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받는 아이들에게 사랑을>취한 엄마 따라 동거男 집 전전… ‘8년 떠돌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인터넷 중독으로 5년간 쓰레기더미 집에서 살아온 이현수(가명·13) 군이 9월 15일 빨래가 가득 쌓인 자신의 방에서 검은 때가 잔뜩 낀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요즘엔 학교에 갈 수 있어서 행복해요. 친구도 사귀고 선생님 칭찬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지난해엔…. 엄마가 보내주질 않아서….”

지난 9월 19일 강원지역 한 그룹홈에서 만난 초등학교 4학년 이예준(가명) 군은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보자 망설임 없이 “학교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125㎝ 정도의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로 반에서 가장 작은 예준이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늘 술에 취한 엄마의 손에 이끌려 엄마의 동거남 집을 전전해야 했고, 학교는커녕 엄마가 술을 마시고 있는 술집에 방치돼 있던 시간이 더 많았다.

◆엄마 동거남 집 전전하며 8년 = 강원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예준이의 친모인 손모(34) 씨는 예준이의 친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예준이를 낳았다. 늘 술에 취해있던 손 씨는 예준이가 갓난아기 때부터 술집에 예준이를 데리고 가 뉘어놓은 채 술을 마셨다. 예준이는 어린 시절부터 술과 담배, 욕설 등 유해환경에 노출됐다. 예준이는 “집이 없어서 엄마하고 아저씨들의 좁은 원룸을 수십 번 씩 옮겨다니며 살았다”며 “아저씨와 집이 바뀔 때마다 엄마가 동생을 낳았다”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예준이의 이부형제는 7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다른 형제들은 모두 친부가 데려가거나 아동보호시설로 보내졌다. 그러나 손 씨는 유독 예준이를 데리고 있는 것에 집착하면서도 제대로 돌보지는 않아 예준이가 오랜 기간 방임 상태로 자라게 된 것이다.

처음 예준이에 대한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들어온 것은 지난 2006년 5월. 손 씨가 술에 취해 거리에서 아이를 때린다는 게 신고 내용이었다. 이후에도 비슷한 신고만 4∼5번 이어졌다. 결국 지난 2010년 9월 기관의 개입으로 예준이가 엄마로부터 분리돼 아동보호시설에서 안정적으로 지내게 됐다. 그러나 손 씨는 2013년 2월 말 예준이를 잠깐 보겠다며 데려가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예준이를 찾기 위해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과 경찰 등이 대거 동원됐지만, 주거가 일정치 않은 손 씨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같은해 11월 21일 한 주택가에서 아이가 여성에게 맞아 울고 있다는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들어와 상담원들이 출동해보니, 예준이가 또다시 동거남의 집에서 만취한 손 씨로부터 맞으며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예준이는 상담원들에게 “학교 가고 싶었는데 엄마는 학교를 보내주지 않았다”며 “학교에 갈 시간에는 거리로 나가 친구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울먹였다. 결국 예준이는 다시 긴급 분리 조치가 취해졌고 손 씨로부터는 이후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 경찰이 꿈인 예준이는 ‘경찰’이란 글자가 적힌 카드를 만지작대며 “엄마가 보고싶어요”라면서도 “하지만 다시 모르는 아저씨들 집에서 살거나 학교를 못가게 되는 건 싫어요, 이곳에서 선생님이랑 계속 살고 싶어요” 라고 말했다.

◆인터넷에 빠진 母, 쓰레기장 같은 집에 방치된 남매 = 지난 9월 15일 찾아간 중학교 1학년 이현수(가명·13) 군과 누나 이은수(가명·15) 양의 집에서는 곰팡이 냄새와 지린내가 섞인 야릇한 냄새가 풍겨왔다. 한 달 넘게 하지 못한 빨래가 현수의 방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었고, 밥통에는 곰팡이가 잔뜩 슬어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다 남은 조리식품과 상해버린 밑반찬이 악취를 풍겼다. 현수는 “친구들이 냄새가 난다며 잘 놀아주질 않아요”라며 “세탁기가 고장난 지 한 달이 넘어서 빨래도 못하고 있는데…”라며 고개를 떨궜다.

현수가 이런 방임 상태에 놓은 것은 지난 2009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부터였다. 엄마 김모(40) 씨는 장례식 후 심각한 우울증 증상을 보였고, 인터넷 방송사이트에서 채팅을 하고 음악을 틀어주는 방송 DJ로 활동하는데 빠지면서 집안일을 돌보지 않기 시작했다. 은수는 “하루에 단 한 번도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은수와 현수는 점점 쓰레기장으로 변해가는 집에서 방치된 채 생활해왔다.

은수와 현수는 가스비가 연체되면서 매일 조리식품과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이에 따라 은수와 현수는 모두 몸무게가 70㎏에 달하는 비만 증상을 보이고 있다. 또 현수는 아토피가 심해지면서 오른쪽 다리와 허벅지가 온통 상처 투성이다. 누나 은수도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어린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다.

김다영 기자 dayoung817@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