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는 중세 초기의 ‘원자폭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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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물, 역사를 바꾸다 / 에릭 살린 지음, 서종기 옮김 / 예경

# 마리 퀴리가 라듐을 발견한 1898년에는 당대 최고의 석학들조차 방사능을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할지 잘 몰랐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병사들의 손목시계를 제작했던 US 라듐사에서 ‘언다크’라는 발광 페인트를 시계 숫자판에 칠하던 어린 여직공들 사이에서 비극적 사건이 벌어졌다. 공장에서는 시계의 작은 숫자를 칠하는 붓끝을 입술과 혀로 다듬도록 가르쳤다. 이들은 대량의 유독성 페인트를 섭취하게 됐다.

자신들이 위험한 방사능에 노출된 줄 모른 채 라듐 페인트를 눈 화장과 손톱 장식용으로 썼다. 심지어는 이가 환하게 빛나길 바라며 이빨에 바르기도 했다. 수백 명의 여직공들 얼굴이 기형적으로 변했고 끔찍한 고통 속에 죽어갔다. 그 뒤에야 US 라듐사는 유죄를 선고받았고 이 판례는 미국 노동안전기준을 정립하는 계기가 됐다.

# 나폴레옹이 숨진 뒤 그의 머리카락에서 고농도의 비소가 검출됐다. 그의 사인이 독살인지 아닌지는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더욱 설득력 있는 주장은 나폴레옹 황제의 거처를 멋지게 장식한 에메랄드 빛깔과 금빛이 뒤섞인 벽지에 비소를 함유한 녹색 안료가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세인트헬레나섬의 습한 기후 때문에 벽지에서 자란 곰팡이가 비소를 수소와 비소로 바꿨고 나폴레옹은 서서히 중독됐다는 것이다. 이 설에 따르면 나폴레옹을 죽인 건 벽지였던 셈이다.

이처럼 광물이 인간과 공존하면서 때로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기도 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50가지 광물과 여기에 얽힌 흥미로운 역사 에피소드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 현대사는 아스팔트와 석유가 날줄과 씨줄처럼 서로 교직하면서 전진해 왔다. 핵심 광물인 석유는 흥청망청하는 소비지상주의를 가능케 했다. 세계 최초로 상업화에 성공한 카를 벤츠의 자동차 내연기관은 속도 개념까지 바꿔놓았다.

아스팔트는 도로를 포장하는 콘크리트의 재료로 현대의 도로 문명을 활짝 꽃피웠다. 하지만 중세 초기에는 강력했던 폭탄 ‘그리스의 불’을 만든 원료였다.

아스팔트는 인화성 반액체 물질로 불꽃이 닿으면 발화한다. 비잔틴 제국의 과학자들은 아스팔트의 이 같은 특성을 활용해 이 폭탄을 만들었다. ‘그리스의 불’은 해전에서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꺼지지 않는 불길이 목재로 만들어진 전함을 휩쓸어 버렸기 때문이다. 당대의 원자폭탄과도 같았던 ‘그리스의 불’을 만드는 정보는 극비였다.

단단하게 결합돼 가장 안정된 원자가 철이다. 1779년 세계 최초의 철교이자 인류가 만든 첫 번째 철 구조물이었던 아이언 브리지가 영국 콜브룩데일에 세워졌다. 또한 뛰어난 철기 제작기술을 장악했던 집단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백년전쟁에서 잉글랜드는 대부분 전투에서 많은 승리를 거뒀지만 종국에는 강철 갑옷을 입은 프랑스에 지고 말았다. 승패를 가른 것은 강철 판금 갑옷이었다.

아프리카 말리의 젠네 모스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진흙벽돌 건물이다. 1907년에 만들어진 이 이슬람사원은 6만 제곱피트(75m×75m) 규모의 축대 위에 세워졌다. 신이 점토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기독계 세계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오랜 종교의식에서도 나타났다. 고대 그리스 술꾼들은 자수정 술잔이 취기를 없애준다고 믿었다. 이처럼 광물은 신화와 종교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광물은 문명 교류의 매개체였다. 호박 보석은 신석기 시대부터 발트해와 지중해 사이의 교역로를 통해 거래됐다. ‘호박길(앰버로드)’은 하나로 이어진 길이 아니라 북유럽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각종 육로와 수로로 촘촘하게 이뤄진 교역망이었다. 광물은 인류에게 더 편리한 삶을 안겨줬다. 텅스텐은 밤 거리를 환하게 밝혔고, 아연으로 만든 휴대용 건전지는 전자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하지만 그 반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19세기에 피아노가 유행하면서 상아의 원천인 아프리카 코끼리는 멸종에 이를 정도로 죽임을 당했다. 우라늄은 원자폭탄에 쓰였다. 광물의 세계를 지혜롭게 성찰하면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얻을 수 있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