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문학·음악·철학… 창조와 혁신의 비엔나 ‘위대한 예술魂’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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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1900 / 크리스티안 브란트슈태터 외 지음, 박수철 옮김 / 예경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가 열렸다. 유럽의 주요 도시들에는 세기말의 우울한 분위기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었다. 천재 음악가이자 화가였던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항상 자살충동과 씨름해야 했다. 에곤 실레는 1890년에 태어나 28세에 사망했다. 그의 작품 속에 음울함이 넘쳐났다. 그 우울함과 어둠 속에서도 새 100년 빅뱅에 대한 기대감이 폭발하고 있었다. 새로운 문화와 진리탐구를 향한 열병을 앓는 천재들이 비엔나에 모였다. 그 빛깔이 총천연색 무지개와도 같다. 20세기 후반까지 영향을 미친 지그문트 프로이트, 음악의 기본원칙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한 쇤베르크, 현대건축의 선구자 오토 바그너, 그리고 파격적 에로티시즘으로 지금까지 세계를 열광케 하는 ‘키스’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900년, 이들은 20세기를 향해 마음껏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구체제가 무너지는 가운데 미래를 향한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르던 ‘벨 에포크(좋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떠들썩한 세기말은 위대한 예술혼을 흔들어 깨웠다.

책은 비엔나의 예술가들이 우울과 절망적 색채 농후한 세기말을 활기찬 영감과 상상력의 시대로 바꿔놓았다는 점을 다양한 풍경을 통해 보여준다. 자아를 탐구하는 비엔나 정신은 20세기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저자들은 21세기 정신의 발원지가 왜 작은 도시 비엔나였냐고 묻는다. 그 배경에 뛰어난 인문학적 토대를 갖춘 학자들과 사상가, 예술가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유기적 관계 속에서 영향을 미친 점을 꼽고 있다.

1800년대 말에서 1900년 초의 비엔나는 왈츠와 교향곡의 도시인 동시에 미술과 건축과 문학과 철학, 정신의학이 탄생한 도시였다. 도시 전체가 흥분해있었고, 예술가들이 카페 이곳저곳에서 논쟁하고 웃으며 사랑을 나눴다. 인간의 모든 정신적 산물이 집결된 문화의 도시가 비엔나였다. 비엔나 1900년을 관통하는 예술사적 양식은 유겐트 슈틸(아르 누보, 즉 신예술)이었다. 클림트를 회장으로 추대한 오스트리아 예술가협회, 즉 분리파 결성은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분리파에 가담한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 요제프 호프만, 아돌프 로스 등 예술가와 건축가를 필두로 공예, 판화, 그래픽 아트, 제본 등의 분야를 종횡 무진한 비엔나 공방(工房)의 영광은 시작됐고, 21세기로 그 빛을 던졌다. 현대예술의 뿌리가 된 비엔나 황금기는 종종 르네상스 시대와도 비견된다. 21세기 새로운 문화 조류가 움트는 시점에 100여 년 전의 문화 혁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유겐트 스틸과 비엔나 분리파는 내면으로 이동을 양식적 미학적으로 표현한 그룹이었다. 당시 팽배하던 자본주의와 성공지향적 풍조에 불만을 품은 분리파는 이에 반발하면서 진보에 대해서도 방어적 입장을 취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생겨난 비엔나 공방은 ‘취향의 귀족화’로 치닫게 된다. 다시 말해 특권계급만 소유할 수 있는 사치품 생산에 기여하고 말았다.

코코슈카, 에곤 실레,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그림은 오직 세기말 비엔나를 상징하듯 어느 시대에서도 보지 못할 독창적이고도 내면 지향적인 작품이었다. “가장 진보적인 진보주의자, 가장 현대적인 현대인, 가장 분리파다운 분리파 회원의 전형”으로 평가받는 오토 바그너는 오늘날 오스트리아 특유의 건축양식을 창조한 인물이다. 극작가 아르투르 슈니츨러는 단막극을 통해 병리학적 감정을 냉소적으로 진단했다. 언어철학을 선도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프라츠 마우트너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아돌프 로스는 공간에 대해 의미심장하고 새로운 관심을 촉발시켰다. 공간의 경제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비엔나의 한 카페를 거점으로 한 시인들이 비엔나 문학사에서 가장 창의적인 시대를 이끌었다. 문학사조가 생성하고 소멸했으며, 정치와 과학이 논의됐고, 새로운 양식의 회화, 음악, 건축 등이 태동했다. 20세기 심리소설의 대가 슈테판 츠바이크도 카페 문학의 요람 속에서 성장했다. 1900년. 비엔나에는 약 600개의 카페가 있었다. 아돌프 로스가 디자인한 카페 무제움의 장식은 당시로써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엄격하면서도 기능이 강조됐다.

음악에서 말러와 브루크너. 두 예술가는 비엔나 교향곡의 위대한 역사의 절정을 상징한 인물이었다. 1900년에 완성된 말러 교향곡 4번은 회화주의와 결별한 작품이었다. 그를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개별적 형태로 움직이는 순수음악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하지만 말러의 교향곡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비엔나에서 단 한 곡도 연주되지 않았다. 사후 십 년 뒤에야 그의 제2고향은 그를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로 받아들였다. 책은 ‘예술, 문화, 삶’의 세 박자가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문화적 동요가 극명하게 일어난 1900년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했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