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은 어떻게 정당화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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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스스로 기억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마다 고문, 피, 희생이 따라왔다.”(니체)

니체의 이 경구는 이 책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 20세기에만 6000만∼1억7500만명이 정치적 목적의 대학살로 죽음을 당했다.

20세기 초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부터 2차 세계대전 동안의 홀로코스트,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20세기의 끝에 벌어진 보스니아와 코소보의 ‘민족청소’까지, 20세기는 ‘제노사이드(Genocide)의 시대’였다. 제노사이드란 특정 집단을 멸절시킬 목적으로 그 집단의 구성원을 대량학살하는 행위를 말한다.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정치과학 교수인 저자는 제노사이드가 ‘기억의 정치’를 통해 자행된다고 본다. 사람들은 기억이나 정치적 사상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기억이 주관적인 것이라 생각하지만 집단적으로 심어지고 창조되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민족·종교·인종·국가·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이 형성, 구성되는 과정 그리고 그 기억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전 과정에 개입해 기억을 조작하거나 왜곡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제노사이드 범죄나 잔학 행위를 저지르게 한다.

폭력활동에 대한 정당화는 일반적으로 보다 높은 수준에 있는 위대한 선(善), 예컨대 ‘인종을 정화한다’,‘민주주의를 구한다’, 자기방어 혹은 어떤 숭고한 이데올로기 등의 내용에 호소하면서 나타난다. 이러한 기억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세대 간에 전달되며, 폭력의 순환은 다음 세대에 전달된 증오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면서 영속화된다.

단적으로 반유대주의 정서는 로마제국 시절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중세 기독교 시대에 더욱 강화됐다. 히틀러는 유럽 역사에서 유대인을 타자 또는 이등 시민으로 보는 기존의 시선과 기억을 강화하고 왜곡하는 기억의 정치를 통해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 같은 기억은 문명화라는 겉치장으로 지워지지도, 대체되지도, 통제되지도 않는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계속 같은 이유로 행동하고 죽인다.

방법은 없는가. 저자는 “이러한 기억의 중요성을 보다 깊게 바라보고 기억과 정치 간의 관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려고 한다면, 인간 종(種)으로서의 우리는 이러한 조건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제안한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대량학살을 경험한 생존자의 목격과 증언에 귀 기울이며, 다음 세대에게 그 기억을 전달하고 삶을 보존하는 윤리를 발전시켜 내면화할 때 제노사이드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