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크리스마스트리 원조 ‘한라산 구상나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7-돌하르방… / 유홍준 지음 / 창비

제주도 한라산을 오르다 보면 해발 1500m부터 1800m 사이에 집중적으로 자라고 있는 구상나무를 볼 수 있다.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제주도·지리산·덕유산·무등산에서만 자생하고 있는 구상나무는 키가 18m에 달하며 전형적인 삼각뿔 모양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시킨다. 실제 구상나무의 학명은 ‘아비에스 코레아나(Abies Koreana)’인데, 이는 한국이 토종이라는 의미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 제주도에 와 구상나무 표본을 채집한 뒤 지구상에 유일한 ‘신종(新種)’이라며 구상나무라고 명명했던 영국인 식물학자 어니스트 헨리 윌슨(1876~1930)은 미 하버드대 아널드식물원에서 구상나무를 변종시켜 ‘아비에스 코레아나 윌슨’을 만들어냈다. 바로 서구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비싸게 팔리는 나무로 유럽에서는 ‘Korean fir(한국 전나무)’로 통한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인 저자(63)는 인문서 최초로 300만 부 판매 돌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시리즈물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일곱 번째 신간 제주편에서 한라산 구상나무를 설명하며 “종자의 보존이 얼마나 중요하고 제국주의가 총칼만 앞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말해준다”고 밝혔다. 저자는 13일 연 기자간담회에선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따라 30년이 지나면 한라산에서 구상나무가 사라질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1993년 제1권 ‘남도답사 일번지’부터 2011년 제6권 ‘인생도처유상수’까지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신간은 한 권을 오롯이 제주의 자연과 문화유산, 역사와 민속, 사람 이야기에 할애하고 있다. 차를 빌려 자유롭게 제주를 여행하는 렌터카 이용객, 즉 ‘제주 허씨’들을 위한 제주 안내서를 표방하며 종이책과 함께 전자책을 동시에 출간한 것도 특징이다.

천연기념물만 40가지가 넘는 데서 알 수 있듯 제주편을 다룬 답사기에서는 자연 지질과 나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모두 15편으로 구성된 답사기에서 저자가 ‘제주 답사 일번지’로 지목한 제주시 조천읍 와흘 본향당도 수령 약 400년, 높이 13m, 둘레 4m의 거대한 팽이나무 신목(神木) 두 그루로 이뤄져 있다. 본향당이란 제주 마을마다 있는 신당(神堂)을 말하는데 현재 제주에 300곳이나 남아 있다.

저자는 “본향당이란 제주사람들, 특히 제주 여인네들 영혼의 동사무소, 요즘 말로 하면 주민센터와 같은 곳”이라며 “신당 답사가 제주도를 이해하고 제주의 속살을 느낄 수 있는 제주 답사의 기본”이라고 역설한다.

제주 답사기는 크게 제주의 동북쪽 조천과 구좌읍 일대 와흘 본향당과 오름(기생화산), 해녀 이야기 등을 다룬 ‘제주답사 1번지’와 영실을 중심으로 한 ‘한라산 윗세오름 등반기’, 삼성혈과 삼양동 선사유적지 등 ‘탐라국 순례’, 하멜과 서복, 추사 김정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제주의 서남쪽’, 조랑말박물관과 제주학의 선구자들을 기리는 ‘가시리에서 돈내코까지’ 등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제주도’(1966)라는 기념비적인 저서를 남긴 일본학자 이즈미 세이이치(泉井一)와 ‘나비박사’ 석주명 등 ‘제주학’의 선구자들에 대해 정리한 마지막 글은 저자가 제주도와 제주도민, 선배 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할 수 있다.

제주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해녀들의 휴식 공간으로 바닷가에 둥글게 돌담을 쌓아 만든 하도리 불턱 등 제주의 상징인 해녀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다. ‘한라산 윗세오름 등반기’에서 저자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은 영실을 설명하며 덧붙인 ‘팔도 아줌마론’ 등 답사기 곳곳에서 저자의 여전한 입담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의 묵은 동네를 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재일동포 아무개가 헌금한 것에 감사하는 공덕비들을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500두의 말을 조정에 바쳐 조선시대 제주인 가운데 가장 높은 벼슬에 오른 김만일과 의녀 김만덕의 사례 등을 거론하며 저자는 제주사람 특유의 공동체 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주목한다.

“출간에 앞서 제주 답사기 각 편을 전문가들에게 보내 검증을 받았다”고 강조한 저자는 “충북 지역과 독도, 보길도 등 섬 이야기를 다룬 답사기 8권과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다룬 9권에 이어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을 중심으로 고구려 문화와 동북3성을 다룬 10권으로 시리즈를 마감하고 싶다”는 뜻을 나타냈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