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이정학 기자 luis80@munhwa.com
착각의 심리학 / 데이비드 맥레이니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
어느 날 소개팅으로 30대 초반의 남녀가 만났다. 두 사람 모두 2012 런던올림픽 양궁 2관왕을 달성한 기보배를 보고 똑같이 가수 채연을 떠올렸다는 얘기를 나눈다. 두 남녀의 혈액형은 모두 O형이고 두 사람의 어머니 이름도 모두 영자다. 비록 차 색깔은 다르지만 똑같이 뉴 모닝을 탄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남자는 “사실 인연이 뭐 별거인가”라고 되뇐다. 여자는 한술 더 뜬다. “빙고! 이게 운명적 만남이야”라고 스스로 세뇌를 시킨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또래 세대의 문화적 경험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기름값도 올라 최근 몇 년 새 경차 구입비율도 높아졌다. 영자라는 이름은 어머니 세대에서 흔한 이름이다. 다시 말해 같은 점에만 주목하고 다른 점은 애써 외면한 나머지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책이 꼬집고 있는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다. 어설픈 텍사스의 카우보이가 헛간 벽을 향해 총탄을 갈긴다. 시간이 갈수록 헛간 벽은 총알 구멍으로 가득해진다. 그는 총탄이 밀집한 곳을 중심으로 과녁을 그려 자신이 명사수라고 착각한다. 자연적인 우연의 가능성에 인공의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저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삶을 좌우하는 39가지 착각의 기제를 속속 파헤친다. 일종의 인간 심리 매뉴얼이다. 책을 읽어갈수록 스스로 치밀하고 정교하다고 자부해온 자신의 뇌가 사실은 엉성한지를 깨닫게 된다.
예컨대 침을 튀기며 아이폰과 갤럭시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 이런 논쟁은 주로 남자가 많이 한다. 과연 객관적이고 냉철한 비교분석 자료를 근거로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누구나 자기가 물건에 투자한 비용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투자 비용에 따른 불안을 지우기 위한 자기합리화다. 또 많은 사람이 어떤 물건을 쓰는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덧없는 믿음을 품고 산다. 책이 말하는 선택지원 편향이다.
남과 늘 비교하고 열등감에 괴로워하면서도 내심 자신이 낫다고 자위하고 있지 않은가. 책은 상식과 관습에 딴죽을 거는 심리학과 인지과학 이론들을 풍부한 사례와 유쾌한 언어로 풀어낸다. 우리는 왜 착각과 오해에 빠지는 걸까. 우리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스스로 기억이 녹음기처럼 재생되는 것이라고 믿어버린다. 사실 기억은 너무도 쉽게 오염된다. 나이가 들면 방금 한 말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수업을 들을 때 10분이 지나면 망각 기제가 발동되고 1시간이 지나면 50% 정도를 잊어버린다.
왜 연인과 이별한 뒤에는 모든 노래가 이별 노래로 들리는 걸까. 저자는 이를 확증 편향이라고 분석한다. 지인과 옛날 영화 ‘벤허’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 그렇게 장대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느냐고 말하기도 하고, 전미 총기협회장으로 정치적 활동까지 하던 찰턴 헤스턴이 몇 년 전 사망했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다 결국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리모컨을 돌리다 갑자기 ‘벤허’가 방송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상한 일이다. 며칠 뒤 영화 잡지를 뒤적거리다 뜬금없이 잊어진 ‘추억의 영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이럴 수가 세 단락에 걸쳐 벤허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온 우주가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것이 바로 확증 편향이 작용하는 방식이라고 단언한다. 친구와 대화를 나눈 뒤 당신은 수백 번 채널을 돌렸고, 수없이 많은 영화기사를 읽었다. 중요한 건 ‘벤허’에 관련되지 않은 정보는 당신이 모두 무시해 버렸다는 점이다.
한 조사 결과 운전 중 DMB를 시청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89%에 달했다. 저렇게 기본적인 운전에 대한 예의도 없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결론은 이렇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혀를 차면서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우리는 타인을 관찰하듯 자신을 관찰하지 못한다. 이것이 책에서 지적하는 제3자 효과다. ‘왜 대중은 저렇게 정치인과 광고, 바람둥이의 빤한 거짓말에 속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신도 대중의 일부다.
건물에서 화재경보기가 맹렬하게 울린다. 살기 위해 남을 짓밟고라도 탈출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통계에 따르면 재난 현장에 있는 사람 중 75%는 즉석에서 얼어붙고, 대피하지 못한 채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극단적인 현실부정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눈앞의 현실은 모두 거짓이 된다.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지푸라기보다 못한 믿음에 의존해 탈출을 거부하는 것이다. 탈출은 현실을 인정해야 가능하다.
무의식의 영향도 있다. 따뜻한 영화를 보고 나오면 거리에 다니는 모든 사람의 인상이 온화한 것으로 조작된다. 현재의 뇌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미래를 앞당겨 생각할 줄 모른다. 미래 시점이 현재로 다가올 때 다시금 우리는 일을 미룬다.
문제는 착각을 마케팅에 이용하려는 무리가 어디에나 있다는 점이다. 자기가 쓰는 물건을 비판하지 못하는 성향을 역이용해 브랜드 충성심을 부추기는 물밑공작을 빼놓을 수 없다. 통계보다는 스토리텔링에 약한 인간의 마음을 활용해 지지율을 높이는 대통령선거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책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 자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견고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허약한 인간이 자기를 보존하는 본능이다. 우리는 착각 메커니즘을 타고났고 이를 좀처럼 멈출 수 없다. 저자는 말한다. 삐딱하게 세상을 보길 멈추질 말라고. 이 같은 비판적 이성을 통해 당신의 감정, 판단, 행동을 지배하는 편견, 선입관, 망상의 작동을 감지하라고 역설한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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