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소유물’서 新여성까지 100년 걸렸다

아내의 역사 / 매릴린 옐롬 지음, 이호영 옮김 / 책과 함께

화장실에서 시집을 읽으며 ‘큰 일’을 보고 있는 남편에게 “싸면서 시집 읽는 것보다 싸면서 마시는 게 덜 이상해”라며 주스를 마시게 하고, 남편의 직장 상사 사모님들에게도 고분고분하기는커녕 대드는 수준의 태도를 보이는 아내와 산다면…. 오는 17일 개봉하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결혼 7년차 ‘독설가 아내’ 캐릭터인 정인(임수정 분)의 이런 엽기적이고 직설적 언행을 마냥 영화 속 얘기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오늘날 남편에게 의존하고 남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전통적 아내상은 더 이상 이상적인 아내상을 대표하지 않는다.

스탠퍼드대 미셸 클레이만 젠더 연구소의 비교문학자인 저자가 쓴 ‘아내의 역사’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내들에게 일어났던 사회 문화적 변화를 각종 자료를 통해 흥미롭게 살폈다. 서구에서 아내의 개념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대대손손 아내들에게 영향을 끼친 법과 관행은 어떠했는가. 오늘날까지 형성돼 온 아내의 존재 양식들은 어떤 것인가. 어떤 전통은 살아남고, 어떤 전통은 끊어졌는가….

책에 따르면 과거에는 대부분 결혼이 사랑보단 ‘돈’에 의해 결정됐다. 남자들은 지참금이 있는 여자와 결혼했고 여자들은 부양할 능력이 있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구약 시대부터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아내를 먹여 살리는 것은 남편의 의무였다. 여자는 그 대가로 섹스, 자녀 양육, 그리고 가사 노동을 제공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배우자의 경제적 조건을 따지더라도 반드시 남편이 아내를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아내 5명 가운데 3명은 전일제 혹은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대부분의 남녀가 둘 다 가족 경제에 기여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아내들이 남편의 소유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부에 들어서다.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는 남편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인간임을 선언한 신여성의 선두 주자다. 노라의 등장 이후에도 신여성이 사회에서 인정받기까지는 거의 1세기의 세월이 필요했다. 1960년대 피임약이 발명되고 1970년대 일부 나라에서 낙태가 합법화되면서 성 혁명이라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책엔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델이 된 다인 부부, 귀족이면서도 가정 형편 때문에 수녀가 됐다가 결혼 뒤 아내의 모범으로 칭송받았던 루터의 아내 카테리나 등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들의 삶을 통해 아내와 연관된 사회적 코드들을 읽어 내기도 한다. 다인 부부에게서는 셰익스피어 시대 영국의 비밀 결혼 관행을, 카테리나에게서는 종교 개혁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추출한다.

책에서 설명하는 아내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결혼 생활과 맞닿는다. ‘아내’란 결혼을 통해 탄생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남편과 아내가 결혼 생활에서 발생하는 성적, 경제적, 가정적 문제를 어떻게 조율하건 간에 양쪽 모두 자신의 자유를 어느 정도 포기하지 않고서는 오랫동안 누군가의 배우자로 살 수 없다”며 “결혼 생활은 융통성과 타협,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 그리고 끈질긴 인내를 필요로 한다”고 강조한다.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