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일 기자의 길에서 만난 세상>비구니 속옷을 찍다니… 아찔했던 山寺의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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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11-11-3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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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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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순간의 난감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어딘지 밝힐 수는 없고, 그냥 남쪽 지방의 한 비구니(여승) 사찰이라고만 해두겠습니다. 절집을 찾아간 것은 늦봄의 햇볕이 나른하게 내리쬐던 날이었습니다. 절집을 조망할 자리를 찾다가, 절집 곁의 언덕에 올라섰습니다. 요사체를 굽어보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빨랫줄에 희게 빨아놓은 빨래가 너울거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것도 괜찮은 풍경이다 싶어 별생각 없이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러다 풍경 좀 가까이 당겨 찍으려 망원렌즈로 갈아 끼우고 들여다보는데, 아뿔싸, 빨랫줄에 걸린 것은 모두 속옷이었습니다. 비구니 사찰이었으니 걸린 빨래는 모두 비구니들의 속옷이었던 게지요.

카메라를 거두는 순간 뒤쪽에서 노스님의 노기 띤 고함이 산중에 울려퍼졌습니다. “그걸 왜 찍으시오.”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쿵’하고 들렸던 것 같습니다. 아 이리 난감할 데가…. 해명은 해야겠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머리 속이 하얘졌습니다. 속옷 빨래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서있던 모습이 스님 눈에는 파렴치한이나 변태쯤으로 비쳤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입은 더 굳어졌습니다. 지금도 후회되는 일은 너무도 경황이 없어 해명은 커녕 고개만 푹 숙이고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만 연발했던 것입니다. 그랬으니 모르긴 해도 스님은 지금까지도 영락없는 파렴치한쯤으로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사진을 찍는 일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언젠가 늦가을 무렵 전남 해남 대흥사 앞에서 족히 50여명쯤 되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삼각대를 받쳐놓고 숲길을 걸어나오는 관광객들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여자와 다정하게 산문을 걸어나오던 중년 남자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돌아서더니 냅다 뛰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진을 찍던 이들과, 산문을 나오던 이들도 다들 깜짝 놀랐지만, 그 남자가 왜 그리 황급하게 내뺐는지 이유를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몇몇이 제법 그럴듯한 추리를 내놓았습니다. 아무래도 그 남자는 함께 걷던 여자와 ‘부적절한 관계’였을 거란 얘기였습니다. 사실이 그렇다 해도 그 사람을 찍을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을 겁니다. ‘카메라 렌즈’가 어떤 때는 폭력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그때 들었습니다.

이런 일을 몇번 겪은 뒤에는 취재를 다니면서 사진 속에 사람을 담아야 할 때도 되도록 뒷모습을 담으려 애를 쓰고, 사진 속에 담긴 이들에게는 꼭 양해를 구하고 있습니다. 사진 찍히기를 거절하는 경우에는 미련 없이 찍은 사진을 지워버립니다. 그래도 늘 조심스럽습니다. 세상사가 늘 의도했던 대로만 상대방에게 이해되고 양해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시 생각해도 진짜 억울했던 비구니 스님의 속옷 사진처럼 말입니다.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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