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리고 희망 - 2012 대한민국 리포트>“‘스스로 재기후 남의 재기 돕자’… 7년 도전 司試 합격의 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성준씨가 하반신 마비라는 큰 사고를 당한 후 사법시험에 도전하게 된 과정과 이후 사법연수원에서의 경험 등을 이야기하며 밝게 웃고 있다. 정하종기자 maloo@munhwa.com

“장애인을 ‘불쌍하다’ ‘안됐다’는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데 결코 편한 시선이 아닙니다. 70억명에 달하는 지구촌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만의 숙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인도 자신의 숙제를 안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월 사법연수원(41기)을 수료하고 오는 7월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입사할 예정인 이성준(36)씨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서강대 경제학과 4학년 때인 1999년의 낙상사고 이후 하반신을 쓰지 못해 휠체어로만 움직일 수 있다.

인터뷰를 위해 서울 중구 충정로의 문화일보 사옥을 찾은 이씨는 자신이 몰고 온 승용차에서 내릴 때도 쉽지 않아 보였다. 우선 넓은 장애인 주차장에 차를 대고도 옆좌석에 접어놓은 휠체어를 바닥에 내리고 나서 바퀴 2개를 하나씩 조립해 붙이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이어 운전석에서 힘들게 휠체어로 옮겨 앉은 이씨를 뒤에서 밀어 경사로를 올라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 인터뷰실로 이동했다.

노총각 ‘장애인 변호사’는 호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보니 성격마저도 좋았다. 이씨가 청춘의 한가운데서 하반신 마비라는 엄청난 장애를 만나 어떻게 사법시험에 도전할 생각을 하게 됐을까부터 물어봤다.

―법학도도 아닌 경제학도가, 그것도 큰 장애를 입고 왜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했습니까.

“처음에는 제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장애 진단을 받았으면서도 시일이 지나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점차 다시는 못 걷는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엄청나게 몸도 마음도 힘들었습니다. 숨고 싶다는 생각만 앞섰고 2년6개월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장애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누워 지내다 보니 꼬리뼈 부근에 욕창이 생겼습니다.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돼 다시 한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제서야 더 이상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장애를 받아들이고 삶의 돌파구를 찾아보자,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문득 사법시험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내가 가장 접근하기 좋고, 합격만 하면 사회적으로 다양한 진로 선택의 기회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데 2년반을 허비한 이씨는 2002년 3월부터 인터넷으로 수험서를 주문,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도전 3년째 만인 2005년 1차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2차 시험에 계속 떨어졌고, 7번째 도전 끝에 2009년 최종 합격했다. 그 흔한 고시원도 가지 않고 혼자서 집에서만 7년째 고시 공부하기가 쉽진 않았지만 다른 출구가 없었다. 이씨는 “스스로 재기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대상을 사시 합격 여부로 봤다”고 말했다.

전신마비라 시험장에 가기도 쉽지 않았다. 요즘은 이씨 같은 수험자를 위해 법무부가 장애인 주차장과 장애인 화장실을 갖춘 건물의 1층이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수험장을 준비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게 없었다.

“장애가 있는 수험생을 별도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던 시절이라 부모님이 먼저 배치된 고사장에 가서 환경을 둘러본 다음에 당일 날 어떻게 대처할지 계획을 짜서 시험을 봤습니다. 한번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고사장에 배정받아 시험장 아르바이트생들이 저를 들어올려 겨우 입실한 적도 있습니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을 위한 고사장은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야 하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책상이 있어야 하며, 장애인용 화장실이 있어야 하지만 이씨가 사시에 합격할 때쯤에야 그런 시스템이 마련됐고, 그전에는 혼자 다 알아서 해야 했단다.

장애인 수험생으로서의 7년과 이후 사법연수원 2년의 체험을 통해 이씨는 우리 사회가 점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서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사법연수원 시절 2주간의 전문연수기간에 모 그룹의 본사 사옥에 있는 사무실로 나갔는데, 장애인용 화장실이 멋지게 갖춰져 있긴 했는데 문이 옆으로 밀어서 여는 미닫이가 아니라 밀어도 도로 닫히는 여닫이 구조라 도저히 이용할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2주 내내 옆에 있는 다른 건물 화장실까지 갔다가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는 그때 자신이 이용할 수 없는 ‘멋진’ 장애인용 화장실을 보면서 “대기업에서 장애인을 고려해야 된다는 생각이나 의지는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실제 이용하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내친김에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데 불편한 점들을 지적해 달라’고 했더니 그는 “약속 장소로 갈 때 주변에 최근 지어진 공공기관 건물이나 빌딩이 있는가 살펴보는데 가보면 그런 곳들은 다 예전보다 잘 지어지고 있는 건 맞다”면서도 “다만 어떤 곳에서는 장애인용 화장실이 창고로 이용되고 장애인용 주차장을 다른 차들이 사용하고 있고 아직도 장애인이 들어오면 싫은 티를 내고 그런 것들이 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는 “인프라의 발전 속도에 비해서 사회적인 인식수준은 조금 늦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고 덧붙였다.

그가 일반 변호사로 활동하지 않고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입사하기로 한 것도 장애인으로서의 이동권의 제약을 고려한 것도 작용했단다. “장애인 주차 면적이 일반 주차 면적보다 넓은 이유가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차를 주차하고 휠체어를 꺼내 옆에 앉을 공간이 필요한데 바로 옆에 차를 세워 놓으면 꼼짝 못하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변론을 하러 법원에 갔는데 내릴 수가 없는 난감한 상황을 악몽처럼 많이 떠올렸습니다.”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은 예전보다는 그런 부담을 덜게 만들어졌고 그런 걱정이 덜한 직장을 선택한 것이란 설명이다.

이씨는 사법연수원을 2010년에 입소해 정확히 2년 만에 수료했다. 머리 좋은 사람들만 모인 곳인데, 어려움이 없었을까.

“제가 대학 4학년 때 크게 다친 이후 연수원이 재사회화를 하는 첫 과정이었습니다. 장애인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다시 어울리기 시작하는 첫걸음이기도 했습니다. 동기들은 너무나 잘해줬고 지도교수들도 배려를 많이 해줬습니다. 연수원에서도 서포트를 잘해줬고, 그래서 연수원 생활 자체가 크게 힘들진 않았습니다.”

너무 모범답안 같아서 한 번 더 찔러봤다.

―처음에 동기들과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습니까.

“누구나 처음에는 어색하지 않습니까. 그 정도였습니다. 그것보다 에피소드라고 해야 하나, 입소식 첫날 회식을 하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신발 벗고 들어가 앉는 좌식을 잡아놔서 제가 그때 참가를 못했습니다. 아마 나 같은 케이스를 만나기는 처음이니까 예전에 해오던 대로 자리를 잡았는데 내가 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너무 미안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제가 미안했습니다. 그다음부턴 바로 개선이 됐습니다.”

인터뷰 = 김세동 차장(사회부) sdg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