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해외로 튄 부패관료 추적… ‘여우 사냥’ 나선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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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파리에 이어 여우가 떨고 있다.

한국에서는 ‘웬 난센스 같은 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중국이라면 다르다. 호랑이, 파리, 여우는 중국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를 대표하는 단어들이다. 모두 부패한 관료들을 지칭한다. 중국어로 ‘라오후’(老虎)인 호랑이는 말 그대로 권력층에 있으면서 부패를 저지른 이들을 말한다. 최근 우리 한국 신문 지면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저우융캉(周永康) 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중국어로 ‘창잉’(蒼蠅)인 파리는 반대로 부패한 하급 관료들을 지칭한다. 지난 2012년 11월 시진핑(習近平·사진) 지도부 체제가 들어선 이래 중국에서 ‘반부패 사정’의 기치 아래 대대적으로 소탕 작전을 벌이고 있는 대상들이다.

그럼 여우는 뭘까. 여우는 바로 부패관료들 가운데 조사 사실을 미리 알고 해외로 도주한 이들을 말한다. 한마디로 여우처럼 약은 부패관료인 셈이다. 도대체 여우는 몇 마리이고, 얼마나 많은 돈이 해외로 빠져나갔을까. 여기에 대해 중국 당국은 분명한 숫자를 공표하지 않고 있지만, 각종 연구단체를 통해 추산치가 흘러나오고 있다. 가장 최근 자료는 지난 2009년 중국 사회과학원의 연구보고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이미 8000여 명이 해외도주 상태로, 관련한 금액만 8000억 위안(약 140조9840억 원)에 달했다. 지난 4일 미국의 중화권 매체인 보쉰(博迅)은 관련 소식을 전하며 5년간 이 같은 수치는 천문학적으로 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럼 곰처럼 우직한 시진핑 지도부가 이 여우들을 그대로 둘까. 시 주석은 역시 독했다. 지난 7월 말부터 전문 체포조를 구성, 전 세계 각국에 파견해 직접 이들 여우잡기에 나선 것이다. 작전명은 말 그대로 ‘여우사냥’. 지난 10월 29일이 딱 작전 100일이었다.

지난 4일 관영 신화(新華)통신 등이 전한 작전 100일 성과는 화려하다. 40개 국가에서 총 180명이 중국에 송환됐다. 104명이 파견 공안에 의해 검거됐으며 76명은 권고를 받고 자진 귀국했다. 신화통신은 지난 100일간 송환된 여우 수가 지난 한 해 체포 송환된 여우 수보다 많다고 평했다.

최근 붙잡힌 인사 중 가장 주목받은 여우는 리펑(李鵬) 전 총리의 측근인 가오옌(高嚴) 전 윈난(雲南)성 당서기다. 미국의 중화권 둬웨이(多維)에 따르면 그는 2002년 500만 위안(8억7000만 원)을 챙겨 가짜 여권을 들고 호주로 달아났으나 이번 여우사냥꾼들을 피하지 못했다. 공안은 가오 전 서기를 비롯한 거물급 해외 도피 탐관 7명의 명단을 확정했고, 호주는 중국의 여우사냥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고 발표했다. 호주 경찰은 수주 내에 중국 현상범들의 자산을 압류하고 이들을 체포해 신병을 중국 측에 인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가오 전 서기는 공산당 원로 가오강(高崗)의 아들이다. 중국 당국은 가오 전 서기가 윈난성 서기, 지린(吉林)성 성장, 국가전력공사 총경리(사장) 등으로 재직하면서 호주로 빼돌린 자금 이외에 부정 축재한 다른 자산도 찾아냈다. 가오는 리 전 총리가 직접 국가전력공사 총경리에 발탁했고, 그가 총경리일 때 리펑의 아들인 리샤오펑(李小鵬) 산시(山西)성 성장이 그 밑에서 부총경리로 재직했다. 여우사냥의 불똥이 중국의 또 다른 정치 추문으로 이어질 공산이 큰 것이다.

이에 현재 가오 전 서기와 함께 해외도피범으로 수배 명단에 오른 나머지 인물들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둬웨이는 7명의 거물급 탐관에는 란푸(藍甫) 전 샤먼(夏門)시 부시장과 퉁옌바이(童言白) 전 후난(湖南)성 고속도로관리국 국장 등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100일 만에 줄줄이 잡혀 들어오는 여우들. 그럼 이들을 잡는 게 쉬웠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다는 게 중국 매체들의 전언이다. 보도에 따르면 무엇보다 여우들이 숨어든 각국과 국제법상의 문제도 문제지만 현지에 꽁꽁 숨어 있는 여우들을 붙잡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탐문조사 과정에서 자칫 잘못하면 바로 여우들을 놀라게 해 더 도망가도록 하기 일쑤였다. 일례로 콜롬비아는 법원의 체포영장 없이는 체포할 수 없고, 절대 집안에 들어가서 범인을 체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결국 중국 공안은 무려 10시간을 집 주변에서 숨어 있다가 겨우 성이 저우(周)인 여우를 잡을 수 있었다.

공안은 이같이 현지의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는 여우를 잡기 위한 노력을 3개의 사자성어로 표현했다. 첫째가 ‘고구파심’(苦口婆心), 귀가 아플 정도로 충고를 한다는 의미다. 지난 100일간 중국 공안이 자진 귀국을 설득한 수는 총 76명으로 절대로 적지 않은 규모다. 공안의 판단은 이랬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외국이다. 중국에서 그래도 한자리 했던 인물이 쫓겨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마음고생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에 중국 공안은 거의 매일 가족들을 찾아 자수자에 대한 정책을 설명하고 설득했다. 대표적인 예가 2005년 경제사범으로 알제리로 도주했던 허난(河南)성 출신의 리(李)모 씨다. 리 씨는 가족들의 설득에 지난 9월 27일 서면으로 자수 의사를 밝혔고 28일 상하이(上海)를 통해 귀국했다.

두 번째가 일인일당(一人一당), 바로 한 사람마다 한 건으로 처리했다는 의미다. 중국에서 발생한 부패 사건을 하나로 보지 않고 인물을 중심으로, 그 인물이 도주한 나라마다 상황에 맞춰 현지 중국 대사관, 현지 경찰 등 모든 가능한 도움을 얻어 여우를 한 마리, 한 마리 잡아들였다는 것이다.

세 번째가 ‘정병강장’(精兵强將), 정예 병사에 강한 장군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공안 정예를 보내 여우사냥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여우작전에는 4인 1조의 32개 사냥조가 활약을 벌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 공안에 따르면 ‘여우사냥 100일’ 작전은 1개 조가 하루는 콩고에서 작전을 벌이고 다음 날에는 바로 인도로 날아가 작전에 돌입하는 말 그대로 전 세계를 상대로 메뚜기처럼 뛰어다녀야 했던 힘겨운 작전이었다. 어떤 날은 호텔 조식 한 끼로 하루를 때워야 했고 하루 3시간 수면이 고작인 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체력 소모는 그나마 쉬운 편에 속했다. 각국의 언어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있어야 했고 무엇보다 경제사범이 대부분인 여우사냥을 위해서 경제적 지식이 있어야 했다. 지난 10월 30일 ‘여우사냥 100일’ 작전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공안은 이번 체포조를 꾸리기 위해 중국 전역의 공안부대에서 정예 중의 정예를 모았다고 토로했다.

그럼 이번 100일로 여우사냥이 마무리된 것일까. 공안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입장이다. 이번 작전은 연말에 일단락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지난 10월 20∼23일간 열린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는 당·정 간부들의 부패에 대해 죽을 때까지 책임을 묻기로 했다.

이어 최고인민검찰원의 추쉐창(邱學强) 부검찰장은 3일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새로운 반탐총국 설립을 비준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는 “반탐총국이 설립된 이후에는 기능 배치가 더욱 과학화되고 사건처리 능력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면서 “반탐총국장은 부부장급 검찰위원회 전임 위원이 겸직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추 부검찰장은 “반탐총국의 건설 노력은 전투력과 위세, 공신력을 강화함으로써 반부패의 더 강한 성과를 당과 인민에게 보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반탐총국은 일단 최고인민검찰원 산하의 기존 기구의 기능을 강화하는 차원으로 설립되지만 강력한 권한과 임무를 부여받아 공직자들의 부패 사건 수사에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산 여우 관료들의 멸종이 머지않았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베이징=박선호 특파원 shp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