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거대한 돌들이 뒹굴고 있는 고창 고인돌 유적지의 3코스 부근. 본래 마을이 있던 자리인데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고인돌이 밀집한 지역을 초지로 조성해놓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고창의 고인돌 중에서 가장 완벽한 ‘북방식 고인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산리 고인돌. 판석을 받친 고임돌의 높이가 1.6m에 달한다. 이 모습 그대로 300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 세계에서도 유례 없는 447개 고인돌의 군집지역
그건 아무래도 ‘만화’ 때문인 듯하다. ‘고인돌’이라면 터무니없게도 공룡이나 짐승 털옷을 입은 원시인 따위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선사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이 세워진 때는 지금으로부터 3000여년 전쯤의 청동기 시대. 가늠할 수도 없는 아득한 시간의 저편이지만, 따지고 보면 기본적인 삶의 형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만화에서 그려진 ‘공룡이 살았던 때’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당시 사람들은 베 옷을 지어 입고 살았으며, 쌀농사도 지었다. 청동기 시대의 끝무렵쯤에 중국에는 공자가 있었고, 그리스에서는 올림픽이 막 시작됐다.
그 무렵 전북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와 도산리 일대에 수많은 고인돌이 세워졌다. 우리 조상들은 100t이 훨씬 넘는 돌을 잘라 산 아래로 굴린 뒤 고인돌을 지었다. 얼마나 많은 수를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까지 고창에 남아 있는 고인돌은 확인된 것만 2000여개에 이른다. 죽림리 일대에 남아있는 것도 447개에 달한다. 이만한 수효의 고인돌이 한 곳에 밀집된 예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다.
이 유적지의 한가운데 ‘고창 고인돌박물관’이 있다. 세계적인 가이드북 미슐랭가이드 한국편이 ‘꼭 찾아가보라’며 별점 3개(★★★)의 만점을 매긴 곳이다. 박물관에서 고인돌 군락지로 이어지는 길에는 살구나무가 심어져 있다. 살구나무를 심은 까닭은 고인돌 발굴과정에서 당시의 토층에서 살구나무 꽃가루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유적지의 너른 초지에 철쭉을 심은 연유도 마찬가지다. 3000년 전에도 이곳에는 살구나무가 자라고 철쭉이 꽃을 피우고 있었을 것이었다.
고인돌 유적지에는 무려 3000년 동안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이 아무렇지 않은 듯 이리저리 널려 있다. 고인돌은 야트막한 성틀봉과 중봉의 남쪽 사면 아래 고창천의 물길과 평행을 이뤄 열을 지어 늘어서 있다. 덮개돌만 남은 것들은 흩어진 바위처럼 보이지만, 한 눈에도 고인돌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온전한 것들도 꽤 된다. 정해진 코스를 따라 걸으면 이런 고인돌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만날 수 있다. 하나하나 고인돌을 돌아보노라면 시간의 깊이가 저절로 묵직하게 느껴진다.
# 6개의 탐방 코를 따라 고인돌의 수수께끼와 만나다
고인돌 박물관 부근의 유적지에는 6개의 탐방코스가 마련돼 있다. 고창천의 물길과 평행으로 늘어서 있는 고인돌을 산책하듯 돌아볼 수 있도록 한 코스다. 1코스부터 5코스까지의 거리는 1.7㎞ 남짓. 평탄한 길을 따라 그다지 힘을 빼지 않아도 고인돌의 유적들을 속속들이 돌아볼 수 있다. 한낱 돌덩이가 무어 볼 게 있을까 싶은데다, 고인돌이라면 어느 것이든 다 비슷하게 생겼을 것이란 선입견까지 더해져 심드렁해질 수도 있겠지만, 뜻밖에도 코스마다 만나게 되는 고인돌의 차이가 뚜렷하다.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는 1코스는 언덕 위에 서서 한 번에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을 볼 수 있는 곳. 2코스에서는 두꺼비 모양을 닮거나 덮개돌 무게만 100t에 육박하는 거대한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 옛 마을이 들어섰던 자리인 3코스 일대에는 너른 초지에 128개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4코스는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돌을 잘라내던 당시의 채석장을 돌아보는 탐방로다. 5코스에는 고인돌 220개가 몰려 있는데 저마다 열을 지어 늘어서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1~5코스의 정 반대편에 있는 마지막 6코스는 고인돌이 5개밖에 없는데다 저 혼자 떨어져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다른 곳은 다 못본다 해도 이곳만은 꼭 들러봐야 한다. 이른바 ‘도산리 고인돌’이라 불리는, ‘고창에서 가장 잘생긴 것임이 분명한’ 고인돌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농가의 담 안쪽에 있던, 이른바 ‘탁자식 고인돌’인데, 오랜 시간을 지나오면서 어떻게 이렇듯 애초에 만들어진 그 모습을 그대로 완벽하게 간직하고 있는지 감탄스러울 정도다.
이 고인돌은 특히 조선시대에는 ‘망북단’이라 불리며 제단으로도 사용됐다. 병자호란 당시, 이 마을 출신 선비가 의병을 일으켜 한양을 향해 진군하다 굴욕적인 항복 소식을 듣고는 돌아와서는 이 고인돌 앞에서 평생을 ‘북을 향해 통곡을 하며 절을 하면서’(망북통배·望北痛拜) 여생을 보냈다고 전한다. 고인돌은 제단 외에도 주민들의 장독대로도 쓰였고, 고추 등 수확한 농작물을 늘어놓고 말리는데 쓰이기도 했다.
고창의 고인돌 군락지를 둘러보다 보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예를 들어 수몰될 위기에 처해있다 박물관 정원으로 옮겨진 90t짜리 고인돌은 거대한 기중기로 옮겨와 바닥에 50㎝ 두께의 콘크리트를 타설해 그 자리에 앉혔단다. 그대로 땅에 놓아두면 지반이 침하될 것이 분명했다. 고창의 고인돌은 이보다 더 큰 140t에 달하는 것까지 있다. 도대체 옛사람들은 콘크리트 한 점 없이 어떻게 3000년의 시간 동안 우뚝 서 있는 고인돌을 지을 수 있었을까. 무덤 하나 만들자고 왜 그런 엄청난 수고를 감당해야 했을까. 그런 수수께끼는 고창의 고인돌 밀집지역이 유네스코 유적지의 복판에 세워진 박물관에서 풀 수 있다.
# 거꾸로 꽂힌 술병, 혹은 사람의 뒷모습… 병바위
고인돌을 둘러보다 보면 고창 땅에서 유독 자주 만나게 되는 암봉과 거석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고창의 선운산 일대와 아산면 주변에는 유난히 암봉들이 많이 발달해 있는데, 따지고 보면 그것들도 다 수억년 전부터 지금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그중 색다르기로는 특히 인천강이 흘러가는 반암리 일대의 병바위가 단연 으뜸이다. 병바위란 거꾸로 꽂은 술병 모양을 한 바위인데, 그 곁에 소반처럼 생긴 ‘반암(盤岩)’과 곡식을 재는 말(斗)모양을 한 ‘두암(斗岩)’도 있다. 그곳에 당도하게 되면 누구든 독특한 바위의 형상 때문에 깜짝 놀라게 된다. 이런 범상찮은 경관 덕에 병바위 일대에는 신선의 전설이 전해진다. 그곳에 깃든 신선은 술주정이 좀 있던 모양이어서, 한창 잔치를 벌이다가 대취해 소반을 차버리는 바람에 술병과 소반이 나뒹굴어 바위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병바위라는 이름이 붙긴 했으되, 바위는 보는 자리에 따라 전혀 다른 형상으로 보인다. 정면에서 보면 기둥처럼 보이기도 하고, 병바위가 끼고 있는 인천강의 하류 쪽인 구암리 쪽에서 살짝 빗겨 보면 마치 험상궂은 도적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꾸로 꽂은 병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상류 쪽에서 볼 때. 그러나 그곳에서 보면 병이라기보다는 사람 얼굴의 형상처럼 보인다. 머리가 성글게 난 이를 뒤쪽에서 본듯한 모습인데, 머리카락이며 콧날 등이 저리도 또렷할 수 없다. 주민들은 병바위를 두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꼭 빼닮았다’고 입을 모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영락없이 그렇게 보였다.
인천강의 물길과 어우러지는 병바위 일대의 풍경은 그야말로 독특해서 비슷한 다른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러니 여기 깃든 이야기들도 수없이 많다. 마을 노인들은 병바위 꼭대기 쯤에 금복개란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다고 했다. 워낙 가파르다 보니 아무도 오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6·25전쟁 직후 김효영이란 산악인이 병바위에 올랐지만 보물은 찾지 못하고, 병바위 꼭대기에서 자라던 수백년 된 소나무분재만 캐내갔단다. 여기다가 병바위 일대가 ‘명당 중의 명당’이란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금도 수시로 찾아드는 풍수가들은 이곳을 일러 ‘금 소반과 옥 술병’을 뜻하는 ‘금반옥호(金盤玉壺)’니, ‘신선이 취해 누웠다’는 뜻의 ‘선인취와(仙人醉臥)’의 명당이라고 평한다고 했다. 병바위와 옆의 두암의 깎아지른 벼랑에는 제비집 같은 정자 하나가 아슬아슬 걸려있다. 이름 하여 ‘두암초당’이다. 조선중기 하서 김인후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변성온·성진 형제가 말년에 머물렀던 곳이란다. 정자에는 그곳에 깃든 이들의 행적이며 정자의 풍류를 적은 편액들이 빼곡하게 걸려있다.
고창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 munhwa.com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고창나들목에서 5분 거리다. 고창읍에서도 직선거리 4㎞쯤에 있다. 고창나들목을 나와 주곡교차로에서 아산방면으로 우회전. 이어 고인돌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박물관이다. 고창읍에서 찾아가자면 796번 지방도로로 아산면소재지를 지나 삼거리에서 선운사방면으로 하갑교를 건너야 한다. 병바위와 반암을 찾아가려면 아산면 소재지에서 반암리 탑정삼거리까지 가다가 구암교 앞에서 왼쪽길로 접어들면 된다. 병바위 아래를 걷겠다면 아산초등학교를 찾아가 인근에 차를 세우고 걸으면 되고, 차를 타고 강건너편에서 병바위의 독특한 경관을 바라보려면 건너편 구암리 마을회관쪽에서 제방 길로 찾아 들어가면 된다.
먹을 것 묵을 곳
고창은 장어구이로 유명하다. 특히 선운사로 드는 길목인 아산면 삼인리 일대에만 줄잡아 40여곳이 넘는 장어구이집이 성업 중이다. 할매집(063-562-1542), 신덕식당(063-562-1533), 산장회관(063-563-3434), 명가풍천장어(063-561-5389) 등이 알려진 집이다. 저렴하게 장어맛을 보겠다면 심원면 월산리의 ‘심원풍천장어 셀프구이’를 찾아가볼 만하다. 초벌구이해서 내 준 장어를 흑돌을 깐 철판 위에서 구워먹는다. 고창은 제법 알려진 여행지이지만 그에 비해 숙소사정은 그리 좋지 못하다. 호텔은 선운산 입구의 ‘선운산관광호텔’(063-561-3377)이 유일하다. 고창읍내와 선운산 입구의 모텔과 여관을 이용해야 한다. ‘모양성모텔’(063-561-5009)이 가장 최근에 지은 곳. 모텔 ‘꿈의 궁전’(063-561-6561)도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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