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사회의 고독, 사실주의로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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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 / 게일 레빈 지음. 최일성 옮김 / 을유문화사

미국의 대표적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밤새우는 사람들’은 가장 많은 불법 복제품이 만들어진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고독이 짙게 배어나오는 드라마틱한 미국 도시의 카페 풍경이다. 마치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가 나오는 누아르(범죄)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책은 이 작품이 어니스트 헤밍웨이 원작의 범죄영화 ‘살인자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썼다.

실제로 호퍼의 작품들은 ‘스릴러 거장’인 알프레드 히치콕 같은 영화감독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필자는 몇 년 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이른 일요일 아침’ ‘해질녘의 철로’ 등 호퍼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감상한 적이 있다. 하지만 호퍼의 걸작이자 가장 유명한 이미지인 ‘밤새우는 사람들’은 시카고미술관에 소장돼 있기 때문에 아쉬움이 무척 컸다. 대도시의 고독과 쓸쓸함을 그린 그의 작품들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책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호퍼에 대한 전기다. 표현주의와 추상미술이 주도했던 시기에도 호퍼는 꿋꿋하게 사실주의를 고집했다. 역설적으로 훗날 추상표현주의가 쇠퇴하고 팝아트가 대두될 때 호퍼는 팝아트와 신사실주의에 영향을 미쳐 선구자로 재평가됐다.

1882년에 태어나 미국의 산업화와 세계대전, 대공황 등을 겪은 탓인지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에 대해 현대산업사회 속에서 느끼는 인간의 고독과 공허를 표현했다고 말한다. 그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의미심장하고 시간을 초월한 듯한 장면으로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작가다.

도시의 일상적 장면들이지만 그의 그림은 어딘지 익숙한 주위환경을 낯설게 느끼게 만든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또 다른 명화 중 하나가 휘트니미술관에 소장된 호퍼의 ‘2층의 햇빛’이다. 햇살이 비추는 2층 난간에서 일광욕을 하는 두 여성은 한 편의 소설처럼 궁금증을 자아낸다.

책에 따르면 저자도 이 그림을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호퍼는 주변 사람에게 “(이 작품에서) 위층 난간과 두 사람, 젊은 여성과 나이 먹은 여성이 있는 두 집의 위층을 보여준다. 두 사람에게서 상징주의 의미는 없다. 나는 상징주의보다는 건물과 사람을 비추는 햇빛에 더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주의 화가이면서도 빛의 효과에 집착했던 화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발언이다. 호퍼의 작품들에서 빛은 색을 더 아름답게 해주고 그림자나 인물의 표정과 대비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작가는 이 전기를 통해 호퍼가 얼마나 까다롭고 철저하게 작품을 준비하고 그렸는지, 그림 소재를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준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호퍼의 드로잉을 비롯해 그의 작품 및 기사, 편지 등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호퍼의 삶을 입체적으로 살려내고 있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