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연극처럼… 돌고 도는 인생

‘꿈속의 꿈’을 꿔 보신 적이 있는지. 꿈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꾸다 깨 보니 꿈속이라는, 다소 황당한 상황 말이다. ‘꿈 같은 인생’을 빗대 말할 때 흔히 들먹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를 연극에 차용해 보면 어떨까. ‘연극 속의 연극’쯤이 되지 않을까. 또 다른 말로 메타 연극, 즉 연극에 대한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 10일부터 서울 종로구 동숭동 정보소극장에서 공연에 들어간 연극 ‘미친극’이다.

올해 대산문학상 희곡부문 수상작이기도 한 ‘미친극’은 지난 연말과 올해 초 공연에 이어 세 번째로 무대에 올랐다. 불과 1년 사이에 세 번씩이나 공연되는 것은 그만큼 관객의 반응이 뜨겁기도 하려니와 주목받는 문제작이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선 원작 그대로 올라갔던 초연과 달리 보다 과감하게 극단 백수광부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캐스팅부터 달라졌다. 초연때 극 중 작가 ‘도연’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승철이 이번엔 연출가 역할을 맡아 창작의 고뇌와 지난한 과정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도연’ 역에는 새롭게 임진순이 캐스팅됐다. 임진순 배우는 항상 약병을 달고 살 것 같은 허약한 인상에 부채를 폈다 접었다 도사연하는 태도로 룸펜 작가의 찌질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인다. 그리고 초연 당시 제3의 여작가 역할로 나왔던 황선화가 새롭게 극 중 ‘장미’ 역을 맡아 상투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초연에 비해 찌질한 상황은 더 찌질하게, 코믹한 상황은 더 코믹하게 밀고 나간다.

‘미친극’은 첫 장면으로 극작가 도연과 술집에 나가는 그의 아내 장미를 등장시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하지만 연극이 진행되면서 그들은 또 다른 등장인물인 연출가의 희곡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드러난다. 연출가에게 받을 빚이 있는 사채업자 방학수는 그 돈을 연출가의 희곡에 투자하면서 연극에 개입하게 된다. 방학수는 자신의 캐릭터를 닮은 인물을 작품 속에 등장시킬 것을 종용하며 점차 작품 속에 깊숙이 빨려 들어간다. 그는 극중극에서 채권을 무기로 도연의 아내 장미를 차지한다.

한집에 사는 세 사람의 애증 관계는 마치 꼬리를 물듯 이어진다. 방학수는 점점 희곡 속의 삶과 현실의 삶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계에서 혼란을 겪는다. 실제인지 알았는데 연극의 한 장면으로 밝혀지고, 그것마저도 또 다른 희곡의 일부이고, 또 그마저도 또 다른 연극의 한 장면이다. 이는 곧 거울을 마주 세워 놓으면 거울 속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거울의 모습을 닮았다. 그렇다면 끝은 어디인가. 마침내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늙고 지친 방학수는 여작가에게 이렇게 부르짖는다.

“선생님. 제가 사채업자 방학숩니다! 그 빌어먹을 놈의 방학수요. 선생님은 저의 마지막 작가가 돼 주셔야 합니다. 살려 주십시오. 저 행복하고 싶습니다. 해피엔딩이오, 해피엔딩!”

하지만 방학수를 상대하는 여작가는 마치 신이 인간을 내려다보듯 쳐다볼 뿐이다. 끝나지 않는 연극처럼, 우리 인생 역시 끝없이 돌고 돈다는 것을 풍자하는 듯하다. 최치언 작, 이성열 연출. 김학수·김승철·임진순·황선화·김준태·박찬서·최한결·임기향·제정경 출연. 공연은 27일까지. 02-889-3561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