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삼중 안전장치가 되레 ‘참사’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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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 / 찰스 페로 지음, 김태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1979년 3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 인근 스리마일섬의 원전 2호기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냉각수를 거르는 복수 탈염 장치에 불순물이 섞이면서 터빈이 멈춘 것. 이런 문제는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필 이런 상황을 대비해 만든 비상 급수 펌프마저 막혀 문제가 불거졌다. 사고 이틀 전 보수 작업을 한 뒤 실수로 밸브를 닫아 놓은 것이다. 게다가 밸브가 닫혔음을 알려 주는 계기판도 스위치가 달린 수리표에 가려져 있었다. 밸브가 닫혔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어려운 탓에 초기 대응이 늦었고 결국 이후 2주가량 미국 전역이 방사능 유출과 폭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스리마일섬 원전사고는 각각의 사고를 떼어 놓고 보면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한번 발생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위험시설인 만큼 겹겹의 안전장치가 마련됐다. 하지만 사소한 문제가 연쇄적인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큰 문제가 된 것이다.

책은 스리마일섬 원전사고를 비롯한 수많은 ‘정상사고(Normal Accidents)’를 다룬다. 저자인 찰스 페로 예일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스템의 속성에 따라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고를 ‘정상 사고’ 혹은 ‘시스템 사고’라고 부른다. 아무리 효율적인 안전장치를 동원해도 피할 수 없고, 누구의 잘못이라고 딱 부러지게 지적하기 어려운 사고인 것이다.

저자는 정상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시스템의 요소들이 고도의 상호작용성과 긴밀한 연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시스템의 문제를 간과한 채 ‘인재(人災)’를 운운하며 희생양을 찾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럴 경우 다른 사고를 예방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원전 산업의 안전 실태는 물론, 원전과 마찬가지로 복잡하고 긴밀하게 연계된 시스템인 항공 산업을 진단한다. 아울러 해운 산업, 댐, 호수, 탄광 등 대형 사고 가능성을 안은 여러 부문도 꼼꼼하게 살펴본다. 저자는 “고위험 시스템의 특별한 속성을 분석하면 사고 발생 이유와 불가피성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며 “그래야 특정한 기술을 폐기하거나 폐기할 수 없을 경우 개조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고위험 시스템의 속성 분석을 통해 최소한 엉뚱한 원인을 지목하거나 더 위험한 방향으로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1984년 발간돼 대형사고 연구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이 책은 각종 사고 연구의 필독서로 통한다. 1999년 개정판을 우리말로 옮겼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