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 운동하자>패스∼패스∼ 슛! 슛!… 전업주부도 워킹맘도 고단함 ‘뻥∼’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용산구 여성축구팀 선수들이 24일 오전 효창운동장에서 미니게임을 하며 몸을 풀고 있다. 이 팀은 40∼50대 주부 14명으로 구성돼 있다. 정하종 기자 maloo@munhwa.com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장 이운순(오른쪽) 씨와 축구경력 1년차인 조민수 씨가 패스 연습을 하고 있다. 정하종 기자

지루하게 내리던 장맛비가 잠시 멈춘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동 효창운동장에 한 무리의 중년 여성들이 “패스”를 외쳐대며 열심히 공을 차고 있다. 유니폼에 축구화까지 갖춘 모습이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을 연상케 하지만 실력은 조금 엉성하다. 공을 차다 헛발질을 하며 넘어지는가 하면 서로 몸싸움을 벌이다 발등을 밟아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대형을 갖추고 공격해 들어가다 한 선수가 골대 앞에서 패스를 받아 멋진 슛까지 날리는 걸 보니 꽤나 훈련된 팀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 팀은 용산구에서 운영하는 여성축구팀이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에서는 모두 여성축구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대부분 20∼30대 여성들이 주축 멤버지만 용산구 여성축구팀은 40∼50대 주부들로 이뤄진 100% ‘주부축구팀’이다.

지난 2007년 창단한 이 팀에는 현재 14명의 선수들이 소속돼 있다. 이 중 반은 전업주부이고 반은 직장에 다니는 ‘워킹맘’이다. 이들은 1주일에 세 번 한남동 미니축구장과 효창운동장에서 하루 2시간씩 맹연습을 하고 있다.

이 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이운순(45) 씨는 고1 아들을 둔 전업주부로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창립멤버로 경력 7년째에 접어든 이 씨는 선수를 모집한다는 구 공고를 보고 종목도 모르는 채 아들 친구 엄마들과 운동장에 나왔다 얼떨결에 축구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그는 “워낙 체력이 약하고, 운동을 싫어해서 운동장 근처에도 안 갔었는데 동네 엄마들이 가보자고 해서 따라갔다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며 “첫날 운동장을 10바퀴 돌고, 다리에 힘이 빠져 한동안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 씨는 이어 “2시간 운동하고 집에 오면 바로 쓰러져 2시간 정도 잠을 자야 했다”며 “집안일도 못할 정도로 힘이 들어서 1년 정도 지났을 때 그만두려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남편의 격려로 운동을 계속했고, 이제는 남편과 아들에게 축구를 가르칠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이 씨는 “남편이 밥상을 대충 차려줘도 전혀 불만이 없었고, 오히려 운동을 안 나가면 등을 떠밀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제일 좋아하는 선수로 자신과 포지션이 같은 박지성(퀸스파크레인저스)을 꼽았다. 그는 “박지성 선수의 플레이를 보며 흉내를 낸다”며 “축구중계는 빼놓지 않고 보고, 가끔 팀원들과 상암경기장을 찾아 FC서울을 응원한다”고 밝혔다.

이 씨는 ‘단합’이 축구의 최대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운동이 힘들어 갈등할 때 동료들이 매일 전화해 용기를 줬다”며 “운동장에서 공을 찰 때도 서로 호흡을 맞추다보면 즐거움이 배가되고, 웃음꽃이 핀다”고 설명했다.

프리랜서 영어강사인 조민수(여·45) 씨는 골프, 수영, 윈드서핑, 웨이트트레이닝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 스포츠마니아다. 1년 전 이 팀에 들어온 조 씨는 “평소 운동을 많이 하는 편인데도 첫날 운동장에서 뛸 때 숨이 멈출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며 “하지만 다른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뛰었고, 이제는 체력에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그는 또 “밖에서 영어를 가르친 후 집에 오면 청소, 빨래를 해야 하고, 아이도 챙겨야 하지만 시간을 내 축구를 하다 보니 모든 일이 다 잘 된다”고 말하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라이트윙을 맡고 있는 조 씨는 “처음에는 헛발질도 많이 하고, 발에 차여 온통 멍투성이였는데 틈나는 대로 집 앞에서 혼자 공을 차며 훈련하다 보니 이제는 드리블해 들어가다 문전으로 공을 띄워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용산 여성축구팀의 목표는 매우 소박하다. 바로 경기에서 골을 넣는 것. 지금까지 8번 경기에 출전했지만 아직까지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이 씨는 “다른 구 팀에는 젊은 여성들이 많고, 간혹 선수생활을 했던 사람들도 있다”며 “히딩크 감독은 배가 고프다고 했지만 우린 목이 마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운동장에 나가면 하루 150회 정도 킥 연습을 하고 있으니 11월쯤에 열린 대회에서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두 사람에게 ‘언제까지 축구를 할 거냐’고 묻자 한목소리로 “60까지는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조 씨는 “머리가 하얘지면 팀 이름 앞에 ‘실버’자를 붙이면 된다”며 “축구를 하다보면 꾸미지 않은 순수한 웃음이 나오는데 그런 기쁨이 나이 들어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팀을 지도하고 있는 정재현 감독은 “처음 운동장에 나와서 어색해하던 어머니들이 축구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지도자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며 “온순하던 분들이 경기에 투입되면 숨겨진 승부욕이 나오는데 그럴 때면 깜짝 놀라게 된다”고 말했다. ‘중년 여성이 축구를 하면 부상 위험이 높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운동 전에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고, 몸싸움보다는 각자의 포지션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훈련에 집중하기 때문에 부상 위험이 그리 높지 않다”고 답했다.

김구철 기자 kckim@ 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