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美 6~7명중 1명이 ‘그들’… 히스패닉이 미국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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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이어 히스패닉 대통령도 멀지 않았다. 미국의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나오는 얘기다. 히스패닉은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을 한꺼번에 부르는 이름. 이들은 인종별로 다소 복잡하지만, 스페인어를 사용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미국 내에서 히스패닉으로 불린다.

지난 2000년 인구센서스에서 흑인과 대등한 인구로 커진 히스패닉은 미국 내 최대 마이너리티의 위상을 확보했다. 2010년 미국 인구센서스의 관심도 히스패닉이 도대체 얼마나 늘었느냐 여부로 모아지고 있다. 히스패닉 인구의 증가는 미국의 국가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문제인 데다 미국의 미래에도 굉장히 중요한 이슈다. 정치, 경제, 언론 등 각 분야에서 히스패닉은 미국 내 신파워 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 히스패닉의 현주소 = 히스패닉은 2000년 인구센서스를 기준으로 했을 때 3530만명으로 미 전체 인구의 12.5%를 차지했다. 당시 흑인 인구는 3465만명으로 12.3%였다. 백인을 제외한 미국 내 마이너리티 중 히스패닉이 흑인을 제치고 최대 집단으로 올라선 것이다.

1990년 조사에서 2240만명으로 9%에 불과하던 히스패닉 인구는 2000년 조사 때까지 10년간 무려 57%의 인구성장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미국 전체의 인구성장률은 13.2%에 불과했다. 이 10년간 미국 내에서 늘어난 3270만명의 인구 중 40%인 1290만명의 인구가 히스패닉에 의해 증가했다. 한마디로 미국 인구는 히스패닉에 의해 늘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스패닉의 인구 증가 속도는 미 정부 당국의 예측을 번번이 빗나가게 만들고 있다. 90년 인구센서스 당시 2000년 히스패닉 인구가 3060만명, 2010년 3930만명, 2050년 8070만명으로 예측됐으나 모두 빗나갔다. 2000년 미 정부 당국은 2010년 4780만명, 2050년 1억250만명으로 긴급 수정했다. 2050년이면 미국 인구의 24.4%를 차지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4명 중 1명이 히스패닉이다.

지금까지 히스패닉의 인구증가 추세로 볼 때 히스패닉 인구비율이 30% 선에 육박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 히스패닉 인구 증가의 원인 = 히스패닉의 인구 증가 원인은 크게 두가지. 높은 출산율과 이민자의 급증 때문이다. 지난 2007년 미국은 35년 만에 처음으로 2.1의 출산율을 기록했다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이는 국가적으로 인구가 꾸준히 증가할 수 있는 출산율이다. 1957년 베이비붐 시대의 영향으로 3.8까지 치솟았던 미국의 출산율은 1976년 1.7로 바닥을 친 뒤 겨우 2.0을 넘어서더니 2.1까지 확대됐다.

이 역시 히스패닉의 도움 덕분이다. 미국 내 백인의 출산율은 1.86에 머물고 있고, 흑인은 2.1인데 비해 히스패닉은 2.9로 나타났다. 당시 사회학자들은 히스패닉에 의해 미국 인구가 지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히스패닉의 높은 출산율은 가톨릭의 영향이 크다. 대부분 가톨릭 신자인 히스패닉은 낙태를 금지하는 종교적 영향으로 출산율이 높아지고 있다. 히스패닉 이민자 역시 빠르게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6년 간이 인구조사에서 히스패닉 인구의 60%는 미국에서 태어난 반면, 40%는 미국 밖에서 태어난 이민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이민자의 비율은 12.5%에 불과했다. 히스패닉 인구 중 이민자의 비중이 월등히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민자들은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에서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히스패닉 인구 중 멕시코인의 비중은 64%에 달한다.

◆ 흑인과는 협력과 갈등 ‘이중성’= 히스패닉의 성장은 우선 흑인들을 자극한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흑인들의 밥그릇을 뺏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히스패닉 남자들은 교육열이 백인에 비해 낮기 때문에 건설분야나 생산직에 히스패닉 인구의 약 50%가 투입되고 있다. 흑인들 역시 전문직으로 진출이 제한돼 히스패닉과 일자리를 놓고 충돌한다. 똑같이 미국 내 소수자이지만 경쟁하는 처지다.

미 인구센서스국의 한 관계자는 “히스패닉의 꾸준한 증가에 충격을 받은 흑인사회가 2010년 인구센서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면서 “이대로 히스패닉이 미국 내 최대 마이너리티로 굳어진다면 흑인은 제3의 집단으로 떨어져 상대적으로 발언권이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히스패닉은 이번 인구조사에 적극적이다. 이달 초 미 여론조사기관 퓨 히스패닉센터가 발표한 조사 결과 라틴계 주민의 약 85%가 이미 인구센서스 설문지를 우편으로 보냈거나 보낼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특히 이민자 출신 라틴계 주민의 참여율이 91%로 미국 태생 라틴계(78%)보다 높게 나타났다. 지난 2000년 인구센서스 당시 히스패닉의 우편 참여율은 약 69%에 불과했던 데 비해 더욱 적극적으로 변한 것이다.

이미 웬만한 미국의 주에서는 스페인어가 사실상 제 2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히스패닉의 인구가 늘어날수록 미국은 실제적인 이중언어 국가로 변할 수 있다. 히스패닉이 인구증가에 따른 ‘단맛’을 봤기 때문에 이번 인구센서스에 더욱 적극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인구센서스는 10년마다 실시해 연방의원 의석수를 확정하고 지역예산을 할당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따라서 각 국가출신별 인구수는 그대로 정치적 파워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는 인구의 36.6%가 히스패닉으로, 이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다만 히스패닉은 여러 국가로 구성돼 있어 동질성이 약하고, 낮은 교육수준 때문에 아직 미국 사회 지도층에 참여비율은 저조하다. 히스패닉 인구 중 전문직 참여비율이 13.7%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국 내 인구가 꾸준히 늘고, 인구센서스에 적극 참여하면 그만큼 히스패닉의 목소리가 각 분야에서 커져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 = 천영식특파원 kka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