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서 광복군까지… 軍制·전쟁기술 총망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664년(현종 5) 함경도 길주에서 열린 문·무과 시험 장면을 그린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 중 관아 마당에서 열린 무과시험 장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조선 중기 화원 한시각(1621∼?)이 1664년 그렸던 기록화를 베껴 그린 작품으로 추정된다. 경인문화사 제공

기원전 2세기 고조선과 중국 한나라와의 전쟁부터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무장독립전쟁 및 1940년 한국광복군 창설과 이후 활동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공동체의 역대 군사제도 및 강역사를 총정리한 ‘한국군사사’(전 16권·사진·경인문화사)가 출간됐다. 지난 1968년과 1977년 출판된 ‘한국군제사-근세조선전기편’과 ‘한국군제사-근세조선후기편’ 이래 40여 년 만에 다시 이뤄진 한국군사사의 체계적·종합적 연구 사업의 결실이다.

육군본부 육군군사연구소가 기획하고 사단법인 한국미래문제연구원에서 용역을 받아 집필한 것으로, 편찬위원장을 맡은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을 필두로 총 56명의 연구자가 참여했다. 감수위원과 군사연구소 평가위원 등을 포함하면 사실상 국내의 한국군제사 연구자를 총망라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5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3년6개월 동안 약 15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사업의 결과물로 200자 원고지 기준 총 3만5442장의 연구성과가 제출됐으며 출판에 약 1년의 기간이 소요됐다. 고대와 고려, 조선전기, 조선후기, 근·현대 등 한국사의 각 시기별로 2권씩 군사제도와 전쟁사를 정리한 10권의 시대사에 강역과 군사사상, 군사통신·무기, 성곽을 주제로 각 1권씩 집필된 4권의 통사가 더해졌다. 여기에 연표 1권과 이상의 연구성과를 1권으로 요약·정리한 개설서가 포함돼 모두 16권의 총서가 완성됐다. 지도와 사진, 그림, 도표 등 활용된 시각자료만 1400여 장에 달한다.

해방 이후 한국사학계에서 하나의 분야사를 이처럼 방대하고 상세하게 정리한 것이 최초의 사례란 점에서 이번 총서는 군제사 분야뿐만 아니라, 한국사 연구 전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이 위원장은 총설에서 “‘한국군사사’ 편찬 사업은 고대에서 국군 창설 직전까지 전 시기를 망라하고 협의의 군제사에서 벗어나 군사사의 틀을 갖추고자 노력하는 등 두 가지 점에서 새로운 지향을 추구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의 말처럼 ‘한국군제사’(전 2권) 등 기존 군제사 연구가 정치사와 제도사에 치우친 반면, 이번 사업은 제도사뿐만 아니라 전쟁사, 강역사, 군사요소별 분야사 등을 포함한 종합적 고찰을 시도한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한국사를 근·현대 서구에서 정립된 군사사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재구성한 것이다.

서구 근대 군사 사학 초기의 업적으로는 독일의 군사사가인 한스 델브리크(1848~1929)의 ‘병법사-정치사의 범주 내에서’가 가장 대표적이다. 유럽 군사사의 기반을 닦은 그는 책에서 페르시아 전쟁에서부터 1870년 전쟁까지 전쟁의 규모(병력의 수)와 진행 과정, 각 시기의 병법(전술과 병기) 등을 소상하게 밝히려 시도했다. 델브리크는 특히 “모든 민족의 생존은 그들의 군대조직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군대조직은 전투기술과 전술 및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인식 아래 정치사로서 병법사를 다뤘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대 역사학이 체계를 수립하던 시기에 국학자 안확(1886~1946)이 ‘조선정치사’의 말미에 30쪽짜리 ‘원고요초(原稿要抄)’ 형태로 제시한 ‘조선육해군사’가 최초의 군사 관계 전문 논술로 주목된다. 델브리크의 ‘병법사’의 영향을 느끼게 해주는 이 글은 원래 안확의 저술 계획 중 모두 8책으로 된 ‘제1부 조선문명사’의 하나로 제시됐지만, 끝내 완성을 보지 못했다. 안확이 ‘조선무사영웅전’ 같은 후속 성과를 냈지만 델브리크의 ‘병법사’가 보여준 수준의 연구는 일제강점기에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국내에서는 40여 년 전 출판된 ‘한국군제사’가 ‘조선왕조실록’으로부터 군사 관련 자료들을 직접 발췌, 활용한 최초의 연구서였다. ‘한국군제사’는 조선시대사 연구 전반에 큰 기여를 했지만, 협의의 제도사의 틀 속에 갇혀 델브리크나 안확이 중시한 ‘전투기술과 전술 및 전략’은 거의 다루지 못한 것이 한계로 지적된다.

바로 이 같은 문제의식에 1990년대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역사학계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친 서구 역사학계의 ‘군사사’ 바람이 ‘한국군사사’ 편찬의 중요한 배경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 정부는 78권으로 구성된 ‘제2차 세계대전사’를 편찬·간행해 세계 군사사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만든 바 있다. 특히 ▲전쟁 ▲제도와 기술 ▲군대와 사회 ▲군사사료 편찬 등을 주요 영역으로 하는 미국의 군사사 연구 성과는 이번 편찬사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