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관점서 민족 미술의 의미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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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 미술 순례 / 서경식 지음 ／ 반비

한국의 많은 독자는 재일 지식인 서경식(사진) 도쿄게이자이(東京經濟)대 교수 하면 ‘나의 서양 미술 순례’(1993)를 떠올린다.

군사정권하에서 재일동포 간첩사건에 연루돼 수감된 두 형(서승·서준식)의 옥바라지를 하던 그에게 유럽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은 지하실에 난 창문으로 들어오는 희박한 공기였다고 한다. 이렇게 나온 ‘나의 서양 미술 순례’는 이후 유사한 책들을 쏟아내며 ‘미술 기행’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몹시 바라면서도 미처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 있었다. 서양 미술, 일본 미술이 아니라 우리 미술가의 작품을 접하고 직접 알아가는 일이었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 일본에 집과 직장이 있는 그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 미술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인생이 끝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왔다. 55세가 되던 2006년 연구년을 맞아 한국에 체재하게 된 것이다. 그는 너무 늦어 때를 놓친 감이 없지 않지만 이참에 같은 민족의 언어, 습관뿐 아니라 문화 특히 미술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이 알고 싶다는 바람을 조금씩 이뤄나갔다. ‘나의 조선 미술 순례’는 생각지도 못한 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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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민중미술가 신경호에서 시작해 현대 미술가 정연두, 1세대 여성주의 미술가 윤석남, 월북 작가 이쾌대, 조선 풍속화가 신윤복 그리고 어린 시절 벨기에에 입양돼 지금은 전 세계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미희까지 여섯 명의 작가와 그들의 작품 세계를 살핀다. 이들 작가에 대해 그는 “조선 미술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민족 미술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또 이를 통해 ‘우리 미술’의 지형을 확대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미술이 아니라 조선 미술이라는 제목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조선 미술 하면 조선왕조 시대의 미술 혹은 북조선의 미술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그런 닫힌 뜻이 아니다. 조선이라는 말을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더 넓은 차원에서 바라본 총칭이다. 한국 미술이라는 호칭을 일부러 쓰지 않은 이유는 한국이라는 용어가 제한하는 범위가 민족 전체를 나타내기에 협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호칭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물론이고 재일, 재중동포 등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에 모든 조선 민족에 의한 미술 행위를 한국 미술로 한데 묶어 부르기에 무리가 따른다.”

이와 함께 조선이라는 용어를 역사적 ‘학대’에서 구하고 싶었다고 한다. “조선이라는 단어는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차별의 멍에를 지게 되었고 민족 분단 과정에서는 이데올로기의 짐을 떠안았다. ‘조선’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때 긴장과 불안, 때로는 공포마저 느껴왔다. 이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정직한 반영이다. 나는 억울함을 당한 이 호칭을, 그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학대’에서 구출하고 싶었다”고 그는 말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