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佛에 배설도우미 ‘이동변소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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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들 / 미하엘라 비저 지음, 이르멜라 샤우츠 그림 권세훈 옮김 / 지식채널

“그들은 원하면 언제든지 용변을 보러 갈 수 있습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용변을 보는 것이지요. 우리는 처지가 다릅니다. 여기에서 나는 내가 눈 똥을 저녁때까지 치워야 해요. 숲 근처에 있는 집들의 내부에는 변기가 없답니다. 운이 없게도 그런 집에 살고 있어요.”

1694년 프랑스 오를레앙 공작의 부인 리제로테 폰 데어 팔츠가 퐁텐블로에서 쓴 편지 내용이다. 공작 부인의 편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시기 퐁텐블로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그저 고급스럽게 치장한 요강에 앉아 용변을 보면 하인들이 치웠다. 그러면 집밖에서는 어떻게 했을까. 보통 사람들은 용변을 보기 위해 공원, 좁은 골목길, 강가, 어두운 구석 등을 이용했다. 하지만 부유한 사람은 이른바 ‘이동변소꾼’의 도움을 받았다.

이동변소꾼은 시장이나 박람회장과 같은 곳에 머무르면서 자신이 준비한 양동이에 용변을 보라고 외치며 손님을 끌었다. 양동이 2개를 짊어진 이들은 긴 가죽외투를 입고 있었다. 용변을 보고 싶은 사람은 그 외투로 몸을 감싸고 얼굴만 내놓은 채 공공장소에서 배설 욕구를 해결할 수 있었다. 몸을 가리고 있는 한 남들의 시선은 문제될 게 없었다.

이 책은 한때 필요에 의해 생겨났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직업들을 통해 유럽인들의 사고방식과 취향, 풍습 등을 알기 쉽게 이야기해 준다. 예를 들어, 노래를 전파하는 데 큰 몫을 한 유랑가수는 소시민들의 집단적 사고를 조장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었던 모래장수의 경우, 고된 노동에 자녀들을 투입함으로써 아이들이 오래 살지 못했다. 이 직업은 리놀륨 및 단단한 목재를 이용한 바닥이 등장하면서 실내용 모래에 대한 수요가 정체됨에 따라 자연스레 사라졌다.

고래수염처리공은 의류나 장신구 제조업체에 팔기 위해 탄력성이 뛰어난 고래수염을 짧게 자르는 사람이었다. 고래수염은 코르셋, 모자, 신발, 우산, 부챗살, 낚싯대 등 많은 장신구 제품을 만드는 틀로 이용됐지만 새로운 유행이 생겨나면서 이 직업은 사라졌다. 석판인쇄공은 전성기 때 그림을 다루는 솜씨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또 다른 복제 인쇄 기법의 발달로 산업적 활용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다.

이처럼 사회·문화의 변화와 역사의 발전에 따라 직업도 흥망성쇠의 길을 걸었다. 저자는 사라져버린 직업에 대해 시시콜콜 설명하기보다는 그 같은 직업이 존재했던 이유와 시대상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왜 특정한 직업이 생겨났으며, 그 직업은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또 어떤 이유로 특정 직업이 사라졌는지에 대해 쉬우면서도 짜임새 있게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화려하면서도 풍자적인 삽화를 곁들여 보는 이로 하여금 넌지시 미소를 머금게 한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