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과 개혁’ 토해낸 ‘당송 팔대가’의 名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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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혁신 / 우멍푸 지음, 김철범 옮김 / 글항아리

중국고전의 정수 혹은 ‘고문’(古文)의 대표로 떠오르는 것이 ‘당송팔대가’의 문장이다. 그러나 당송시절 그들이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하고자 기존의 문체를 바꾼 것은 일종의 혁신이었다. 책은 당송팔대가를 한 명씩 불러내 그들의 삶과 시대인식과 글쓰기의 실상을 살펴봤다. 한계의 지적과 평가도 빠뜨리지 않았다.

당송팔대가란, 당나라의 한유(韓愈·768∼824)와 유종원(柳宗元·773∼819), 송나라의 구양수(歐陽脩·1007∼1072), 증공(曾鞏·1019∼1083), 왕안석(王安石·1021∼1086) 및 소식의 가족 즉 소식의 아버지 소순(蘇洵·1009∼1066), 소식(蘇軾·1037∼1101), 소식의 아우 소철(蘇轍·1039∼1112)이다. 이들은 실로 중국문학사의 기라성이고, 조선시대 문인들의 학습대상이었다. 이들의 문명(文名)은 후대에 더욱 높아졌다. 이 여덟 명이 특별히 ‘팔대가’로 묶이어 칭송된 것은 명나라 때다.

한유는 당송팔대가 문장을 세운 초석의 역할을 했다. 한유는 그 당시 문장이 미려한 형식을 쫓느라 실제 생각과 현실상황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기원전 은주시대의 간단하고도 거친 문장을 오히려 그리워했다. ‘병려문’이라 불리는 그 당시 공식문체는, 왕에게 ‘삼가 감사드립니다’라는 두세 자의 내용을 위해 수십 자의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방식이었다.

한유의 주장은, “글(文)이란 반드시 그 내용에 달려”있으니 생각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말이 자기로부터 나왔는데, 후대로 와서 표현이 답습된다”고 비판하며 진부한 말과 생각을 거부했다. 그는 민생의 참혹한 현실을 포착하고, 불교와 도교의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고, 주변의 작은 물건들에 의탁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유가의 도를 세운 글 ‘원도(原道)’는 고독한 민생들을 보살피는 도덕을 주장했다. 붓을 인격화한 ‘모영전(毛潁傳)’은 현실을 은근히 비판했다.

유종원은 한유보다 5세 어린 동시대 인물이다. 그는 관료가 된 뒤 민생을 위한 혁신에 적극 참여했다가 환관들의 반발로 쫓겨났다. 15년의 좌천생활을 하다가 47세로 유배지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지방에서, 종일토록 일하고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는 농민들이 “세금 납부가 늦어지면”, “매질을 당하여” 피가 낭자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했다(‘전가(田家)’). 또한 세상의 이치와 우주의 원리를 살피고, “천지음양과 산천의 변화는 사물의 본성에 따른 자연의 운행일 뿐, 사람의 의지로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비국어(非國語)’) 이는 현실에 기반을 둔 무신론적 사고다. 하늘이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도 현실의 실상을 보고하는 글쓰기다. 현실을 중시하고 화려한 문장을 걷어치운 유종원의 입장은, 한유의 그것과 상통했다.

실로 유종원은 한유를 존경해 한유의 ‘모영전’이 혹 세간의 비난을 받을까 우려하면서도, 그 자신은 더욱 신랄한 글을 남겼다. 왕손을 작은 원숭이에 비교하고 왕손은 원숭이보다 못한 존재라는 논리를 세운 ‘증왕손문(憎王孫文)’은 통쾌하다. 한유의 문장이 웅건하고 유창하게 흐른다면, 유종원의 글은 정밀하고 시원하게 솟구친다. 이들의 의해서 중국역사상 문장혁신의 모토가 제기됐다.

구양수가 관료가 됐을 때 송나라는 안정기의 문제가 움트고 있었다. 구양수는 범중엄과 함께 “천하의 근심을 먼저 근심하자”는 뜻을 세우고 농업발전과 국가비용절감 등의 개혁을 요구했다. 그러나 귀족관료들에게 부딪쳐 개혁안은 실패하고 그들은 좌천됐다. 당나라 때 한유가 세상과 문장의 변화를 주장했지만 세상과 문장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구양수는 한유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날의 중국문학사는 기술한다. “한유의 문장은 당나라 때 중시되지 못했다. 한유의 문장이 중시되기 시작한 것은 송나라의 구양수부터다.”(사오웨, ‘중국문학비평’)

구양수는 세속의 쉬운 구어(口語)를 그의 문장에 대거 활용했고, 남녀의 정을 묘사한 것도 적지 않다. 이러한 구양수의 문체는 참신한데, 동시에 유려하다. 구양수는 사실상 변려문에도 매우 능하고 섬세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양수의 문장은 질박한 듯 화려하며 공감각을 일으킨다. 그 문체의 이러한 조합성은 그의 사상에도 드러났다. 특히 봉건도덕을 옹호한 점에서, 한유나 유종원보다 구양수는 오히려 덜 진보적이었다고 평가된다. 이 때문에 구양수는 당송의 산문을 ‘고문’(古文)의 이름으로 남게 만든 장본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증공은 구양수를 착실하게 배운 제자면서 스승보다 철저한 현실인식과 역사관을 보여줬다. 구황정책을 논한 일명 ‘구재기(求災記)’에서, 비경제인구의 수치가 2만1900명이라고 한 표현이나 여기저기 사용된 쌀의 양이 몇 석이었다는 구구한 수치가 특색으로 꼽힌다.

송나라 신법을 주장한 왕안석과 이를 반대했던 소식이 모두 당송팔가에 올랐다. 왕안석은 사회개혁을 주장한 정치가답게 문장은 현실에 직접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 사회 경제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이 책의 저자는 소식이 왕안석의 신법을 오해해 비난했다고 해석했다.

소식은 그의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팔가에 올랐다. 일반적으로 당송팔가 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소식이 꼽히곤 한다. 이 책에서도 “시와 산문 사부 서화에서 그 시대 최고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소식을 높이 평가했다. 소식은 글과 그림이 모두 그 사람의 의(意)에서 나온다고 했고, 청신한 의를 세우고 고전서적을 스스로 활용하라고 했다. 그래서 “뜻과 필력이 곡절해지면, 표현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언어로 표현하되 언어이면의 내포를 모두 활용하는 경지를 뜻한다.

소식의 문장은 유려하고, 쉽게 읽힌다. 책의 저자는 소식의 ‘전적벽부’에서 유명한 구절을 새롭게 해석했다. 물과 달이 흘러도 다 흐르지 않고 변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을 인생에 비유한 문장이,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시적이라는 해석이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