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제2의 박종원’을 기다리며…

김병직/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역시, 우려했던 대로였다.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올해 처음으로 시행된 연봉 5억 원 이상 상장사 등기임원의 보수 공개 이후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상장사 임원보수 공개 범위를 미등기 이사까지 확대해야 한다며 금융 당국을 압박하고 있고, 실제로 의원입법으로 이를 밀어붙이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각 등기임원이 받은 연봉이 그 회사의 경영실적과 그의 기여도를 감안할 때 적정한 것이었는가 하는 판단보다는 단순히 ‘돈의 규모’에만 사회적 관심이 집중돼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현실은 안타깝다. 특히 가슴 아픈 사례는 박종원 전 코리안리 부회장 건이다. 코리안리 사장으로 ‘15년 5연임’의 신화를 쓰고 지난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 박 전 부회장은 그 대가로 159억 원의 퇴직금을 받았다고 사업보고서에 공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금융업계의 ‘살아있는 전설’에서 하루 아침에 ‘돈만 밝히는 속물’처럼 여론재판에 시달려야 했다.

시계바늘을 16년 전으로 돌려보자. 27년간 행정관료로 지냈던 그는 가족과 동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간 재보험사 CEO라는 새로운 길을 택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7월 취임 당시 대한재보험(현 코리안리)은 파산 직전이었다. 그는 취임사에서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고 앞으로 전진할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서 있다가 최후를 맞이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살아남기 위해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취임 두 달 만에 임직원의 3분의 1을 줄이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했고, 생존을 위한 멀고도 험한 전쟁을 펼쳐야 했다.

그로부터 15년… 문 닫기 직전이었던 회사는 아시아 1위, 세계 9위로 우뚝 섰다. 회사 당기순이익은 34배나 껑충 뛰었고, 직원 1인당 생산성도 25배나 뛰었다. 구조조정의 고통을 견딘 덕분에 직원 수는 46% 증가했고, 주주배당금은 10배, 시가총액도 11배나 뛰었다. 한국 금융사에 아시아 1위를 기록한 건 코리안리가 유일무이하다. 박 전 부회장이 받은 퇴직금은 15년 동안 그의 모든 것을 던져 일궈낸 이 같은 성과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그는 평소 “CEO는 자신이 책임진 회사에 목숨을 걸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가 15년 동안 목숨 걸고 성장시켜놓은 회사를 떠나자 퇴직금 액수가 ‘국민 눈높이’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온갖 험담과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일각에선 ‘모피아의 최고 성공 모델’로 남을 것이라는 비아냥 섞인 말까지 나온다.

‘박종원의 159억 퇴직금’을 수용 못하는 대한민국에는 미래가 없다. 철저한 성과주의가 뿌리내린 미국 등 해외 기업 CEO의 상상을 초월하는 연봉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성과 있는 곳에 보수 있다’는 원칙은 존중돼야 한다. 뛰어난 경영 성과를 일궈 많은 연봉을 받는 경영자가 존경의 대상이 돼야지, 질시와 비난의 대상이 돼선 안된다. 잘 나가는 사람과 기업을 질시하는 풍토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균형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 경제정책을 압도해온 n분의 1주의(모두가 똑같이 나누자는 주장)가 경제발전의 역동성을 훼손한다. ‘박종원 신화’는 존중돼야 하고, 제2, 제3의 박종원이 더 나와야 한다. 그래야 한국경제에 희망이 있다.

bj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