를 포함해 이 집안의 형제는 다섯이다. 지적인 첫째 크리스티앙과 넷째인 자크와는 앙숙인 둘째 레이몽. 운동 잘 하는 셋째 앙투완과 막내 이반까지 바람 잘날이 없다.

영화 ‘크.레.이.지’(원제 C.R.A.Z.Y)는 평범한 가족의 자크의 성장스토리를 통해 가족이라는 틀을 세밀하게 들여다 본다. 훌륭한 가장 노릇을 하고 싶어하는 아버지와 다정다감한 어머니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피지만 이 가족이라고 문제가 안 생길 리 없다. 특히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 자크는 아버지가 사 주는 드럼보다는 유모차를 선물로 받고 싶어 한다. 예쁜 사촌보다 그의 남자친구가 더 끌리는 자크. 아버지와 어머니의 걱정과 가족간 충돌도 깊어진다.

영화는 평범한 가족들이 만드는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엮어간다. 남자다움을 요구하는 아버지와 자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형들,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자신 사이에서 고민하던 자크는 훌쩍 예루살렘으로 떠나고, 마약에 빠져 살던 형 레이몽은 사고를 낸다. 가족은 입고 있기엔 무거운 외투 같지만, 춥고 외로울 때 따스한 온기를 전하는 법. 결국 자크와 가족들은 해답을 찾아낸다.

‘크.레.이.지’는 본격 음악영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음악이 도드라진다. 1960년생인 자크가 성인이 되는 1980년까지를 그린 영화 속에서 음반수집광인 아버지가 트는 음악은 당시의 히트곡이고, 몇몇 팬터지 장면과 절묘하게 맞물려 흐르는 음악은 ‘명곡의 퍼레이드’다. 이는 음악감독을 맡은 세계적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의 덕분이기도 한데, 보위는 그의 히트곡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를 비롯해 핑크 플로이드의 ‘샤인 온 유 크레이지 다이아몬드’(Shine On You Crazy Diamond), 롤링 스톤스의 ‘심퍼시 포 더 데블’(Sympathy for the Devil) 등을 적절히 엮어냈다.

특히 1960년대 유명 컨트리 가수 팻시 클라인이 남긴 히트곡이자 아들들의 이름 앞자를 따서 만든 영화 제목인 ‘크레이지’(Crazy)는 작품 속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다. 자크는 어린 시절 자신이 망가뜨렸던 팻시 클라인의 희귀 LP를 구해 돌아오고, 아버지는 남들과 다른 자크에게도 손을 내민다.

강연곤기자 ky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