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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09년 06월 10일(水)
서글픈 님의 발길 따라 가거나…
어음정·군등치 등 지명마다 ‘유배의 흔적’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주천강가의 언덕에 세워진 요선정. 왼쪽의 바위에 새겨진 마애좌상은 상체의 돋을새김이 깊은 데다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어 금시라도 바위에서 어깨를 빼고 나올 것만 같다. 마애좌불 뒤쪽에는 흙 한 줌 없는 바위에 뿌리를 내린 잘생긴 소나무들이 주천강의 물줄기를 내려다보고 있다.
# 서울 청계천을 건너는 영도교에서 출발하는 영월 여행

영월을 찾아가는 첫번째 여행법. 왕위를 찬탈당하고 영월 땅으로 유배됐다가 끝내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한 단종의 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영월에서 단종의 처연한 역사를 만나겠다면 고속도로에 오르기보다는, 차근차근 단종의 유배 행로를 따라가보면 어떨까.

경복궁에서 시작한 단종의 유배길은 화양리를 거쳐 광나루까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마을마다 구전을 통해 전해오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유배의 행로를 잡을 수 있다.

단종은 청계천 영도교를 건너 화양리를 거쳐서 광나루까지 간 뒤 배를 타고 여주의 이포나루를 지나 원주 흥호나루에서 내렸다. 여기서부터 다시 도보로 남한강을 따라 단강리를 거쳐 원주시 귀래면 운담리,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 원주시 신림면 신림리를 지나 솔치고개를 넘어서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에 당도했을 터. 주천에서는 강물을 따라 유배지인 청령포까지 갔으리라.

그렇다면 단종이 유배지인 영월에 당도하기 이전으로 태엽처럼 길을 감아보자. 서울 청계천 황학동의 동묘 앞에는 청계천 복원으로 다시 놓여진 다리 ‘영도교’가 있다. ‘영원히(永) 건너간다(渡)’는 다리 이름처럼 이곳은 열여섯 나이의 단종이 부인인 정순왕후와 생이별을 했던 곳이다.

정순왕후는 영도교에서 남편과 마지막 이별을 한 뒤, 이 다리와 가까운 곳에 ‘정업원’이라 이름 붙인 초라한 움막을 짓고 기거했다. 지금도 정업원 집터가 남아있으니, 서울 종로구 숭인동 낙산 아래 청룡사 안에 비각으로 세워져있다. 영월로의 여정의 목적이 단종을 따라가는 것이라면, 그 출발은 영도교와 청룡사의 정업원터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춤하겠다.



# 마을마다 남겨진 이야기를 따라 단종의 유배길을 찾아가는 길

단종의 유배길은 백성들의 울음으로 가득했다. 유배의 행렬이 경기도 광주 땅을 지날 때 호송군졸의 눈을 피해 백성들은 행렬이 마을을 지난 뒤에야 뒷모습을 바라보며 배알(拜謁)했으니, 그곳이 지금의 경기 하남시 배알미동이다.

이처럼 단종이 유배길에 쉬어가거나 물을 마신 곳마다 지명으로 흔적이 뚜렷히 남아있다. 유배길의 단종이 물을 마셨다는 여주군 대신면 상구리 마을의 샘물에는 ‘어수정(御水井)’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단종이 쉬어간 원성군 부론면 단강리의 단강초등학교의 느티나무 정자는 ‘단정지(端亭址)’로 불린다. 부론면 운남리 고개에는 백성들이 절을 했다고 해서 ‘뱃재(拜峙)’란 이름이 붙었다.

단종의 유배행렬은 서울을 떠난 지 닷새 만에 황둔에서 솔치고개를 넘어 영월땅 주천에 당도했다. 고갯길을 넘은 단종은 주천에 있는 물미마을에 도착해 이곳 샘터에서 목을 축였는데, 물미마을의 표지석에는 ‘어음정(御飮井)’이라 새겨져있다.

주천에서 잠시 머문 유배행렬은 청령포로 향하는 길에 거칠고 높은 고갯길을 넘었다. 지금은 영월읍내와 주천을 잇는 88번 지방도로가 고도를 높이면서 넘어가는 이 고개의 이름은 임금이 넘었다고 해서 ‘군등치(君登峙)’라고 붙여졌다. 이렇게 배를 타고 고개를 넘어 유배행렬이 청령포에 당도한 것은 경복궁을 떠난 지 꼭 7일 만이었다.

청령포는 서강이 휘어져 도는 물도리를 끼고 있는 땅이다. 삼면이 물로 막혀 있고, 뒤편은 험한 산봉우리들로 막혀 배가 아니면 오갈 수 없는 곳이다. 청령포는 단종의 묘인 장릉과 함께 영월을 찾은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든 들러가는 곳. 굳이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상세한 표지판이 여행자들을 안내한다.

# 영월 땅에서 발길이 드문 곳들을 찾아나서다

단종이 사약을 받고 최후를 맞았던 영월의 객사인 관풍헌 곁에는 자그마한 누각인 자규루가 서있다. ‘자규(子規)’란 두견새(소쩍새)를 일컫는 것인데, 단종의 자취가 서린 곳에는 유독 두견새와 관련한 이름이 많다. 아마도 단종의 비애를 피를 토하는 두견새의 울음에 자주 견주기 때문이겠다. 장릉에도 ‘배견정(拜鵑亭)’이란 작은 정자가 있다. ‘두견새가 배알한다’는 뜻인데, 단종의 뒤를 따라 동강에 몸을 던진 시종과 시녀의 넋이 두견새가 돼서 능을 찾아와 문안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화암’이라면 누구든 부여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이곳 영월에도 낙화암이 있다. 두견새가 됐다는 단종의 시종과 시녀가 몸을 던진 곳이 바로 덕포시장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벼랑인 ‘낙화암’이다. 한낱 시중을 들던 시종과 시녀까지도 푸른 강물에 몸을 던지게 했던 것은 충절이나 의리 같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가엾은 어린 임금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가눌 길 없는 슬픔이었으리라.

영월공고 뒤편 산기슭에는 단종의 영정을 모신 영모전이 있다. 단종이 곤룡포를 입고 백마를 탄 모습의 영정은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것. 영정 속에는 한 촌로가 말 위의 새하얀 얼굴의 단종에게 머루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바치며 절을 하고 있다. 그 촌로가 바로 단종의 유배소식을 듣곤 몰래 과일과 먹을거리를 장만해 배를 띄워 청령포로 단종을 찾아들었다던 추익한이다.

영모전 아래 충절사에는 추익한과 죽음을 무릅쓰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홍도, 그리고 단종 승하 후 자식들에게 벼슬길에 나가지 말 것을 당부하며 서강에 몸을 던져 자결한 정사종 등 3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렇듯 차근차근 영월 땅의 숨겨진 곳들을 돌아보노라면 단종의 유배와 죽음에 대한 안쓰러움만큼이나 이들이 느꼈을 슬픔과 애통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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