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사석원의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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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논설위원

‘일파장천분학롱(一派長川噴壑壟) 용추백인수총총(龍湫百水叢叢) 비천도사의은한(飛泉倒瀉疑銀漢) 노폭횡수완백홍(怒瀑橫垂宛白虹).’ 조선시대 중기의 학자였던 화담(花潭) 서경덕, 그를 유혹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당대의 명기(名妓) 황진이 등과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일컬어져온 개성의 박연폭포를 읊은 황진이의 시 ‘박연폭포’ 전반부다. 이런 내용이다. ‘긴 물줄기가 골짜기 언덕에서 뿜어져나와/ 백 길이나 되는 폭포를 이루니 물줄기 세차구나/ 솟구쳐오른 샘물이 거꾸로 쏟아지니 은하수 같고/ 성난 폭포 가로로 드리워 흰 무지개 같기도 하다.’

박연폭포뿐만이 아니다. 한반도에는 빼어난 폭포가 많아 예로부터 다양한 장르에서 예술 작품화해왔다. 현동자(玄洞子) 안견이 1447년에 그린 세계적 명작으로 현재 일본 덴리대가 소장하고 있는 ‘몽유도원도’에도 폭포가 그려져 있다. 현동자와 함께 조선시대 3대 화가로 꼽히는 단원(檀園) 김홍도와 오원(吾園) 장승업은 물론, 겸재(謙齋) 정선 등 산수화 대가들의 상당수가 걸출한 폭포 그림을 남겼다.

한국화 붓과 서양화 붓을 함께 사용하며 서양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독특한 화풍을 보여온 대한민국 화단의 중진 사석원(52) 화백이 최근 폭포를 집중적으로 작품화한 배경도 마찬가지다. “폭포는 산의 심장”이라는 그의 폭포관(觀)은 또다른 면에서 고개를 끄덕이게도 한다. “나이 쉰을 넘기면서 좀처럼 가슴이 설레지 않게 됐다. 설렘의 정서를 되찾을 수 있는 요소를 찾다가 금강산 구룡폭포를 처음 보고 설렘을 느꼈던 6∼7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2년6개월 동안 백두산 장백폭포에서부터 제주 서귀포의 엉또폭포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폭포 100여개를 찾아다니며 화폭에 담았다.

사 화백은 그 중에 40여점을 골라 ‘산중미인(山中美人)-시크릿 패러다이스(Secret Paradise)’ 주제의 개인전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지난 11일부터 오는 6월3일까지 열고 있다. 하얗게 쏟아지는 폭포 옆에 호랑이·황소·닭·부엉이·꽃 등을 그려넣어 역동적인 힘과 민화적 감흥을 함께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다. 이를 통해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감동의 울림을 향유하면서 호방하고 활력 넘치는 기(氣)도 듬뿍 받는 사람이 많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