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내가 사는 세상을 다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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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는 길을 오늘은 차를 두고 걸어서 오고 갔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웬만한 거리만 되어도 차를 타고 다녔고 심지어 공원에 산책하러 갈 때에도 공원까지 차를 이용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걸어서 다니는 일이 없었다. 헬스클럽에서는 한 시간 때로는 두 시간을 러닝머신을 탄다. 그런데 한 정거장 정도 가야 하는 일이 있으면 승용차를 타고 다녀온다. 러닝머신에서 걷는 것은 운동이지만 그냥 걸어가는 것은 귀찮은 일이 된 것이다. 걸어서 움직인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살았던 것이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한 시간 가까이를 걸으면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내가 늘 다녔던 길인데 내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지나갔던 거리들이 걸어가니 하나하나 살펴보고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그 가게 종업원들의 얼굴을 보았고 매장 내부도 볼 수 있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볼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들 속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상상할 수 있었다.

밤늦게 다시 걸어서 집으로 왔다. 오는 길은 같았지만 내가 경험한 것들은 새로운 것들이었다. 사람들이 달랐고 불 꺼진 가게들과 마감하며 청소하는 분주한 점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부부들의 모습, 심각한 분위기로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연인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같은 길이지만 어느 시간대에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여진다.

차를 타고 달려갈 때에는 차 안에서 볼 수 있는 것만큼만 볼 수 있고, 걸어가는 사람은 걸어가면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인생이란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를 가지고 이해하고 자신의 경험세계에서 부딪히는 한계 앞에서 갈등하며 살아간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내가 아는 것의 전부가 될 때가 많은 것이다.

그동안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니 마흔의 삶은 분주한 일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어떤 일이든지 집중하고 있어야 했다. 내가 정한 목표에 빨리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두르고 서두르는 일만 계속 했었다. 많은 것들을 이루었지만 속도를 내며 달려갔던 인생은 좀처럼 멈춰 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내 인생이 갖고 있었던 관성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나도 모르게 내가 속도를 내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쓰러질 것이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이제는 멈춰 서서 새롭게 걸어갈 준비가 필요하다. 승용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빠르게 빠르게 달려왔던 나의 일상에서 벗어날 예정이다.

그리고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방식을 실천해 보려고 한다.

현대 문명 속에서 현대 문명의 힘을 스스로 제외시키고 자연을 따라 걷는 일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고 있다. 내가 꼭 필요하다고 붙들고 싸들고 다녔던 모든 것들을 벗어 버리고 떠날 것이다. 내가 걷는 동안 꼭 필요한 것들로 나의 배낭을 새롭게 채워넣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 가방에 언제나 넣고 다녔던 노트북 따위는 꼭 빼놓을 것이다. 가장 단순하지만 꼭 필요한 몇 가지만을 가지고 걷고 또 걸을 것이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한 달 동안 나와 떨어져 살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한 선택을 시작할 예정이다.

leeyuesu@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