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여자 없는 남자가 되어버리면 몸속 깊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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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65·사진)의 신간 단편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문학동네)이 출간됐다. 하루키 단편집은 2005년 ‘도쿄기담집’ 이후 9년 만이다. 일본 출간 당시 예약 판매로만 30만 권이 나갔고, 국내에서도 출간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소설집에는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써내려간 6편의 작품이 실렸다. 표제작 ‘여자 없는 남자들’을 비롯해 ‘드라이브 마이 카’, ‘예스터데이’, ‘독립기관’ ‘셰에라자드’, ‘기노’ 등이다. ‘1Q84’ 등 최근까지 장편 집필에 몰두했던 하루키는 지난해 직접 선별한 영미권 단편집 ‘그리워서’의 번역작업 중 문득 ‘장편을 쓰는 것도 지쳤으니 이제 슬슬 단편들을 써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이번 작품집을 완성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봄에 걸쳐 발표한 단편 5편과 단행본 출간에 맞춰 쓴 ‘여자 없는 남자들’을 묶었다. 여기에 이번 한국어판에는 ‘그리워서’에 실린 단편이자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의 오마주인 ‘사랑하는 잠자’가 추가돼 총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됐다.

단편 속에는 제목 그대로 연인이나 아내로서의 여성이 부재하거나 상실된 남성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독신주의자, 외도에 따른 이혼, 병으로 인한 사별 그게 아니라면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외부로부터 단절되거나 첫사랑과의 이별 뒤 혼자 사는 이들이다. 더구나 대학 시절을 회상하는 ‘예스터데이’와 ‘사랑하는 잠자’를 제외하면 주인공은 모두 중년의 남성들로 이뤄졌다.

하루키는 그동안 독자들 사이에서 ‘청춘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1Q84’ 등 그의 대표작들은 10∼20대의 젊은이들의 사랑과 방황을 소재로 한다. ‘노르웨이의 숲’은 되풀이되는 상실의 아픔을 겪는 20대 청춘의 성장통을 그렸고, ‘해변의 카프카’ 또한 어른들이 만들어낸 현실 속에서 방황하고 고뇌하는 15세 소년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하루키가 전하는 홀로인 중년 남성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년 남성들의 상실감은 청춘의 그것보다 더 애달프다. 하루키 특유의 문체로 표현된 중년의 고독감에서는 아주 조금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중략)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몸 깊숙이 배어든다. 설령 그 후에 다른 새로운 여자와 맺어진다 해도, 그리고 그녀가 아무리 멋진 여자라고 해도, 당신은 그 순간부터 이미 그녀들을 잃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한다.”(‘여자 없는 남자들’ 중에서)

격리된 공간에서 지내는 ‘셰에라자드’의 주인공 하바라도 세상과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인 여성이 어느 날 사라질 것을 예감한다.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중략) 그것을 언젠가는 반드시 잃게 되리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그를 슬프게 했다.”(‘셰에라자드’ 중)

심지어 독신주의자로 사는 ‘독립기관’의 주인공, 52세 의사 도카이마저 상실의 아픔 때문에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한다. “너무 좋아하면 마음이 힘들기 때문이죠. 못 견딜 만큼 힘들어요.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가능한 한 그녀를 좋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독립기관’ 중)

왜 여자가 없는 중년 남성일까. 작가는 일본판 서문에 “어째서 그런 모티브에 내 창작의식이 붙들려버렸는지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지 그런 남자들의 모습과 심정을 몇 가지 다른 이야기의 형태로 패러프레이즈하고 부연해보고 싶었다. 그건 나라는 인간의 ‘현재’에 대한 하나의 메타포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번 소설집의 번역은 하루키의 작품 ‘1Q84’, ‘중국행 슬로브트’ 등을 옮긴 전문 번역가 양윤옥 씨가 맡았다. 문학동네는 이번 단편집 출간을 계기로 기존에 나온 하루키의 초기 소설집 ‘반딧불이’,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빵가게 재습격’ 등도 작가의 의견을 반영해 개정하고 미발표 단편을 추가해 새로 펴낼 계획이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