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짓고 무기 만들고… 크로마뇽인의 ‘위대한 생존’

크로마뇽 /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김수민 옮김 /더숲

책은 약 5만 년 전 열대 아프리카 지역에서 시작해 1만5000년 전쯤 빙하시대가 끝난 뒤까지 계속되고 있는 최초의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의 위대한 여정을 다루고 있다. 고고인류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는 크로마뇽인들이 빙하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며 이들의 무한한 창의력과 적응력에 초점을 맞춘다. 흔히 크로마뇽인하면 라스코와 알타미라, 퐁드곰, 쇼베 등의 동굴에 이들이 남긴 벽화 등 예술 작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고고학 분야에서 대중적인 글쓰기로 명성을 얻은 저자는 크로마뇽인들이 추위와 네안데르탈인의 위협 등 기후와 환경이 극단적으로 변하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현대 과학의 성과를 동원해 생생하게 묘사한다.

크로마뇽인 가족과 네안데르탈인의 극적인 만남으로 시작하는 책에서 저자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적절한 재료들로 각종 도구와 무기를 만들어낸 크로마뇽인들의 능력에 주목한다. 가령 귀가 달린 바늘은 초기 인류의 가장 위대한 혁신 중의 하나인 불의 사용과 지위를 나란히 한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수만 년 동안 네안데르탈인과 그의 선조들은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망토처럼 동물의 가죽을 몸에 걸쳤다. 하지만 바늘귀가 달린 바늘이 제작되면서 크로마뇽인 여자들은 바늘을 이용해 몸에 꼭 맞는 여러 겹을 덧댄 옷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현대 아웃도어 장비를 파는 곳에 가 보면 겹겹으로 된 보호장비를 마치 놀라운 발명품인 것처럼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크로마뇽인들도 바늘 덕분에 2만5000년 전에 비록 다른 재료를 사용했지만 놀랍도록 비슷한 겹쳐 입는 옷을 만들었다. 이들은 일년 중 대부분 안에 옷을 여려 겹 입고 겉에 가벼운 파카를 걸쳤는데, 이렇게 하면 열이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또 열이 올라 땀이 차면서 체온을 떨어뜨리는 현상도 방지할 수 있었다. 반면 네안데르탈인들은 겹쳐 입는 맞춤옷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 북유럽 평원에서 일정기간 이상을 거주하지 못했던 이유일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 스위스아미 칼에서도 크로마뇽인들을 만날 수 있다. 많은 크로마뇽인들은 몸돌을 지니고 다니면서 특별한 도구가 필요한 상황이 오면 격지(몸돌에서 떼어 낸 돌조각)를 떼어 내 사용했다. 크로마뇽 석공들은 새기개 등 다양한 모양의 격지를 제작했는데, 다목적으로 사용된 이들 도구에서 몸체 하나에 여러 가지 도구가 들어 있는 스위스아미 칼의 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네안데르탈인들에 비해 월등했던 인지와 언어 능력, 사냥과 채집, 이주 시 서로 협동했던 점, 복잡한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능력 등도 크로마뇽인들이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어려운 용어나 표현은 최소화하고 인간사회의 초창기 모습을 소설을 읽듯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서술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고고학의 생생한 사료를 보여주는 다채로운 컬러화보가 실려 있어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