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그림에 풀어낸 ‘영원한 사랑’

영국 시인 로버트 배릿 브라우닝의 시(If you must love me)에서 제목을 빌려온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은 만화다. 동시에 현실과 팬터지를 오가며 인간의 본질적 의문을 추구한 소설이다. 문학성을 지향하면서도 이야기의 빠른 전개로 대중에게 쉽게 다가간다는 점에서 일본의 ‘라이트 노벨(light novel·輕小說)’과 유사하고, 비주얼한 팬터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을 닮았다. 스토리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회사인 올댓스토리의 작가 양윤석씨가 글을 쓰고, 만화창작집단인 풍경이 그림을 그렸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척 궁금해면서도 세상사에 시달리는 동안 까맣게 잊어버리는 의문이 이 책의 주제다. 과연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란 게 존재할까.

주인공은 왜 배우를 하지 않느냐는 소리를 자주 들을 정도로 끌밋한 외모를 지닌 31세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양창호.

그는 수많은 여자들을 사귀지만, 절대로 오래 만나진 않는다. 사랑은 단순한 호르몬의 작용이어서 일시적 효능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시한부 삶을 정리하던 중에 자신을 극진히 간호하는 봉사자 미호를 만나면서 그의 생각은 바뀐다.

미호를 사랑하게 되면서 더 살아야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게 된 그는 암 치료제 실험에 과감히 몸을 맡겨 기적처럼 소생한다. 그는 미호에게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지만, 몇 년 뒤 잠깐의 유혹에 흔들려 사랑을 잃게 된다. 그는 사라진 미호를 찾아 천지사방을 헤매고, 목이 타는 듯한 그리움 속에서 사랑의 진정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여주인공 미호는 남자들이 꿈꾸는 이상형의 여인이다. 완벽한 외모에 겸허한 성격으로 타인을 헌신적으로 배려할 뿐만 아니라 음식과 살림에 능하고, 잡기(雜技)와 서화(書畵)에 두루 뛰어나다.

도대체 이런 인간이 있을까 싶지만 책을 보는 동안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 흐르는 듯한 이야기의 흐름 속에 미호의 매력을 적절히 배치해놨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문학과 의학, 역사 지식을 곳곳에 두어서 독자의 지적 만족감을 채워준다. 유럽과 중동 등 세계 각지뿐만 아니라 전국의 각 도시를 여행하는 재미도 선사한다. 그림이 담백한 느낌을 주는 것도 큰 미덕이다. 대중을 흡인한답시고 과장되거나 선정적 그림에 의존했다면 감동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한국 만화의 수준을 낮게 보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