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3.0>50℃ 사막서 1주일 250㎞ 뛰어 “육체 한계서 정신 맑아지더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신동채 목사가 2012년 5월 요르단 사막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역주를 펼치고 있다. 해발고도 1000m 안팎의 요르단 와디럼 사막에서 진행된 이 대회에서 신 목사는 식량 20끼를 짊어지고 뛰었다. 신동채 목사 제공

“오지마라톤은 정신·지구력 강한 50대 한국 남성에게 딱! 젊었을 때 맨손으로 인생을 일군 정신이면 완주할 수 있어.”

마른 장마 속 무더위로 푹푹 찌는 6월 마지막 일요일인 30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민들레교회에서 만난 신동채(55) 목사는 연신 부채질을 하는 교인들과 달리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문화일보 취재진을 맞았다. 적당한 키에 편안한 인상, 조용한 어투까지. 겉모습을 봐서는 사막 한가운데를 달릴 만큼의 강인함이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 전까지 그가 취미로 오지마라톤을 할 것이란 단서는 마라토너들이 즐겨 차는 전자시계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2시간 가까운 인터뷰 시간 동안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똑같은 어조와 목소리 톤으로 말을 이어갔다. 낡은 전자시계의 규칙적인 호흡. 그는 일상생활도 마라톤처럼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신 목사가 오지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3년 전. 쉰 살을 넘긴 나이에 읽은 ‘나는 오늘도 사막을 꿈꾼다’란 책 때문이었다고 했다. 세계 4대 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여성이 쓴 책을 읽은 그는 자석처럼 오지마라톤에 이끌렸다. 보통 마라토너들은 마라톤 풀코스(42.195㎞)를 완주하거나 울트라마라톤(100㎞)을 완주한 후 오지마라톤에 도전한다. 사막과 산악, 남극을 무대로 1주일에 걸쳐 250㎞를 달리는 오지마라톤은 쉬운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목사는 “자아를 초월케 하고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순화된 정신을 갖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참여하게 됐다”며 “국내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싶어도 예배 시간인 일요일 오전과 겹쳐 참가하기 힘들고 오지마라톤에 가기 위해 1년 중 유일하게 휴가를 낸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책을 읽은 지 여섯 달 만에 이집트 사하라 사막레이스를 완주한 신 목사는 이듬해 중국 고비 사막레이스를 거쳐 지난해에는 요르단 사막레이스, 올해 6월에는 해발고도 3000m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부탄 산악레이스를 마쳤다. 총 1000㎞ 완주.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고도 남을 거리다.

오지마라톤 완주 경력만 보면 ‘철인’으로 불릴 법하지만 신 목사는 20대 해군사관학교에 입교한 후 3학년 때 결핵을 앓아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등 건강으로 인한 시련도 겪었다. 신 목사는 “마라톤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는 철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평범한 사람이 많다”며 “나 또한 체력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보다 영성과 지성을 더욱 키우고 싶어 극한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신 목사가 오지마라톤을 준비하기 위해 하는 운동은 주로 자전거타기다. 그는 매일 오전 7시 30분부터 교회가 있는 중곡동에서 서울 용산구 잠수교를 거쳐 서울 광진구 광진교까지 40㎞ 거리를 2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생각보다 간단한 준비에 놀란 기자에게 그는 지구력이야말로 오지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게 한 힘이라고 강조했다. 신 목사는 “오지마라톤을 극한의 운동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젊었을 때 맨손으로 인생을 일군 한국의 40·50대 남성들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신 목사는 코스를 설명할 때 극한 환경 속 어려움도 잊지 않았다. 50도가 넘는 기온에 사막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20㎏이 넘는 배낭을 메고 하루 40㎞를 달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최 측이 제공하는 것은 끓인 물과 텐트 외에는 없다. 참가선수 대부분은 건조식품을 배낭 속에 넣고 뛰다가 체크포인트 지점에서 주최 측에서 제공한 끓인 물로 해동해 먹는다.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사막 한가운데서 선수들은 보통 오전 7시에 일어나 8시간 이상씩 뛰어 매일 정해진 지점에 들어가야 한다.

신 목사는 “3일째 되는 날에는 모든 기력이 소진되는 것이 느껴지지만 약간의 음식을 먹고 곧 다시 몸이 움직여질 때면 신비함마저 든다”며 “매일 같이 에너지를 섭취만 하는 현대인들은 극한 상황 속에서 육체가 단련되고 정신이 맑아지는 경험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신 목사도 첫 완주에서 가장 큰 고비를 맛봤다. 2010년 10월 신 목사가 이집트 사하라 사막마라톤에 처음 참가했을 때, 다른 선수들과 대회 관계자들은 대부분 그를 보며 완주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첫날부터 고비를 맞았다. 육체적 고통이 아닌 정신적 고통이었다. 신 목사는 “첫날 40㎞를 뛰면서도 ‘내가 왜 이걸 뛰어야 하나’란 생각부터 시작해 셀 수 없는 번뇌가 떠올라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5일째 되는 날,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포기하는 롱데이 구간(long-day : 이틀에 걸쳐 잠을 자지 않고 100㎞를 뛰는 구간)에서 신 목사는 진통제를 먹으며 달렸다. 당시 그는 발이 부어 운동화를 벗기도 힘든 상태였다. 그는 “롱데이 구간을 마친 참가자들은 가만히 누워 있기도 힘든데, 내가 골인지점에 들어서자 70여 명의 선수들이 모두 텐트에서 나와 나를 반겨줬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신 목사에 따르면 오지마라톤 참가자의 3분의 1만 프로선수이며 나머지 선수들은 몇 번의 유경험자 또는 초보자다. 단시간에 기록을 내는 운동이 아니라 1주일 동안 진행되는 만큼, 극한 여정을 겪으며 참가자들 사이에선 우정이 싹튼다고 한다. 신 목사 또한 첫 대회 롱데이 구간에서 자신을 돌봐줬던 한국인 선수를 잊지 못한다. 그 또한 초보 선수들을 위해 대회 때마다 누룽지 등 식품을 갖고 가 나눠 먹는다. 조그만 식품일 수 있지만 250㎞ 구간 동안 메고 가야 할 짐인 것을 서로가 알기에 나눔의 정이 남다를 것이다.

느낌을 묻는 기자에게 신 목사는 “물질이 넘치는 현대사회와 달리 오지는 자신의 몸 하나로 버티는 원시적인 곳”이라며 “그곳에서 선수들 간에 느끼는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신 목사는 오지마라톤을 통해 시련에서 탈출할 힘을 얻는다고 한다. 그는 “50대에 목회 일을 그만두게 될 시련도 있었지만, 오지마라톤을 한 후 현실을 이겨낼 용기도 생겼다”며 “한국의 50대 남성들도 오지마라톤을 통해 두려움에 맞설 용기를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