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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3년 05월 10일(金)
詩學 속 시문·그림 통해 옛 선비들의 삶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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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시학 /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드러난 형상 밖으로 훌쩍 벗어나 존재의 중심을 손에 쥔다(초이상외 득기환중·超以象外 得其環中).’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시학서인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이하 시품)’의 첫 번째 풍격(風格)인 ‘웅혼(雄渾)’의 본문 48자 가운데 핵심 문장 의 우리말 해석이다.

‘문심조룡(文心雕龍)’ ‘창랑시화(滄浪詩話)’ 등과 함께 전근대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시와 그림, 글씨 등 미학 이해의 기준이 돼왔던 ‘시품’은 다른 작품들과 달리 구체적인 내용 없이 추상적인 24가지 풍격을 각각 네 글자 12구 48자로 짜인 운문으로 묘사하고 있다. 풍격은 직관적이고 상징적인 말로 시와 시인의 전체적인 인상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원문으로 계산해도 전체가 겨우 1152자에 지나지 않는데, 이 중에서도 영웅의 장대한 품격을 노래했다는 ‘웅혼’ 편의 8자는 ‘시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장으로 손꼽힌다.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에서 출발한 사유로, 웅혼한 작가는 궁극의 차원에서 비어 있는 존재의 중심이 돼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책은 중국은 물론, 조선 후기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시학(詩學) 텍스트인 ‘시품’과 이 책의 내용이 녹아든 예술작품을 분석해 전근대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공유했던 24가지 궁극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있다.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인 저자가 2011년 한 해 동안 매주 금요일 30장 이상의 분량으로 네이버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한 글을 엮은 ‘우리시대 명강의’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200자 원고지로 6장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로 시를 말한’ 텍스트를 7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으로 풀어낸 공력이 놀랍다.

‘시품’은 오랫동안 당나라 말엽의 시인 사공도(司空圖·837∼908)의 저작으로 알려져 왔으나 1990년대에 들어와 논쟁에 휩싸였다. 저자는 책 말미에 실은 보론에서 사공도의 작품이 아니고 창작 연대도 송 말엽에서 원대 사이에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중국 미학계를 대표하는 장파(張法) 런민(人民)대 교수가 ‘문심조룡’과 함께 중국 미학 체계의 성과를 대표하는 저작으로 꼽은 ‘시품’은 명대 초기부터 시법(詩法)을 논한 많은 저작에 수록돼 읽혔다. 그러다가 명말청초 사공도의 독립된 저작으로 거듭난 뒤 강희·건륭제 등 청나라 황제들의 각별한 애호를 받으면서 위상이 높아졌다.

‘시품’은 시뿐만 아니라 글에 담긴 ‘화의(畵意)’ 또는 ‘시적 풍경’ 때문에 서예와 인장, 그림 등 형상예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건륭제의 명으로 반시직(潘是稷·?∼?)과 장부(蔣溥·1708∼1761)가 각각 ‘시품’ 24개 풍격을 그림으로 그려 제작한 화보를 비롯, 청말 제내방(諸乃方)까지 중국과 조선에서 모두 네 명의 화가가 시품화보를 제작했다. 조선에서 제작된 화보는 겸재 정선이 그림을 그리고 서예가인 이광사가 글씨를 써서 하나의 첩으로 제작한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1751)을 말한다.

저자는 책에서 ‘시품’의 본문을 충실히 이해한 바탕 위에서 정선과 반시직, 장부, 제내방 등 네 명의 화가가 그린 그림을 분석하고 ‘시품’의 미학을 중국과 한국의 시에 적용해 설명한다. ‘시품’을 다룬 책이 적지 않지만, 이처럼 문화적 시각에서 ‘시품’이 녹아든 예술작품을 다방면으로 아우르며 분석한 저서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시품’의 고향인 중국에서도 나온 바 없다.

가령 ‘시품’의 두 번째 풍격인 ‘충담(沖淡)’은 평화롭고 담백한 성질이나 상태를 뜻한다. ‘시품’의 첫 번째 풍격인 ‘웅혼’과 거의 상반되는 ‘충담’의 생활태도나 풍격은 선비의 담백한 미학을 상징한다. 이에 따라 정선을 비롯한 ‘충담’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화가 4명의 작품에는 어김없이 고매한 선비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외로운 학과 대나무가 등장하고 있다.

‘떨어지는 꽃잎은 말이 없고 사람은 담백하기가 국화와 같다’는 ‘전아(典雅)’의 풍격을 묘사한 글에서 볼 수 있듯 ‘시품’의 풍격은 단지 예술의 소재나 미학 개념으로만 활용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인생이 지향해야 할 지점을 가리키기도 했다.

책은 우리보다 몇 백 년 앞서 산 선조들의 시문과 그림, 글씨에 더해 인생 태도까지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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