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300년은 ‘율곡’으로 통한다

율곡 이이 평전 / 한영우 지음 / 민음사

“조선 후기를 지배한 최고의 한국인 스승은 율곡이고 중국인 스승은 주자(朱子·주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이화여대 이화학술원장인 저자(75)의 율곡 이이(1536∼1584)에 대한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성리학자로 퇴계 이황과 함께 ‘이선생(二先生)’으로 불린 율곡의 위상과 영향력에 필적할 인물이 조선 후기에는 없었다. 조선 후기 300년 동안 정권을 주도했던 서인과 노론, 소론 모두 율곡의 학통을 계승했으며 율곡은 공자를 제사지내는 성균관 문묘(文廟)에 배향된 ‘동국 18명현(東國十八名賢)’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동국 18명현에 포함된 조선시대 인물 14명 가운데 조선 후기 문묘에 배향된 조헌과 김인후, 김장생,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등 7명이 모두 율곡의 학우이거나 율곡의 학문을 계승한 문인 또는 후학이었다. 율곡의 저서인 ‘성학집요(聖學輯要)’는 중국 송나라 진덕수가 지은 제왕의 정치 지침서인 ‘대학연의(大學衍義)’와 쌍벽을 이루는 경연(經筵)의 교재가 됐는데, 조선시대 경연의 교재 가운데 우리나라 학자가 지은 저서는 ‘성학집요’가 유일했다. 저자가 ‘조선 중기 최고의 경세가이자 위대한 스승’이란 부제를 붙인 배경이다.

책은 ‘율곡어록’(1980)을 번역·출판하는 등 지난 40년 동안 율곡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던 저자가 본격적으로 쓴 율곡 평전이다. 조선 왕조의 건국을 설계한 삼봉 정도전과 함께 율곡을 조선시대 사상사 연구에서 두 개의 큰 봉우리로 여겨온 저자는 책에서 16세기 늙고 병든 조선 왕조를 혁신해 왕조의 수명을 연장시키려고 노력했던 율곡의 삶과 사상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율곡은 16세기 후반 당시 조선이 처한 상황을 지은 뒤 오래돼 벽이 무너지고 기와가 부서지고 서까래가 썩어 버려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토붕와해(土崩瓦解)’ 직전의 고가(古家)에 비유했다. 각종 상소와 저술 등을 통해, 하루빨리 재주있는 목수를 불러 수리하지 않으면 집이 폭삭 주저앉을 위기임을 직언했던 그가 애타게 강조한 게 바로 경장(更張)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조선 초기에 세워진 왕조의 틀을 그대로 유지·계승하면서 연산군 이후 민생을 파탄으로 몰아간 잘못된 제도를 고치자는 내용이었다. 혁명도 수구도 아닌, 일종의 점진적 개혁을 주장한 것이었지만, 선조와 집권세력인 사림(士林)들이 받아들이지 못했고 임진왜란을 맞게 됐다.

하지만 저자는 책에서 임진왜란 이후 300년 역사는 율곡의 학문과 경장을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대동법과 균역법, 서얼 허통, 향약 보급 , 이조 낭관이 후임을 추천하는 낭천권(郎薦權) 폐지 등 조선 후기 주요한 개혁정책이 바로 율곡의 사상과 가르침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16세 때 어머니 신사임당을 여의고 3년상을 치른 직후 가출해 1년간 불가에 귀의했던 사건 등 개인사를 극복하고 조선시대 선비의 사표로 거듭난 율곡의 삶은 청소년들에게도 귀감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