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무리한 양적 팽창·품질 관리 소홀… ‘리콜 부메랑’으로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토요타자동차 사장은 1월29일 세계경제포럼(WEF) 참석차 방문한 스위스 다보스에서 “고객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품질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세계 1위에 올랐던 토요타 신화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기술과 품질에서 세계 1위로 일본의 상징이었던 토요타가 어쩌다 세계적으로 800만대를 넘는 대규모 리콜사태를 부를 정도가 되었는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1. 리콜한 차량 규모와 차종은

토요타는 1월21일 가속페달 문제와 관련, 미국에서 8개 차종 230만대를 리콜조치한다고 밝혔다. 리콜 대상은 2009~2010년 생산된 라브4(RAV4)와 코롤라, 매트릭스, 2005~2010년 생산된 아발론, 2007~2010년식 캠리와 툰드라, 2010년식 하이랜더, 그리고 2008~2010년식 세콰이어 등이다. 이어 토요타는 1월27일 북미지역에서 110만대를 추가 리콜했고, 유럽에서 약 200만대, 중국에서도 7만5000대를 리콜했다. 지난 3일에는 멕시코에서도 3만대를 리콜했다.

앞서 토요타는 지난해에도 미국에서 운전석 매트가 미끄러져 가속페달을 누르는 문제와 관련, 렉서스 등 420만대를 리콜한 바 있다. 이를 모두 합치면 1000만대에 육박한다. 운전석 매트와 가속페달 결함 문제가 겹치는 차량이 있기 때문에 토요타 측은 전체 리콜 규모를 800만여대로 보고 있다.

2. 국내 시판자와 문제 된 차량은 어떻게 다른가

현재 가속페달 결함으로 생산 중단 및 리콜 조치를 취한 모델 가운데 국내 시판 중인 토요타 차량은 중형 세단 캠리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브4 등 2가지다. 토요타 국내 판매법인인 한국토요타는 캠리와 라브4를 지금까지 2000대 정도 팔았다. 하지만 토요타 측은 국내 시판되는 모델이 일본에서 생산, 수입되어 가속페달 방식이 미국 시판 모델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문제가 된 미국 시판 모델의 가속페달은 연결 부위가 마찰식이어서 고무 매트 등 이물질이 끼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한국 시판 차량은 가속페달이 스프링식이어서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국토해양부는 자동차성능연구소에 의뢰해 국내 수입된 토요타 차량을 표본 조사한 결과 가속페달이 다른 사실을 일부 확인했다.

3. 병행수입 토요타 차량 국내서 리콜 어떻게

병행수입(그레이 임포트)이란 독점 판매권을 가진 공식 수입업체가 아닌 수입업체가 다른 유통경로를 통해 상품을 국내로 들여오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수입 공산품 가격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일부 예외를 두고 병행수입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토요타 차량의 국내 공식 판매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됐지만 병행수입을 통해 미국산 토요타 차량이 수입돼 판매됐다. 국내 대표적 병행수입업체 SK네트웍스는 2007년 11월부터 미국산 캠리와 아발론 등 100여대를 수입했고 기타 수입업체 4∼5곳이 미국에서 토요타 차량을 신차 또는 중고로 수입해 국내 시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미국산 토요타 차량의 경우 가속페달 관련 결함을 안고 있어 국토부가 우선 리콜 대상으로 지정했다.

4. 리콜대상 차량에서 문제된 부분은

이번 리콜사태를 초래한 결함은 가속페달이 고정돼 원위치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요타 가속페달 문제점은 지난해 8월 미국에서 렉서스 사망사고가 발생한 뒤, 고속도로안전관리국(NHTSA)이 페달 결함으로 인한 차량 폭주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토요타는 지난해 운전석 매트 문제가 원인이라며 렉서스 380만대를 리콜했다. 그러나 가속페달 자체의 구조적 결함 아니냐는 의혹 제기가 이어졌고, 토요타도 문제를 인정하면서 이번 리콜이 이뤄졌다. 리콜대상 차량에 사용된 가속페달은 톱니바퀴식 마찰구조로, 이물질이나 부품 마모, 열, 수분 등에 의해 마찰레버와 페달 구동부 마찰이 강해지면서 페달 고정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마찰레버가 마모된 상태로 저온일 때 히터를 켜면 해당 부분에 결로가 발생, 가속페달이 늦게 반응하거나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게 토요타 측 설명이다.

5. 하이브리드자동차도 문제가 됐다는데

친환경 차량으로 각광받고 있는 토요타 하이브리드 차종 ‘프리우스’에서 브레이크 결함문제가 제기됐다. 프리우스 브레이크 관련 불만은 미국에서 100건 이상, 일본에서도 77건이 접수된 상태다. 파인 곳이나 미끄러운 노면을 저속주행하는 경우, 순간적으로 1초 안팎의 시간 동안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시속 20㎞로 주행할 경우 1초 동안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차량이 5m 이상 전진하게 된다. 브레이크 불만이 가장 많이 접수된 차종은 2010년 신형 프리우스로, 지난해 5월부터 일본에서 판매된 최신형이다. 게다가 이 문제가 공표된 것은 지난 3일이지만, 토요타는 이미 브레이크 제어 컴퓨터 문제임을 발견하고 1월 생산된 차량부터 결함을 개선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토요타가 프리우스 결함을 조용히 처리하고 넘어가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6. 수리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토요타가 제시한 수리방법은 가속페달 내부에 금속으로 제작된 강화판을 넣는 것이다. 일명 ‘스페이서’로 불리는 강화판을 삽입함으로써 가속페달 불량 원인이 되는 마찰레버와 페달 본체 간 접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 토요타 측은 이런 방식으로 문제 차량을 수리하는데 대당 30분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스페이서 삽입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토요타의 결함이 단순히 페달의 기계적 문제가 아니라, ‘전자식 스로틀 제어장치(ETCS-i)’로 불리는 전자장치 문제라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토요타 관련 청문회를 계획하고 있는 미국 하원 에너지·통상위원회 바트 스투팩 민주당 의원 등은 토요타 미국법인 측에 “전자 제어시스템 결함이 아니라는 사측 주장을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7. 기술·품질의 토요타가 이렇게 된 이유는

토요타가 세계 1위 자동차업체가 되기 위해 무리한 양적 팽창을 추구하면서 해외 품질 관리를 소홀히 한 데 화근이 있었다. 토요타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자동차 생산 규모를 334만대나 확대했고 급성장시기에 새로운 설비투자가 우선시됐다. 엔저 상황까지 겹치자 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현지 부품 조달 비율을 높였다. 이는 토요타에게 주요 차종의 가속페달 결함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특히 부품공용화를 통해 효율을 높이려고 했지만 공용부품에 결함이 생기자 리콜 대상 차종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문제의 페달은 미국 부품업체에서 조달한 것이다. 재고를 최소화하면서 품질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토요타 방식이 허점을 드러낸 셈이다. 위기를 관리하는데도 일본 최고 기업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미 이번에 문제가 된 가속 페달은 이미 3년 전인 2007년 미국에서 소비자의 신고로 문제가 된 적이 있지만 토요타 측은 이때 적극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8. 미국과 일본 무역분쟁 확산 가능성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자국 자동차업계를 살려야 하는데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동차업계 및 미국자동차노조(UAW)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정치적 상황 때문에 토요타 리콜사태가 미·일 무역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하원 정부개혁감시위원회가 오는 10일 토요타 관련 청문회를 열고, 에너지·통상위원회도 오는 25일 청문회를 실시한다.

레이 러후드 미국 교통장관은 지난 2일 토요타가 미국 교통부 압력을 받고서야 리콜에 나섰으며, ‘안전 불감증’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고 비난했다. 또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UAW는 친노동 성향의 하원의원들에게 “무역장벽을 이용해 미국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일본업체 등에 강경태도를 취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토요타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변질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9. 이번 사태로 자동차 시장의 변화는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상당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1월 토요타 판매는 9만8796대를 기록, 1년 전보다 16% 하락했다. 토요타의 미국 시장점유율도 지난해 17%에서 14.2%로 떨어졌다. 반면 포드는 1월에 11만6277대를 판매, 토요타를 추월했다. 제너럴모터스(GM)는 1월에 14만6315대를 판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판매가 증가했다. 1월 현대차 판매도 3만503대를 기록, 1년 전보다 24.4%나 증가했다. 캐나다에서도 GM, 크라이슬러, 포트는 1월 판매가 증가했다. 그러나 토요타의 ‘렉서스’ 브랜드는 판매량이 10.4% 감소했다. 혼다 캐나다는 고급차 브랜드 ‘어큐라’를 포함, 판매량이 15.4% 추락했다.

10. 한국차들은 문제없나

일본 제조업의 신화격인 토요타의 위기에서 보듯 대량 리콜 사태는 특정 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현대·기아차 등 한국차의 경우 2000년을 기점으로 계속 품질이 좋아지고 있는 추세다. 오히려 품질 수준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해외 현지 생산 규모를 대대적으로 늘리고 있는 현대·기아차로서는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현지 조달 부품에 대해 치밀하게 관리할 수 있는 중간 관리자 육성이 시급하다. 토요타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현대·기아차가 품질 관리체제를 업그레이드할 경우 ‘천금의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다.

예진수·김성훈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