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열 “미모의 여성팬이 맨가슴에 사인 요청… ”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노승열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경희궁 내 공원 구역에서 인터뷰 도중 벤치에 앉아 투어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인터뷰 = 최명식 차장(체육부)

노승열(23·나이키골프)은 한국골프의 미래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23세에 챔피언이 됐다. 지난 4월 27일 취리히클래식에서 데뷔 2년, 78개 대회 출전 만에 PGA투어 우승컵을 안았다. 그동안 한국 출신 PGA챔피언은 8승을 올린 최경주가 32세에, 아시아 최초의 메이저챔피언 양용은은 37세에, 그리고 배상문은 27세에 각각 첫 우승컵을 안았다. 노승열이 가장 젊었다.

그의 가능성과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노승열이 시즌 중임에도 지난 2일 한국에 돌아왔다. 휴식을 위해 들어왔지만 투어를 다닐 때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 오자마자 대전국립묘지 참전용사 묘역에 묻힌 할아버지께 뒤늦은 우승소식을 전했다. 할아버지는 지난 5월 말 그가 메모리얼토너먼트 1라운드를 치를 때 별세했다. 부친 노구현(52) 씨는 대회가 끝난 다음에야 할아버지 별세 소식을 알렸다. 6·25 참전용사인 할아버지는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지난 4월 초 한국에 잠깐 다녀왔을 때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우승 때까지 꼭 살아있어야 할 텐데…”라며 누구보다 우승 소식을 기다려왔다.

지난 9일 노승열이 부친과 함께 문화일보를 찾았다. 기자는 노승열의 초등학생 때부터 인연이 있다. 아버지 노 씨는 당시 강원 양양의 단위농협 임원으로 근무했지만 아들을 골프선수로 키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기자가 ‘거간꾼’ 노릇을 했다. 타이틀리스트 한국 지사장이던 김영국 사장에게 노승열을 소개했고, 김 사장은 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용품후원을 선뜻 결정했다. 당시 국가대표에게도 흔치 않던 파격이었다. 노승열은 이후 10년 가까이 타이틀리스트 용품을 써오며 ‘의리’를 지켜왔다.

고려대(체육교육학) 졸업반인 그는 귀국 때마다 학교에 들러 학점을 따기 위해 수업도 받고 교수도 찾아가 상담도 한다. 학교에 다녀오는 길이라는 그는 대뜸 “저 체육과목에서 F학점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뜻밖이었다. PGA챔피언이 체육과목에서 낙제라니…. 그는 지난해에도 전공 필수 3학점인 ‘배드민턴’에서 F학점을 받아 이번 학기에 재수강했다. 하지만 깐깐한(?) 교수님은 무조건 학교수업을 들어야 한다며 투어를 뛰는 그에게 보통학생의 잣대를 들이댔던 것. 그는 지난 2월 졸업해야 했지만 투어 일정 때문에 학점을 이수하지 못했다. 아직 17학점을 더 따야 졸업한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이번에는 꼭 졸업하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첫 우승 인터뷰 때 말한 ‘해피 에너지’란 단어가 두고두고 한국사회에 화제가 됐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국민이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때다. 그의 우승 소식은 잠시 국민들의 시름을 잊게 해줬다. 그가 대회 내내 달았던 ‘노란 리본’은 현지 언론이 라운드마다 궁금해했다. 우승을 확신했던 17번홀쯤 우승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18번홀 퍼팅을 마치자마자 방송 중계 스태프가 다가와 질문을 던졌다. 우승소감이 아니라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해 물었던 것. 그때 그는 나름 생각했던 ‘해피 에너지’란 단어를 언급했다. “안타까운 사고로 슬픔에 빠진 고국 분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PGA투어에서도 알아주는 장타력을 갖췄다. 2주 전 퀴큰론즈내셔널 4라운드 때 드라이버샷을 360야드까지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확도를 위해 80%의 힘만으로 300야드 이상을 날리고 있다. 올해 PGA투어에서 평균 비거리는 296.5야드로 37위에 랭크됐다. 동양계 선수로는 가장 멀리 보낸다. 그래서 그는 장타 선수에 유리한 코스를 선호한다.

PGA투어 3년 차인 그는 이제 자신과 코스궁합이 맞은 코스에서 열리는 대회에 집중하고 있다. 짧은 코스보다는 해저드가 많고 러프가 긴 코스를 선호한다. 투어 선배인 나상욱이 좋아하는 곳과는 정반대의 코스 성향. RBC해리티지클래식이나 최경주 선배가 두 차례나 우승했던 템파 등이 오히려 그가 기피하는 코스다. 이들 코스는 짧아서 그가 아이언으로만 쳐야 하는 곳이며, 모두 ‘페이드(fade·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는)’ 구질을 잘 쳐야만 유리한 코스다. 자신처럼 드로(draw·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는) 구질을 치는 선수들은 트러블을 피해도 굴러서 러프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의 가장 큰 단점은 ‘퍼팅’. 올해 PGA투어에서 기록한 퍼팅 지수가 ‘-0.82’로 하위권(141위)이다. 3퍼트만 46차례나 기록했다. 그동안 한 개의 퍼터만 사용해오던 그는 취리히클래식 때 처음 반달모양 퍼터로 딱 5일 연습하고 우승했다. 그래서 요즘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퍼터를 바꾸곤 한다. 4년 전 시력 교정 수술을 했던 그는 퍼팅 고민을 해결하려고 최근 미셸 위의 ‘ㄱ자’ 퍼팅에 대해 생각해봤지만 35인치짜리 퍼터를 사용하는 자신에겐 팔이 너무 굽혀져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퍼팅연습에 시간을 남들보다 더 할애한다.

그는 내년 첫 출전 예정인 시즌 첫 메이저대회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에서 아직 라운드를 한 번도 못해 봤다. 시즌 중이라도 계획을 세워 최소 대회 2주 전까지 두세 차례 돌아볼 작정이다. 하지만 그곳 회원들을 동반해야만 플레이가 가능해, 라운드 기회를 잡기 위해 지인들에게 줄을 대고 있다.

그는 사실 우승 기회가 몇 차례 찾아왔지만 살려내지 못했다. 지난 1월 토리파인에서 열린 파머스인슈어런스 3라운드 18번홀(파5)에서 더블보기를 범해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티샷 미스로 벙커에 보내면서 두 번째 샷을 레이업한 것이 러프로 갔고, 세번째 샷은 풀에 감기면서 해저드로 빠져 더블보기를 범했다. 그의 스코어를 보면 버디도 많고 보기도 많다. 그의 골프가 공격적인 탓이다. 그러나 그는 예전처럼 무모한 샷은 많이 없어졌다고 한다. 공격할 때와 지켜야 할 때를 확실히 구분하면서 위기에 처할 때 ‘파’가 아닌 ‘보기’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예전엔 파5홀에서 무조건 때리고 봤지만, 이젠 끊어서 치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게 달라진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우승을 하고 나니 달라진 위상을 톡톡히 느끼고 있다. 티 타임도 좋은 시간대를 배정받고, 동반선수들도 정상급인 경우가 많아 경기 집중력도 높아졌다. 또 한가지. 선수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물론 갤러리 반응도 뜨겁다. 그에겐 타이거 우즈도 경험 못한 ‘뜨거운’ 에피소드가 있다. 2012년 플레이오프 1차전 바클레이즈가 열린 베스페이지골프장에서 1라운드를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가는데, 20대 중반의 미모의 백인 여성이 자신을 찾아와 사인을 요청했다. 대회 깃발 2장에 사인을 마치자 그 여성은 “원 모어 플리즈!”라며 갑자기 윗옷을 내리더니 맨 가슴에 사인을 요구했다. 얼굴이 뜨거워졌지만 어쩔 수 있나. 맨살에다 사인을 해주며 머쓱해하던 그를 지켜보던 애런 배들리 등 동료선수 서너 명은 “타이거 우즈나 우리도 못해 본 일”이라며 몹시 부러워했다.

지난해 나이키와 파격적인 대우(계약금 등 액수는 비공개 계약)로 계약한 이후 성적이 나질 않았다. 그는 이에 대해 “골프채보단 골프공에 적응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투어프로들은 보통 골프채는 샤프트와 헤드를 바꿔가며 몸에 맞추는 ‘초이스’가 있지만, 골프공은 선수가 공에 맞춰야 한다. 성적을 좌우하는데 채가 20%라면 공은 80%나 된다는 설명.

그는 14세 때 한국아마추어선수권을 우승하며 ‘골프천재’로 두각을 나타냈다. 2006년 중학교 3학년 때 최연소 아마추어 국가대표에 선발됐지만 ‘실력’보다 ‘나이가 어리니 다음에 기회가 있을 것’이란 이유로 아시안게임에 뛰지 못해 병역혜택을 받지 못했다. 더 이상 아마추어로 머물 이유가 없었다. 18세 나이만 고집하는 ‘한국프로골프투어’ 대신 ‘아시안투어’를 택했고 출전 경비를 아끼기 위해 부친이 캐디 겸 매니저 역할을 했다. 아시안투어 첫해에 신인상을 받았고, 2009년엔 최연소 상금왕에 올랐다. 2012년 11월 재수 끝에 PGA투어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했고, 2103년부터 풀시드권을 따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것’인 부친이 4년 전 ‘임파선암’ 수술을 받고 치료 중이서 더이상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 강원 고성의 집에서 요양 중인 부친 대신 두 살 위인 누나(노승은)가 뒷바라지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최경주 선배의 PGA 8승과, 양용은 선배의 아시아 최초의 메이저 우승 기록을 넘어선 뒤 20년, 30년 동안 PGA투어에서 살아 남아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하루빨리 두 번째 우승을 이뤄내 실력을 입증하고 싶다고 말했다.

투어에서 그는 막내여서 선배들이 챙겨준다. 저녁 때도 한국식당에 가면 몇 명씩은 만난다. 배상문, 이동환, 위창수, 양용은, 최경주 프로는 저녁을 한식당에서 해결하는 멤버들. 텍사스 댈러스에 집을 산 그는 최근 이 곳으로 이사 온 배상문과 길 하나 건너편 아파트에 살고 있어 대회가 없어도 자주 만나는 선배다.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