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말 파샤, 그의 수많은 ‘얼굴’을 기록하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 앤드류 망고 지음, 곽영완 옮김 / 애플미디어

이 책은 우리에게 ‘케말 파샤’로 알려져 있는 ‘터키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의 전기다. 거의 500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은 케말 파샤의 여타 전기에 비해 훨씬 치밀하고 객관적이다. 또한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현시점에서 케말 파샤의 발자취를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의 의미도 있다. 물론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말이다.

우선, 케말 파샤의 호칭부터 들여다보자. 당시 이름만 붙이던 투르크인의 관습에 따라 어렸을 적 그의 이름은 ‘무스타파’로 불렸다. 10대 때 군사예비학교를 다녔던 무스타파는 수학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그런데 수학 교사의 이름도 무스타파였다. 두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성이 ‘케말’이다. 터키어로 케말이라는 단어는 완벽함을 뜻한다. 그야말로 앞날을 내다보는 호칭이었던 것. 이후 군 지휘관이 된 무스타파 케말은 1차 세계대전 당시 갈리폴리 전투에서 영웅적인 활약으로 승리를 이끌어 냄으로써 지도자를 의미하는 ‘파샤’ 칭호를 얻게 된다. 이후 터키 공화국 건국을 이끈 그에게 아타튀르크, 즉 ‘투르크인의 아버지’라는 최상의 경칭이 붙게 된다.

무스타파 케말이 살았던 시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격변기였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하급 관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터키 공화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이자 나라의 기반을 닦은 정치인으로 지금도 여전히 터키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웬만한 터키 도시에서는 그의 이름이 붙은 도로나 공원, 동상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의 일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지금은 그리스 영토인 살로니카에서 태어난 무스타파 케말이 전성기 활약을 펼친 곳은 소아시아의 앙카라였으며 숨진 곳은 이스탄불이었다. 생애 자체가 터키의 국가 운명과 함께했던 것이다. 군인에서 혁명가로, 정치인으로 탈바꿈하면서 그가 쌓은 공적은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스타파 케말의 공적만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생독립국 터키를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그는 강압적인 수단도 서슴지 않았다. 옛 체제에 향수를 느끼는 구 왕실과 고위 성직자들은 차례차례 숙청됐다. 언론은 검열을 받았으며, 반정부적인 언론은 가차 없이 폐간됐다. 정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건국 초기엔 무스타파 케말이 이끌던 집권 인민당만 인정하고 다른 정당은 아예 들어서지도 못했다. 1930년에 자유공화당을 창당토록 허용했지만 이 정당이 의외로 바람을 일으키자 99일 만에 해산시켜 버릴 정도였다. 쿠르드족 등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도 가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스타파 케말이 여전히 아타튀르크로 불리며 터키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그의 애국심과 민족애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오스만제국이 유럽 열강에 의해 철저히 분할될 때 투르크 민족을 이끌고 독립국가를 이끌어 내는 과정은 감동의 역정(歷程) 그 자체다. 당시 터키의 일부 지식인들은 미국의 신탁통치를 절실히 원했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스스로 독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스타파 케말은 터키인들의 저력을 의심치 않았다. 외세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독립 국가를 유지하며 근대화를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자신의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 비록 독재라는 강력한 처방을 썼지만 그 같은 민족애로 말미암아 무스타파 케말은 여전히 국부(國父)의 지위를 굳건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의 영웅적인 모습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한 인간으로서 무스타파 케말의 나약한 모습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결코 영웅적이지 않은 영웅, 즉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만날 수 있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