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공짜’ 선동에 또 속아선 안된다

김종호/논설위원

남의 금품을 훔치는 도둑보다 빗나간 정책으로 국민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공직자가 더 큰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라는 인식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정책 실패가 범법은 아니어서 처벌을 받진 않지만, 피해가 절도보다 광범위하고 장기적일 뿐만 아니라 돌이키기도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출직 공무원 선거에서 ‘무상(無償) 포퓰리즘’ 공약이 초래하는 결과도 그 전형(典型)에 해당한다. 무분별한 선심 공약은 재앙(災殃)의 부메랑이 된다는 사실이 확인된 지 오래지만, 선거 때마다 여전히 난무한다. 정당이나 후보자들이 망국적 행태라는 지탄을 받을지라도 자기 재산을 축내는 일이 아니면서 자신들의 득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 6·4 지방선거도 예외가 아니다. 새누리당이 공약 제1호로 지난 20일 발표한 ‘어르신 섬김’ 정책부터 그렇다. 65세 이상 국민 전원에 대해 어느 병원에서든지 무료로 독감 예방접종을 받게 하겠다는 발상의 배경은 무상 포퓰리즘 외에 달리 있기 어렵다. 민주당이 ‘국민생활비 부담 경감대책’ 제5탄이라며 이날 내놓은 ‘대학 입학금 폐지’ 공약도 마찬가지다. 고등교육법을 개정해 국·공립대 입학금은 즉시 폐지하고, 사립대는 소액 납부 단계와 국가가 부담하는 고등교육재정 확대 등을 거쳐 3년 안에 완전 폐지하겠다는 것은 최악의 포퓰리즘 공약 경쟁이 벌어졌던 2012년 제19대 총선 당시 ‘반값 등록금’ 포퓰리즘의 연장선이다. 2월 13일 제1탄인 ‘국민 교통비 경감’에 이어 20일 ‘국민 통신비 경감 대책’, 27일 ‘중·고등학교 신입생 중 저소득층 10만 명에 대한 교복값 지원’, 3월 11일 ‘산후조리원 이용료 30% 경감’ 등 숨가쁘게 ‘공짜’의 폭을 넓혀온 공약 시리즈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과 통합해 오는 26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할 새정치민주연합의 경기도지사 예비후보 중에 한 사람인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은 심지어 ‘공짜 버스’ 공약까지 들고나와 당내 경선 상대들로부터도 비(非)현실성을 지적받고 있다. 버스 운영을 완전 공영화해 단계적으로 도민 모두 무료로 버스를 타게 하겠다는 공약에 대해선, 무상 공약 시리즈를 주도해온 민주당 소속 예비후보들조차 어이없어 한다. 어느 현직 국회의원은 “저소득층 요금을 면제하거나 줄이자는 얘기는 할 수 있겠지만, ‘쉽게, 세게, 공짜로 해줄 게’라는 식은 안된다”고 개탄했다. ‘버스 요금 무료화’를 위해선 단순 계산으로도 경기도가 매년 부담해야 할 1조5000억 원에 버스회사 인수비용 1조140억 원, 수억 원대의 노선(路線) 거래비용 등을 더해 그 공약 한 가지 이행에만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퓰리즘 공약 이행을 위해선 다른 분야의 긴요한 예산까지 포기할 수밖에 없다. ‘공짜’ 공약이 유권자에게 당장은 달콤해 보일지언정 결국 재앙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가장 생생하게 확인시켜준 장본인이 김 전 교육감이다. 2009년 경기도교육감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그가 촉발한 무상급식 공약이 단적인 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공약으로 내세워 또 ‘재미’를 본 무상급식 포퓰리즘의 확산 탓에 서울을 포함한 다수 시·도 교육청에서 정작 절박한 교육 환경 개선은 손도 못대고 있지 않은가. 교육부에 따르면 2011년부터 전면 확대된 전국 초·중학교 무상급식에 4년 동안 8조4202억 원이 투입되면서 예산 부족으로 노후 급식시설 개선이 무시되거나 지연돼 식중독 사고가 늘어나는 등 학생들의 위생 관리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김 전 교육감은 무상급식 공약을 자신의 큰 업적인 것처럼 오도(誤導)하면서, ‘공짜 버스’ 공약으로 또 교묘하게 민심을 유혹하는 셈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여·야가 경쟁적으로 내세웠던 ‘반값 등록금’ 공약의 폐해가 지금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을 주면서도 대학 재정까지 더 악화시킴으로써 반드시 이뤄야 할 교육 시설·환경의 개선조차 어렵게 만들고, 교육의 질(質) 또한 크게 떨어뜨려 학생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 ‘공짜’의 부메랑이다. 이처럼 ‘공짜’ 공약·선동은 사실상 사기(詐欺)와 다름없는 것이다. 하지만 후보들의 양식(良識)과 양심(良心) 회복만 기대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유권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공짜’ 선동에 또 속아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