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에 온 이방인들의 ‘욕망과 절망’ - ‘6월 9일’속에 담긴 12개의 에피소드

  • 문화일보
  • 입력 2010-10-04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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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작가 2인의 독특한 소설 두 권이 최근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007년 등단한 최제훈(오른쪽 사진)씨의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문학과지성)과 1998년 등단한 조헌용(왼쪽)씨의 두 번째 연작소설집 ‘햇볕 아래 춤추는 납작거북이’(실천문학)다. 두 작가 모두 소설집에서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작품 세계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서로 전혀 다른 색깔이긴 하지만 독창적인 작법과 특유의 문학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최제훈 ‘퀴르발 남작의 성’ - 조헌용 ‘햇볕 아래 춤추는…’

우선 최씨는 소설집에서 기존 서사를 해체해 이야기의 본질로 접근하는 독특한 상상력과 이 과정을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능수능란한 솜씨를 보여 준다.

이 소설집엔 표제작인 ‘퀴르발 남작의 성’을 비롯, 총 8편의 소설이 수록돼 있다. 표제작은 하나로 보이는 이야기를 역추적함으로써 이야기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12개의 에피소드는 각기 다른 연도의 6월9일에 있었던 일들이다. 이 일들은 ‘퀴르발 남작 전설’이라는 허구의 구전 설화를 통해 또 다른 한 묶음의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즉 ‘이야기’의 거듭된 변형과 복제를 통해 이야기라는 것이 어떻게 변용·왜곡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수록작인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 역시 흥미롭다. 최씨는 이 소설에서 작가인 코넌 도일의 죽음을 추적하는 셜록 홈즈를 보여 준다. 이 사건은 명탐정 홈즈의 생애 최대 사건이자 미스터리다. 작가가 탄생시킨 소설 속 인물이 오히려 작가의 죽음을 추리해 나가는 아이러니를 통해 최씨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문학평론가 우찬제씨는 “최제훈의 소설은 시공을 뒤섞고 각종 서사들을 얽히고설키게 해 경쾌한 서사적 탈주를 단행한다”며 “그 난장판에서 독자들은 새로운 문학적 성찰을 얻는 즐거움을 누린다”고 평했다.

지난 1998년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소고’란 선 굵은 작품으로 등단한 조씨는 이후 발표한 ‘새만금 연작’을 통해 예리한 작가적 시선과 장인적 기술을 지닌 신예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첫 소설집 ‘파도는 잠들지 않는다’(2003)를 내놓은 후 그는 홀연 제주로 떠나 풍문으로만 접할 수 있었다. 한동안 소식조차 끊겼던 조씨가 자신의 두 번째 연작소설집으로 내놓은 것이 ‘햇볕 아래 춤추는 납작거북이’다. 욕망과 절망을 동시에 품고 세상을 표류하는 일곱 명의 이방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번 연작소설집의 공간적 배경은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 ‘마라도’. 느린 걸음으로도 40분이면 다 돌아본다는 작은 섬에서 다양한 사람의 초상을 발견해 낸 소설집은 따라서 ‘마라도 연작’이라는 별칭을 붙일 수 있겠다.

일곱 편의 연작소설은 모두 외지에서 마라도로 이주해 온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노름빚에 쫓겨 궁여지책을 찾다가 섬에 사는 친구에게 더부살이하는 ‘천국에서 온 친구’를 비롯, 어린 시절 헤어진 어머니의 기억을 좇아 바다를 향해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도시에서 온 천사’, 간첩으로 몰렸다가 풀려난 뒤 광인으로 살고 있는 ‘숲에서 온 거인’ 등이다. 또 기생 놀음을 하러 월남했다 영영 고향을 잃어버리고 만 ‘북에서 온 노인’, 번개 맞은 우주선이 추락하는 바람에 우연히 마라도에 숨어든 우주인 ‘슈루파크에서 온 아이’, 우주의 사명을 품고 글을 쓰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유배시키는 ‘지구에서 온 남자’, 폭력적인 기억들로부터 도망쳐 미래를 점칠 공간을 찾는 ‘사막에서 온 여자’가 등장한다. 이들 7인은 외부인이자 이방인이며 여행자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문학평론가 장성규씨는 “조헌용의 소설집에는 유독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며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광기란 부조리한 우리 현실에 대한 강력한 증언의 의지가 발현된 것”이라고 밝혔다.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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