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건물을 빚고, 건물은 사람을 빚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60∼1970년대 흔히 볼 수 있었던 쪽문이 달려 있는 대문. 당시 사람들은 쪽문을 통해 드나들면서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랑채 기단을 높이 쌓아 올려 행랑마당의 하인은 주인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예안 이씨 종택. 효형출판 제공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 / 이상현 지음 / 효형출판

1970년대만 하더라도 쪽문이 달린 대문이 많았다. 사람들은 큰 대문 대신에 불편을 무릅쓰고 몸을 굽혀 쪽문으로 드나들었다. 하지만 당시엔 어느 누구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점차 대문에 달린 쪽문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출입을 위한 문이 대부분 넓어지고 높아졌다. 요즘 사람들이 예전의 쪽문을 접하게 되면 왜 굳이 이런 불편한 문을 사용할까 의아해할 것이다.

이 책은 건축(물)이 알게 모르게 사람들을 길들이는 것에 대해 자세하게 논증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람이 건물을 빚어내고, 건물이 사람들을 빚어낸다’는 것이다. 앞서 든 쪽문의 예를 보자.

대문에 쪽문을 달아 굳이 거기로 드나든 것은 풍수지리의 영향이 크다. 주택을 지을 때 풍수지리에서 강조하는 세 가지가 있다. 바로 배산임수(背山臨水), 전저후고(前低後高), 전착후관(前窄後寬)이다.

이 중 전착후관은 집의 출입구는 협소하게 하고, 안쪽을 널찍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부는 널찍하게 해서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고, 출입구는 협소하게 해서 외부의 침입을 차단하려는 의도다.

말하자면 쪽문은 외부의 침입에 대비한 전착후관이라는 사회적 이념을 건축행위로 구현한 것이다. 이는 곧 쪽문 달린 대문을 낳았고, 그것이 아무리 불편해도 불편한 줄 모르고 사용하게 만들었다. 사람을 길들인 것이다.

좀더 쉽게 설명하자면, 스마트폰이나 넥타이 등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물건들도 당연히 우리를 길들인다. 스마트폰을 처음 구입했을 때 자세한 사용법을 몰라 헤매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에게 맞는 사용법을 익히게 된다. 넥타이 역시 매는 순간, 좀더 ‘격식에 맞는’ 사람으로 자신을 길들인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다. 알게 모르게 우리를 길들이며, 건축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더욱이 건축은 스마트폰이나 넥타이와 달리 쉽사리 대체 불가하다는 측면이 있다. 저자는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에 건축이 미치는 영향, 건축에 의한 길들여짐을 스스로 알아차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책은 크게 1, 2부로 나뉜다. 1부 ‘건축으로 길들이기’에선 건축이 어떻게 사람을 길들이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양반집과 같은 살림집에서부터 서원과 향교 등의 공공시설, 궁궐 등의 국가기관 그리고 한양으로 대표되는 도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건축이 길들이기를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부 ‘건축으로 길들여지지 않기’에서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즉, 건축이 인간으로 하여금 어떻게 길들이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 1부에서 다루고 있는 사례 한 가지. 전통 한옥에서 행랑채와 사랑채, 안채를 어떻게 건축적으로 구분지었는지를 보자. 일단 사랑채의 지표면은 행랑채보다 높다.

다시 말해 행랑마당의 하인은 사랑채 누마루의 주인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안채 역시 마찬가지다. 단, 안채와 사랑채의 또 다른 차이점은, 안채 기단은 사람이 서 있기 가능한 정도의 폭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사랑채 기단은 사랑채 건물을 지면으로부터 들어올려주는 기능만 할 뿐이다. 안채의 주인마님이 하인을 안마당에서 기단으로 불러올려 좀더 은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관계에서 건축은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면서 “건축을 통한 길들이기는 우리의 일상과 밀착돼 반복되고 있어 인지하기 어렵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이 책을 통해 건축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명징하게 인식할 수 있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