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경영학의 아버지’ 일본 엿보기

붓의 노래-일본화로 본 일본 /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및 해석/21세기북스

우연히 접한 일본화에 빠진 경영학 전문가는 미국 대학서 동양미술을 강의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피터 드러커(1909~2005)는 일본 전통회화의 애장자로도 유명하다. 일본화를 수집했고, 소장품으로 미국서 순회전시까지 열었다.

드러커가 일본화 소장품 ‘산소컬렉션’을 1979~1980년 뉴욕 하버드대 덴버 시애틀 등지의 미술관에서 순회전시하면서 카탈로그 삼아 펴낸 해설서가 바로 ‘붓의 노래’다.

드러커는 런던 금융기관에 근무하던 1934년, 비를 피해 들렀던 미술관에서 당시 순회전시 중이던 일본화와 처음 만났다. 오스트리아 빈 출생으로 서양화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浮世繪)에 열광했던 19세기 후반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이 그랬듯 일본화 특유의 미학에 매료됐다.

“나는 일본을 알기 위해 일본화를 본다”며 드러커는 일본 옛 그림에서 일본과 일본인 그리고 동양정신을 탐구하는 한편, 자신의 전공인 경영과의 접목을 시도했다. 그는 ‘경영은 인문예술’이라며 책에서 14~19세기 일본 화가와 일본 역사를 비롯해 일본화의 특징을 서양화가와 비교 설명하면서 동양정신의 근간에 대한 통찰력을 담아낸다.

드러커는 일본화가 센가이 기본의 ‘개구리와 달팽이’에서 단순해 보이지만 고도로 통제되고 균형 잡힌 구도에 정교한 붓놀림을 짚어 낸다.

또한 여백의 미를 추구한 일본화에 깃든 “일본화가는 공간을 먼저 보고 그다음 선을 본다”는 일본인 특유의 정신세계를 짚어 낸다.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일본 풍경화에서는 ‘일본이라는 땅에 속한 우리’라는 일본인 특유의 정신을 지목한다. 일본 화가들이 그린 풍경이 세상 어느 곳과도 닮지 않은 독특한 풍경이며, 일본인 특유의‘와레와레 니혼진(우리우리 일본인)’이란 표현에 담긴 “우리 일본인들은 너무 달라서 당신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혹은 “일본은 독특하다”는 함의를 읽어 낸다.

저자가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일본화를 통해 일본인, 일본 문화 읽기를 시도한 책에선 역자의 해석 부분에서 한국, 한국화와의 연관성이 논의된다.

이 책에서 원저의 번역과 더불어 일본화에 대한 꼼꼼한 해설 및 생전의 드러커와 만났던 일화까지 소개한 역자가 안타깝게도 이 책의 출판 즈음인 지난 8일 눈을 감았다. 대구대 총장을 지냈던 역자는 1992년 번역 출간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이후 2010년의 ‘드러커 강의’까지 드러커의 저서 23권을 번역하는 등 드러커의 경영철학을 집중 연구했던 전문가였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