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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랜만입니다 게재 일자 : 2010년 08월 13일(金)
“363戰 겨룬 조훈현과 茶 한잔 나눈적 없어”
‘토종바둑의 전설’ 서봉수 9단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서봉수 9단이 6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중국 출신 장주주 9단과 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 마스터스 예선전을 벌이고 있다. 심만수기자 panfocus@munhwa.com
인터뷰 = 엄주엽 체육부 부장대우

서봉수(徐奉洙)…, ‘잡초’‘토종’‘자객’ 등이 그 이름 앞에 따라다녔다. ‘무사독학(無師獨學)’은 그를 말해 주는 사자성어다. 1970년대 초반, 세계 최강 일본의 바둑가(家)에서 무공을 쌓은 유학파들이 한국을 주름잡던 시절, 스승도 없이 잡초처럼 이 땅에서 자란 한 자객이 홀연 나타나 중원을 평정했으니, 그가 서봉수다.

1970년 열일곱 살에 프로에 입문해 그 이듬해 김인과 조남철을 잇달아 베고 명인전을 꿰차면서 지금도 그는 ‘서 명인’으로 불린다. 이후 15년 동안 조훈현과 펼친 라이벌전은 한국 바둑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 프로 입단 41년, 쉰일곱. 그 세월이 서봉수를 비껴가진 않았다.

머리는 듬성듬성 빠졌고 기력(氣力)과 기력(碁力) 모두 쇠했다. 여전히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을 드나들며 각종 기전에 참가하고 있는 서 명인을 지난 6일 한국기원에서 만났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에게 이혼과 재혼, 요즘 일상에 대해 솔직히 들을 수 있었다. 이날 서 명인은 중국 출신 장주주(江鑄久) 9단과 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 마스터스 예선에서 계가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했다. 점잖게 복기까지 하고 일어났지만 잡친 기분을 어쩌진 못하는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지면 기분이 언짢은 것은 차이가 없습니까.

“프로기사가 지고 이기는 게 병가지 상사인데, 그건 안 돼요. 오늘처럼 역전패를 당하면 더 그렇죠. 젊을 때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어요.”

―예전 글을 보면, ‘적개심이 없으면 바둑이 안 된다’고 말했을 만큼 승부욕이 강한 기사였는데.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젊음이라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에너지가 너무 넘치니까 주체를 못해 밤도 무수히 새우고…. 젊어서 너무 승부욕이 강하다 보니 그게 힘들었어요. 남들보다 더했죠. 대국 전부터 몹시 긴장하고, 큰 승부가 걸리면 더 심했고요.”

치열한 승부욕은 몸의 증상으로도 나타났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 것이었다.

“집에 오면 어머니에게 허리를 몽둥이로 때려 달라고 했어요. 너무 아파 발로 밟는 정도로는 풀리지 않았어요. 병원에 가도 이상이 없다 하고. 나중에 나이 먹어 바둑도 적게 두고 하니까 사라지더군요. 승부욕에 젖어 무리하다 보니 생긴 증상이죠.”

서 명인은 자신에 대해 치장이나 포장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웃음과 비슷하다. 대개의 사람들은 웃음이, 예컨대 ‘하하하’ 등 몇 가지로 정형화돼 있는데, 서 명인은 그냥 말을 하다 ‘나오는 대로’ 웃는다. 그것도 자주. 인터뷰를 하면서 그에 관한 젊은 시절의 ‘전설’들도 과거 바둑기자들이 비장미 넘치게 포장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훈현 9단과의 피 말리는 라이벌전에 대해 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신문은 서 명인이 “당시 조훈현이 나의 스승이었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썼다. 물론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지만….

―조 국수(조훈현)와 대국을 한 뒤 복기를 안 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게 다 라이벌 의식 때문이었겠죠.

“상수가 하수에게 복기를 하자고 해야 복기가 이뤄지는 거거든요. 그때는 조 국수가 1등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복기를 하자고 해야 제가 받아들이는데, 그게 없었어요. 한마디로 그 사람이 복기를 안 해 준 거지. 그게 꼭 조 국수와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대부분 그래요.”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 조 국수하고 오다가다 만나 차도 한잔 하면서 옛 얘기도 하셨을 텐데요.

“대국은 같이했지만 사적으로 만나 어울린 적은 없어요. 바둑판 앞에서만 본 거죠.”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두 사람의 15년간 혈전이, 한국 바둑이 종래 일본까지 넘어서게 한 거 아닌가’라고 물었더니 말꼬리를 돌리며 한국 바둑에 대해 얘기를 풀었다.

“어쨌든 그 과정이었죠. 모두가…. 일본 바둑의 몰락은 기타니 도장이 문을 닫으면서부터라고 봐요. 연구하는 분위기가 사라진 거죠. 한국 바둑도 거기서 배울 게 있다고 봅니다.”

기자의 생각에 서 명인은 바둑인생에서 크게 세 번의 영광이 있었다. 조훈현과 주고받은 국내 기전은 제외하고. 첫째가 조남철을 꺾고 중원에 이름을 알린 1971년 명인전, 그 다음이 당시 가장 큰 세계대회인 1993년의 제2회 응씨배 우승, 마지막이 1997년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의 전설적인 9연승 우승이다.

―세 대회 우승 중에 어떤 게 제일 소중한가요.

“프로는 세계대회 우승이 최고죠. 명인전 첫 우승은 개인적인 것이었고, 진로배는 국가대항전이니 단체전이었죠. 물론 깨지기 어려운 9연승 기록을 세웠다는 데 의미가 있지만. 역시 응씨배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세계대회 우승이었고 한풀이도 됐고요.”

‘한풀이’란 이창호의 등장으로 서 명인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는 때의 우승이었다는 의미다. 진로배는 서 명인이 단기필마로 창하오(常昊), 왕리청(王立誠), 마샤오춘(馬曉春),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차오다위안(曹大元) 등 일본과 중국의 장수 아홉명을 차례차례 베면서 하나의 전설을 만든 기전이다.

서 명인은 고향은 대전이지만 어릴 적 서울 이태원에서 성장했다. 전후 척박한 유년기를 보내면서 또래들과 미군부대에서 쌍안경을 ‘주워’(?) 팔려다 잡히는 등 장난이 심해 어머니가 대방동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가 1급으로, 기원에 심부름을 다니다 어깨 너머로 바둑을 배웠다.

―언제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나요.

“당시 유일한 고교생 대회인 동양삼국 학생바둑대회에서 우승하면서부터죠. 이후 동양공고에서 배문고로 스카우트됐고 그때부터 학교도 안 가고 바둑만 둔 거죠.”

―조훈현이나 이창호나 모두 10세 전후에 프로에 입문했는데, 서 명인은 늦은 거 아닙니까. 좀 더 빨랐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조 국수는 어릴 적 재능이 드러나 유학한 거고. 당시 초등학생 바둑교실이 있지도 않았고, 어려서 바둑을 두면 혼나던 시절이에요. 남들보다 늦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재주가 없고 머리도 나빠서 일찍했어도 소용이 없었을 거예요.”

―그간 우승도 많이 했으니 돈은 좀 모으셨겠네요.

이 질문에 서 명인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쉰이 넘은 나이에 이혼과 베트남 여성과의 재혼 등 이후의 생활에 대해 얘기를 풀었다.

“이혼하면서 돈은 와이프한테 다 주고 나왔어요. 어머니 하고 월 10만원짜리 셋방 살 때 우승상금은 어머니가 관리했고 내 손으로 만져 본 적이 없어요. 나는 대국료만 갖고 살았죠. 결혼하고서는 와이프가 다 관리해 나는 얼마 벌었는지도 모르죠, 뭐. 우승횟수를 따져 보면 계산이 나올 텐데, 응씨배 우승으로 40만달러, 당시 3억2000만원 정도 됐고 진로배로 1억5000만원 정도 등등…. 지금은 돈이 없어요.”

―열심히 바둑을 두어야 생활이 되겠네요.

“내가 잘못해서 이혼한 거니까. 지금은 밥 먹고 사는 게 다행이에요.”

―요즘 수입은 어느 정도입니까.

“감독 연봉(한국바둑리그 티브로드)이 900만원 정도예요. 대국료는 거의 없어요. 오늘 삼성화재배도 예선에선 대국료가 없어요. 본선에 올라가야 나오지. 벌이가 없으니까 근신하고 살죠. 안 쓰고 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프로 시절 초기에는 오랫동안 하루에 100원 갖고 살았어요. 버스비 15원씩 왕복 30원, 자장면 60원. 그렇게 살아 봐서 익숙해요. 돈 없어도 살아요.”(한참 웃음)

그는 이혼 1년여 뒤인 2004년 10월 스물아홉 연하의 베트남 처녀와 결혼식을 올렸다. 국제결혼 정보회사를 통해서였다.

―사실 당시엔 충격적이었어요. ‘천하의 서봉수가…’하는 얘기도 있었잖아요.

“혼자는 못 살겠더라고요. 이혼 즈음에 이미 벌이는 지금보다 더 없어서 완전히 제로였어요. 이혼하고 혼자 사니까 죽음을 느끼겠더라고요. 혼자 세상하고 뚝 떨어져서 벌이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무일푼인 나한테 여자가 있을 수도 없고. 몸은 병이 들어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나빠져 처음엔 암에 걸린 줄 알았어요. 그래서 결혼을 생각하게 된 거예요.”

―결혼하고 극복은 잘 됐습니까.

“결혼해서 외로움도 달래고…. 사람이 사람하고 같이 살아야지, 빠삐용처럼 혼자 못 사는 거 아닙니까. 그런 심정으로 결혼했고. 지금은 밥걱정은 없어요. ‘돈’하면 지금은 겁부터 납니다.”

한 시절, 한국 바둑을 쥐고 흔든 서봉수였는데…. 듣고 보니 그 같은 프로기사도 생활의 질곡 앞에선 별다른 대비가 없으면 속수무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착잡했다.

프로기사를 안 했으면 서봉수는 무얼했을까. 과거 인터뷰를 보면 ‘건달’이 됐을 거라고 했다. 별 의미없는 얘기로 들렸는데….

“모르겠어요. 공부도 못했고 머리도 나쁘고, 서울에서 밥 먹고 살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둘째 형님이 대전에 계셨는데 그 밑으로 갔을 가능성이 많았죠.”

―형님이 사업을 하셨나요.

“돌아가신 형님 얘기라서 그렇지만, 주먹세계에 있었는데 대전에서 최고였어요. 그분 밑에 갔으면 먹고 살 수는 있었으니까. 바둑을 안 했으면 형님한테 가서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밥이나 먹여 주십시오’ 하지 않았을까요. 이건 처음 하는 얘기네요.”

―40년이 넘게 바둑을 해 왔는데, 서 명인에게는 바둑이 무엇입니까.

“프로기사들이 ‘몇 수나 내다보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잖아요. 사실 어떤 때는 한 수 앞을 못 보는 게 바둑이에요. 그런 점에선 인생과 같죠. 바둑에는 한판에도 흥망성쇠가 있어요. 아주 작은 실수로도 무너지는 경험을 수없이 해오면서, 그게 참 무서워요. 오늘도 역전패했지만, 잠시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고, 한 판에 100%를 쏟아부어야 하는 게 바둑이죠. 그런 점에서 프로기사는 피곤한 직업이에요. 인생만큼이야 복잡하진 않겠지만.”

ejyeob@munhwa.com
e-mail 엄주엽 기자 / 문화부 / 부장 엄주엽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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