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하는 인류 ‘플라스틱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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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사회 / 수전 프라인켈 지음, 김승진 옮김 / 을유문화사

지금 주변에 있는 물건을 살펴보라. 연락을 주고받는 스마트폰, 인터넷 항해를 하는 컴퓨터, 메모하는 펜에서부터 지하철 손잡이, 물품을 구매하고 결제하는 신용카드, 냉장고 등 가전제품, 칫솔, 페트병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플라스틱 제품은 너무 많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넘쳐난다. 가히 ‘플라스틱 사회’이고 ‘플라스틱 시대’라고 할 만하다. 이는 몇 개의 관련 수치만 살펴봐도 금세 느낄 수 있다. 1940년에 전 세계의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제로에 가까웠지만 이후 70년간 꾸준히 증가해서 현재는 연간 2600억㎏이 됐다. 1960년에 평균적인 미국인은 1년에 플라스틱 제품 약 14㎏을 소비했는데 현재는 140㎏ 이상을 소비한다. 현재 미국의 총 플라스틱 매출액은 연간 3000억 달러가 넘는다.

하지만 정작 플라스틱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플라스틱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고, 플라스틱으로 무엇을 만들고, 만들어진 물건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플라스틱의 역사와 문화, 경제, 과학, 정치 등 플라스틱의 다양한 속살을 들여다본다.

저자는 먼저 언제 플라스틱 시대에 들어서게 됐는지부터 살핀다. 여기엔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19세기 중반을 그 시초로 보는 설이 있다. 상아와 같은 희소한 자연 물질을 대체하기 위해 식물에서 다루기 쉬운 준합성 물질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벨기에 출신의 미국 이민자 리오 베이클랜드가 자연에서 발견되지 않는 분자들로 구성된 최초의 인조 중합체 ‘베니클라이트’를 만들어 낸 1907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울러 진주만 공격이 벌어진 1941년을 플라스틱 시대의 기점으로 잡는 사람들도 있다. 진주만 공격에서 미군이 가능하면 모든 물품을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려 한 데서 근거를 찾은 것이다. 이 가운데 저자는 2차 대전 종전 후부터 본격적인 플라스틱 시대가 열렸다는 데 무게를 둔다. 2차 대전에서 쓰이던 군사용 합성수지가 생활용품으로 변신하면서 플라스틱이 일상의 모든 틈으로 파고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플라스틱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플라스틱으로 만든 8가지 물건을 멀티 캐스팅했다. 올해 한국 영화 사상 최대 관객을 끌어모은 ‘도둑들’처럼 말이다.

저자가 멀티 캐스팅한 주인공은 머리빗, 의자, 프리스비, 링거백, 라이터, 비닐봉지, 페트병, 신용카드 등이다. 책에 따르면 머리빗은 소비 민주주의를 이끈 주역이다. 1860년대까지만 해도 빗은 코끼리 상아로 만들어진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런 만큼 고가였고 상아를 얻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코끼리는 멸종위기까지 처했다. 하지만 플라스틱 빗이 나오면서 대중도 빗을 쓸 수 있게 됐다. 소득이 많지 않은 사람도 소비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의자를 통해서는 ‘플라스틱 미학’을 살폈다. 플라스틱은 처음에는 주로 모조품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 하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미적이고 독특한 색깔이 있는데다, 가볍고 변형이 쉬울 뿐 아니라 녹여서 다시 만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예술 소재가 됐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엔 이처럼 긍적적인 측면만 있을까. 플라스틱으로 만든 링거백은 내분비계를 교란한다. 신생아일수록 그 영향을 많이 받고 생식기 쪽에 문제가 생기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호르몬 교란뿐 아니라 면역계 및 호흡기 질환과도 관련이 있다. 플라스틱 라이터는 ‘버리는 문화’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연료를 다시 주입해서 쓰는 라이터 대신 연료가 떨어지면 쉽게 버리는 플라스틱 1회용 라이터는 지구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골칫덩어리를 상징하는 물건이 됐다.

저자는 이와 함께 프리스비에 담겨 있는 플라스틱의 글로벌 생산 시스템, 비닐봉지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 페트병 재활용의 성과와 한계, 차세대 친환경 플라스틱 신용카드의 기대와 우려 등을 전한다.

플라스틱은 이처럼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오늘날 인체에 유해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몹쓸 물건으로 인식되고 있는 반면, 한때는 누구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의 상징이기도 했다. 또 천연자원의 고갈을 막아주는 자연의 친구이기도 했다. 저자는 플라스틱의 이런 약속이 현재도 상당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부정적인 측면만을 보고 퇴출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간과 플라스틱 사이에도 지속가능한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이를 위해 20세기를 거치며 형성된 우리의 소비문화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장기적인 영향을 생각하지 않은 채 물질과 물건을 함부로 만들고 함부로 쓰고 함부로 버리는 습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놀라운 세상을 창조할 힘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활용하는 우리의 창조력, 상상력, 공동체를 만드는 능력, 위험을 인식하는 능력,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

“플라스틱은 낭비하기엔 너무 가치 있는 물질이다.” 플라스틱을 열렬히 반대하는 사람과 열렬히 옹호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저자에게 한 이 말은 플라스틱과 어떻게 하면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한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