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소방관들의 心火를 꺼야 한다

장재선/문화부장

“영화나 TV에 나오는 소방관의 모습이 실제와 비슷한가요?” 충남 서산의 한 여고생이 며칠 전 학교로 직업 특강을 하러 온 소방관에게 물었다고 한다. 최근 소방관이 나온 드라마 ‘엔젤아이스’와 영화 ‘타워’ 등은 재난 현장에서 헌신하는 의인(義人)상을 보여준다. 피가 뜨거운 청소년들이 그것을 보면 소방관이 되겠다는 꿈을 꿀 만하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격려할 것이다. 그런데 자기 아이가 소방관이 되겠다고 하면 어떨까.

전국의 소방관들이 “지금의 소방 환경으로는 내 자식들에게 소방관이 되라고 할 수 없다”며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소방공무원의 신분을 현재의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소방헬기 참사로 소방관 5명이 순직하면서 이 목소리는 더 절실해지고 있다. 순직 소방관들의 동료들이 합동분향소를 찾은 정홍원 총리 앞에 무릎을 꿇고 “도와달라”고 읍소했을 정도다.

정부는 소방공무원의 국가직화에 반대하고 있다. “재난이 대개 지역 단위에서 벌어지니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 국가직화하는 것은 세계적인 지방 분권 추세에도 역행한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경찰 개혁안의 하나로 ‘자치 경찰’까지 거론되는 상황 아닌가.

그럼에도 소방관들은 왜 ‘역행하는’ 주장을 할까. 정부가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며 소방방재청을 흡수하겠다고 한 것이 기폭제였다. 외청인 방재청을 해체하고 안전처 산하의 소방본부로 만든다는 것. 소방관들은 이를 기구 축소로 받아들였고, 예산과 인력이 줄어든다고 봤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19 구조를 겸하는 소방대를 만능의 ‘맥가이버 부대’로 본다. 예산과 인력을 늘려야 하는데, 오히려 줄이다니….”

최근 몇 년간 연 소방예산이 3조 원 안팎이었다. 국비 부담은 2% 수준이고, 지자체가 대부분 돈을 대고 있다. 지자체 재정 여건에 따라 소방 환경이 극심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일부 지역 소방관들은 소방 장갑과 마스크를 개인 돈으로 산다고 한다. 사용 연한을 넘긴 소방차도 수두룩하고…. 이런 사실이 소방관들 사이에서는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게 놀라울 뿐이다. 소방직을 경찰, 군인 등처럼 국가직으로 전환해 소방 행정을 국가가 관리함으로써 지역 격차를 없애고, 처우도 안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소방관들의 주장이다. 우리 사회에 흔한 ‘집단 떼쓰기’와는 성격이 달라 경청할 가치가 있다.

여름에 20㎏이 넘는 화재 진압 장비를 착용한 채 작업을 하면 방화복 내부 온도가 40도가 넘는다고 한다. 밖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상황에서 내부 열과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을 상상해보자. 지난 5년 간의 순직자 31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머리에 총구를 겨눈 ‘러시안 룰렛’을 하고 있다는 소방관들의 자조가 피부에 와 닿는다.

그들의 상황을 방치해선 안된다.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직업인으로서 그만한 대접을 받으며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문명을 탄생시킨 불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는 장소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이들에게 공동체는 존경을 바칠 의무가 있다.

물론 국가직화 문제는 소방관들의 순직을 추모하는 분위기에서 감성적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 국가 재난 체계의 합리화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지자체들이 무상 복지에는 예산을 퍼부으면서 소방관 처우에는 소홀했던 이유와 책임도 따져봐야 한다. 어느 쪽으로 접근하든 불볕 더위보다 더 솟구친 소방관들의 심화(心火)를 끄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의 소방 대응 체계에 허방이 생길 수 있다. 그 허방은 소방관들의 울분을 먹고 커질 것이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 가장 늦게 나오며’ 목숨을 걸고 구조 활동을 펼쳐온 것이 우리나라 소방관들이다. 그들 모두 미국의 한 소방관이 남긴 ‘어느 소방관의 기도’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받을 때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강한 힘을 저에게 주소서/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안을 수 있게 하시고… 당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될 때, 바라옵건대 당신의 축복으로 저의 아내와 아이를 보호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