哀·怒·恥·… 인류 공통감정 10가지 분석

인간다움의 조건 / 스튜어트 월턴, 이재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만드는 것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문화사가인 저자가 책의 말미에서 행복이란 감정을 소개하며 한 말이다. 저자는 각종 분쟁과 테러리즘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다움(인간다움)’을 실현하기 위해 세태에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은 물론, 세태를 바꾸려는 의도에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책은 찰스 다윈이 유전과학에 기여한 마지막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대하여’(1872년)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저자가 책을 쓴 동기 자체도 다윈이 진화론 못지않게 동물과 인간의 김정 표현에 관해 중요한 업적을 남겼는데 제대로 평가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서다. 다윈은 자신의 저서에서 세계 만방에 사는 사람들은 문화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도 본질적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심리구조를 갖고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저자도 책에서 피부색과 문화, 사는 곳이 달라도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처지에서 비슷한 두려움과 노여움, 부끄러움, 슬픔, 행복 등을 느낀다고 말한다.

19세기 후반 다윈은 인간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기본 감정으로 행복과 슬픔, 분노, 공포, 혐오, 놀람 등 6가지를 들었다. 저자는 여기에 경멸과 수치, 당황, 질투 등 4가지를 덧붙여 총 10가지 감정에 대한 분석에 들어간다. 개별 감정이 처음 시작된 기원에서부터 국가와 언론, 광고매체 등이 적극적으로 감정을 이용하고 조작하는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감정이 어떻게 인간사회를 바꾸었고 인간사회는 어떻게 감정을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책은 크게는 10장, 작게는 30장으로 구성됐다. 10가지 감정을 다루되 하나하나의 감정을 3가지 각도에서 접근하기 때문이다. 가령 1장에서 다루는 인류에게서 가장 오래된 감정인 공포의 경우, 우선 공포라는 감정의 기본형을 다룬다. 인류의 조상이 남긴 무덤과 동굴에 그린 벽화를 통해 공포라는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문명사적으로 성찰한 뒤 둘째 장에서는 마키아벨리 등의 저작을 통해 권력이 인간에게 어떻게 공포를 유발하는지를 돌아본다. 이 장에서 권력 집단이 공포라는 타동사로 인간이라는 목적어를 어떻게 다루는지도 설명된다. 이어 마지막 장에서는 공포라는 감정이 개인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실존적으로 파헤친다.

원시시대부터 계속된 인류의 고난을 상징하듯 10가지 감정 중 행복을 제외하면 부정적인 감정인 것이 특징인데, 저자는 이 가운데 분노의 경우 참정권을 비롯해 서양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됐음을 지적한다. 소설과 시, 음악, 미술, 영화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현학적이지 않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할 필요 없이 마음이 끌리는 감정부터 편하게 읽어 나가면 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